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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Mar 03. 2024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7화


‘포악한 호랑이를 길들이는 강력한 군자의 힘을 소나무를 통해 보여야 한다. 소나무에 문향(文香)이 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 거친 느낌의 문인화, 수묵화의 느낌을 살려야 한다.’  

   

김홍도는 수십 장의 소나무를 그렸다.
생생하고 활기찬 다양한 모습의 소나무를 그리고 채색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려보아도 호랑이를 제압하는 강력한 힘을 주지는 못했다.     


‘뭐가 문제일까?
총명하고 활달한 청년 호랑이를 그렸다.
청년 호랑이를 이끌고 길들 일 힘은 어디서 나올까?’    

 

소나무를 비워 둔 채 며칠이 지났다.

오랜만에 강희언을 주점에서 만났다.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은 김홍도보다 7살 많았지만 친하게 지냈다.     


“겸재 선생님의 늙은 소나무 그림을 보았습니다. 하필 노송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강희언은 어릴 적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다.
스승을 따라 음양과에 급제하여 감목관(監牧官),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를 지낸 진경산수화의 최고 이론가였다.     


“겸재 선생은 성리학의 최고 가치인 군자를 표현하고자 했네. 군자는 사회에서 발현되는 인격체이지. 사회적 존재는 목숨 수(壽)로 정의한다네. 이 정도는 알지 않는가.”   

  

“군자를 소나무에 비유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궁금한  것은 수많은 소나무 중에 노송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그야 조선 최고의 화가인 자네가 잘 알지 않는가.”    

 

그렇다.
늙은 소나무의 울퉁불퉁한 가지를 이용하면 목숨 수(壽)라는 글자를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조형법이다.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포악하고 커다란 호랑이를 길들일 수 있는 소재로 소나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도 단원이 호랑이를 그리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네.”   

  

“겸재 선생님의 늙은 소나무와 호랑이를 어떻게 결합해야 할지 고민이 큽니다.”   

  

“그야 간단하지 않나. 용트림하는 거대한 소나무 아래에 호랑이를 그리면 되네.”     


“그런 구도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가 너무 작게 표현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소나무가 아니라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겸재 선생의 노송도(老松圖)는 금강산 그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네. 자네의 호랑이 그림도 그리될까 걱정되는군.”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김홍도는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단원 자네가 겸재 선생의 노송도에 관심을 가지다니 놀랍네. 호랑이 그림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홍래 선생의 산군포효도를 따릅니다.”    

 

“그러니까 정홍래 선생과 겸재 선생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호랑이 그림을 창작하고자 하는가?”  

   

“그렇습니다.”     


“이를 연암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하였네. 완성된 전통을 배우고 익혀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말이지.”     


“법고창신을 호랑이 그림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은 대립하는 개념처럼 보인다네. 연암 박지원은 이 둘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네.

법고창신을 현실의 사람에 대입하면 아주 쉽다네.

젊은이는 총명하고 활기차며 의욕이 넘치지.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무쇠와 같네. 이를 잘 다듬어서 좋은 연장으로 만들려면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가진 노련한 대장장이가 필요하지.
과거 없이 현재와 미래는 없네. 우리는 모두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통합된 현재를 사는 것이네. 완성된 전통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겠나?”     


김홍도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노송은 법고, 호랑이는 창신.”    

 

김홍도는 군자의 상징인 노송에서 막혀있었다.
젊은 호랑이를 통제하고 길들일 힘은 군자가 아니라 완성된 전통과 역사였다.  

   

“오늘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하하하.”     

[소나무는 거칠지만 자유로운 남종화 화법, 호랑이는 세밀하고 채색하는 북종화 화법으로 그렸다. 남종화는 문인화, 북종화는 전문 화원의 그림이라고 한다. 김홍도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처럼 이 둘을 통합하고자 했다.]     


전체 공간의 30%를 할당했다.

크고 우람한 소나무를 그리기 위함이다.

소나무 전체를 넣으면 자칫 복잡해질 수 있다.

과감하게 소나무를 앞으로 당겼다.


이 때문에, 소나무는 호랑이의 몸통보다 거대해졌다.

소나무는 호랑이를 가두는 우리가 아니다. 지붕처럼, 혹은 하늘처럼 표현해야 한다.
자칫 억압처럼 보이지 않도록 소나무를 사선으로 비꼈다.

    

노송에는 조선의 전통과 역사가 담겨있으니 법고(法古)이다.
젊고 용맹한 호랑이는 미래를 밝힐 창신(創新)이다.
 
호랑이는 전문 화원의 그림인 북종화 화법으로 그렸다.

그렇다면, 소나무는 남종화의 방식으로 그려야 한다.
겸재 정선이 북종화와 남종화를 결합하여 진경산수화를 창안했듯이, 세밀한 호랑이와 거칠지만 자유로운 소나무를 통합할 것이다.    

 

겸재 정선이 표현한 노송은 병들어 말라비틀어진 늙은 소나무가 아니다.

노(老)는 연륜과 전통, 완성을 의미한다.

연륜을 가지되 나약하지 않게, 전통을 가지되 경직되지 않게, 원칙을 가지되 좁지 않은 소나무를 그려야 한다.      

대립은 긴장을 유발한다.

거대한 힘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지점에서 감동이 생긴다.
천재였던 김홍도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붓은 소나무의 형태를 따라 울퉁불퉁하게 움직인다.
힘을 주고 빼는 과정에서 거칠지만 묵직한 선묘가 이어진다. 여기에 순간적인 느낌에 따라 붓 점을 툭툭 찍는다.
솔잎을 그리는 붓질은 거침이 없다. 비단이 먹을 흡수하기도 전에 새로운 붓질이 올라온다.

솔잎은 펴지면서 뭉개진다.
오랜 세파를 견디며 생긴 깊은 상처와 울퉁불퉁한 몸통을 가진 연륜의 소나무가 그려졌다.     


소나무를 그려놓고 한참이나 바라본다.

아직 마지막 한 수가 남았다.

노송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내내 생각해왔다.

문인화 기법의 노송과 세밀한 호랑이를 연결하는 한 수.

군자의 철학과 역사, 전통의 손길로 새로운 세대의 미래를 밝히는 결정적인 붓질이다.


노송의 몸통에서 오른쪽으로 가지 하나를 늘어뜨린다.

아래로 뻗은 솔가지는 부드러운 손길처럼 호랑이 등 위로 얹어진다.
이렇게 노송과 청년 호랑이는 완전체가 되었다.     

[단원 김홍도/송하맹호도/비단에 채색/90.3×43.8cm/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의 그림은 배첩과정에서 잘린 상하좌우 부분을 그래픽으로 복원한 것이다.]


송하맹호도는 호랑이의 포악성과 공격성을 제거한 유일한 그림이다.

남종화와 북종화의 통합을 이루어냈다.

완성된 전통과 역사를 뜻하는 법고와 새로운 미래를 의미하는 창신을 한 그림에 녹여내었다.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인문학적인 호랑이 그림을 창조했다.  

   

호랑이 그림이 완성되었다.
왼쪽 하단에 ‘사능’이라고 호를 쓰고 낙관을 찍었다.


그림을 세워놓고 찬찬히 바라본다.
이 호랑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홍래 선생이 없었다면,
겸재 선생의 노송도를 보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나는 조선의 호랑이를 그리고자 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맹한 호랑이, 총명하여 지혜를 가진 호랑이, 겸손하고 예의 바른 호랑이,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호랑이...
나는 조선의 군자를 그리고자 했다.
이로써 양심을 지키고 실천하는 모든 조선사람은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후손들이 호랑이처럼 살기를 원한다.


이제 이 호랑이 그림은 내 손을 떠나 세상 속으로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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