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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Mar 13. 2024

태평성대의 꿈-십장생도 1화

1447년 음력 4월 20일, 봄이 절정에 이르렀다.
 화사하게 핀 꽃은 나비를 유혹하고 새들은 짝을 찾아 지저귄다.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며 이름은 이용(李瑢)이다.
사랑방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던 안평대군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안평대군은 황홀한 꿈을 꾸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지만 꿈이 너무 생생했는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얼른 사람을 보내 박팽년을 모셔 오너라.”     


“이른 아침부터 찾으시니 무슨 큰일이 났는가 하여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박팽년은 17세에 향시에 합격한 수재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는 집현전 학사였다.
당시 안평대군의 나이는 30세, 박팽년은 33세로, 비슷한 연배였기에 허물없이 지냈다.

     

“간밤에 신비하고 황홀한 꿈을 꾸었소. 너무 생생하여 지금도 온몸이 찌릿찌릿하오.
 이 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소.”   

  

“도대체 무슨 꿈이길래...”     


“내가 꿈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어딘지도 모를 산길을 걷고 있었소. 기암괴석의 높은 산봉우리가 있는 곳에 다다랐는데, 깊은 골짜기에는 수십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소. 그 풍경에 정신이 팔려 그만 길을 잃고 서성이는데, 마침 허름한 옷의 범상치 않은 풍모를 지닌 노인을 만났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니, 공손하게 길을 가르쳐 주더군요.
박팽년과 함께 말을 타고 기암절벽 아래의 좁고 구불구불한 냇가에 난 길을 따라갔지요.

괴석과 우거진 수풀이 뒤엉킨 좁은 골짜기를 겨우 들어가니, 갑자기 탁 트인 마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소.
큰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막았고 주변은 복숭아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노을이 지는 것처럼 온 천지에 붉고 흰 복사꽃이 만발했소.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보였고 개울가에는 조각배도 있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소.

최항, 신숙주도 곧 따라와서는 함께 마을을 구경하며 즐거워했소.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지 뭐요.”

    

"대군, 우리가 아무리 허물없이 지낸다고는 하나, 고작 꿈 이야기를 위해 저를 부른 것은 아니지요?”  

   

“그렇소. 나는 요즘 조선의 미래가 어떠할지, 어찌해야 백성들이 평안할지...
이런저런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소.
그런데 어젯밤 꿈속 세상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꼈소.”  

   

“대군이 꾼 꿈속 세상이 무릉도원 같다고 하셨지요? 무릉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담은 무릉도원과 조선의 미래가 무슨 관계란 말입니까?”     

[위진남북조 시절을 산 도연명의 초상.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는 무릉도원 이야기가 나온다. 이상향의 이야기를 담은 무릉도원은 중국, 일본, 조선에 널리 펴졌다.]     


여기에서 도원명(陶淵明, 365년~427년 추정)이 쓴 [도화원기]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도화원기는 진나라 때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숲속의 물길을 따라갔다가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한다.
이 무릉도원 이야기 속에는 안평대군이 꿈꾸는 핵심 가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부는 작은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홀연히 복숭아나무 숲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숲은 강의 양쪽 기슭 안쪽으로 수백 걸음에 걸쳐 있었고 잡목 하나 없었다.
향기로운 풀이 싱싱하고 아름다웠으며, 떨어지는 꽃잎이 어지러이 나부끼고 있었다.

어부는 무척 기이하게 여겨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숲의 끝까지 가보고자 했다.
숲이 끝나는 곳은 강의 발원지였으며, 바로 그곳에 산이 하나 있었다.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마치 무슨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곧 배를 버려두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무척 좁아서 사람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수십 걸음을 더 나아가니 갑자기 환하게 탁 트이며 시야가 넓어졌다. 땅은 평탄하고 넓고 가옥들은 가지런하게 지어져 있었다.
비옥한 밭, 아름다운 연못, 그리고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남북과 동서로 난 밭두렁 길은 서로 교차하며 이어져 있었고,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씨를 뿌리고 농사짓고 있는데, 남녀가 입고 있는 옷이 모두 외지인이 입는 것과 같았다.
머리가 누렇게 변한 노인과 더벅머리를 한 어린아이가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곳 사람 하나가 어부를 보고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어부는 상세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어부를 집으로 초대했고, 술상을 차리고 닭을 잡아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마을에서는 어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서, 모두 몰려와 이것저것 물었다.
마을 사람이 말하길,     


“선대 조상들이 진나라 때의 전란을 피해 처자와 고을 사람들을 데리고 세상과 격리된 이곳으로 왔고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외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물었는데, 위(魏), 진(晉)은 물론 한(漢)나라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부는 하나하나 자세하게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해주었고, 마을 사람 모두 감탄하며 놀라워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어부를 자기 집에 초대했으며, 모두 술과 음식을 내어서 대접했다.

며칠간 머물다가 작별을 고했는데,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말했다.

   

“외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어부는 그곳에서 나와 배를 찾았고, 곧 이전에 왔던 길을 따라 곳곳에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군(郡)에 도착하자 태수를 찾아가 이와 같은 일이 있었노라고 알렸다.

태수는 곧장 사람을 파견하여 어부가 갔던 길을 따라가 이전에 표시해 둔 곳을 찾게 했다.

그러나 끝내 길을 찾지 못했다.]     

[이하곤(1677~1724)/도원문진도/비단에 채색/28.5*25.8/18세기 초/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 문인 화가였던 이하곤의 작품이다. 무릉도원 이야기를 진경산수화 풍으로 그렸다. 작품의 제목은 잘못되었다. 길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다 그려놓았다. 그냥 무릉도원도가 적절하다.]     


무릉도원 이야기는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내가 숱한 책과 그림을 읽고 감상한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오. 책과 그림 속 이야기와 풍경은 모두 과거를 다루고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서 미래를 찾고 있소.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태평성대가 무릉도원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소.”

    

실제 안평대군은 뛰어난 서예가이자 미술 감상에 대해 전문가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안평대군의 서예는 중국의 황제가 찾을 정도였고, 신숙주의 [화기]라는 기록에 따르면 200여 점이 넘는 서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이 같다고 여기십니까?”    

 

“무릉도원 이야기에는 어부가 등장하오.
어부는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다 강 주변에 만발한 복사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길을 잃어버리지요.
길을 찾아 헤매다가 수풀이 우거진 좁은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어부가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오.
만발한 복사꽃에 넋을 잃는 것은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에 빠져드는 것과 같소.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은 선왕들께서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숱한 피를 흘린 것이라 여기오.”   

  

안평대군의 진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박팽년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계속하시지요.”  

   

“알다시피, 도원에 사는 사람들은 전란을 피해 왔다고 했소. 이는 전쟁과 살육, 약탈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같지요.
그 마을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했소.”

    

“어떤 이는 도원에 신선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는 들었소. 나는 이를 늘 안타깝게 여기오.
불로장생하고 구름을 타는 신선 이야기는 백성들을 미망에 빠트릴 뿐입니다.
나는 마술이나 기이한 능력의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싫소.
백성들은 기대고 숭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며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이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부강한 나라와 백성의 태평성대는 군자가 만듭니다. 군자는 양심과 인격의 완성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을 말합니다. 진정한 태평성대는 양심을 가진 수많은 군자의 세상과 다르지 않소.”  

   

“저 또한 무릉도원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신선이나 도사 이야기는 없더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선이 산다고 말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오.
하나는 태평성대에 대한 갈망이오.

먹고 사는 문제는 늘 위태하오. 얼마 전에도 전염병이 돌아 많은 백성이 죽었소.
변방 왜구들과 오랑캐 때문에 항상 전쟁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하오.
이 모든 두려움이 없는 곳을 찾거나 신선과 같은 존재를 따르는 것은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불국토, 윤회, 성불 같은 불교의 이상적 개념을 배척하고 있어서 백성들은 더욱 혼란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신선을 석가나 여러 부처의 대용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둘째는, 아직 성리학적 이상향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유학은 모두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학입니다.
성리학은 유학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지요.
우리는 아직 성리학을 체득하지 못했고 새로운 세상을 제시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옛날 문헌에 나오는 허무맹랑한 신선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사람의 우주적 본성인 인의예지는 모두 사회 속에서 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인(仁)은 사람을 존중하고 의(義)는 양심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입니다. 예(禮)는 사회와 사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는 질서이고, 지(智)는 혼란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한 학문이지요.

모두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학문인데, 정작 우리는 성리학이 구현하는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안평대군과 박팽년의 이야기는 점차 깊어지고 있었다.  

   

“박팽년이 생각하는 조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막연합니다.”  

   

“태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태종대왕은 나라의 기틀을 다지셨소. 부왕인 세종대왕께서는 올바른 정치를 통해 태평성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제는 조선의 구체적인 태평성대를 설계할 때가 되었소.”  

   

박팽년은 조심스럽게 말을 받는다.    

 

“무슨 계획이라고 있는 것입니까?”


“일단 백악산 기슭에 집을 하나 지을 생각이오. 이름도 생각해 두었소. 무릉과 계곡의 앞 글자를 딴 무계정사입니다.
여기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여러 문인과 조선의 미래와 꿈을 이야기해 보고 싶소.”     


“대군께서 소장하신 귀한 글과 그림은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임금께서는 매년 100여 점의 그림, 세화(歲畫)를 그려 관료들에게 하사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대군께서 가진 큰 뜻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도연명의 무릉도원 이야기를 그린 것이 좋겠습니다.”     

[안중식/도원문진도/비단에 채색/164*70.4cm/1913년/리움미술관 소장. 도원문진은 도원에 들어가는 곳을 묻는다는 뜻이다. 조선이 망한 후, 새로운 이상향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 담긴 작품이다.]     


“무릉도원에 관한 그림이라면 선비들이 시시하게 생각할 것이요.
선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강하고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오.
어젯밤 나의 꿈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좋을 듯하오. 중국의 도연명이 아니라 조선 왕자인 나의 꿈 말이오.”     


“좋은 생각이옵니다.
대군의 꿈을 그림에 담아내었다면 이 나라 선비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당장 시작합시다.
우리에게는 조선 최고의 화원인 안견이 있지 않소.
안견은 5년 전에 내 초상화를 그렸소. 이 인연으로 항상 내 곁에 두고 교류하고 있었소.”  

   

안평대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봐라, 당장 화원 안견을 불러라.”  

   

박팽년이 다급히 소매를 잡으며 애걸하듯 말한다.

     

“대군, 아침 일찍 나왔더니 무척 배가 고픕니다. 점심부터 먹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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