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安堅)의 생몰 연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대략 1400년 전후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인 [몽유도원도]를 그릴 때는 미술적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45세 전후였을 것이다.
고려시대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원(圖畵院)이 있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도화원은 그대로 존속했다.
이후 1470년(성종1년)에 도화서로 개칭되면서 종6품 아문으로 격하되었다. 별제(도화서 수장)는 종6품으로 화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였다.
안견은 세종 때, 종6품 벼슬인 선화(善畵)에서 체아직(遞兒職, 일종의 임시직)인 정4품 호군으로 승진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의 화원으로서 종6품의 제한을 넘은 최초의 사례였다.
신숙주의 기록에 의하면,
안견은 총명하고 사리가 밝으며 과묵했다고 한다. 안견은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고, 안평대군도 안견 작품을 30점이나 소장하며 총애했다.
“대군, 부름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당시 안견은 안평대군의 거처인 비애당에 머물고 있었다.
“내가 지난밤에 아주 멋진 꿈을 꾸었소. 이 꿈의 기억이 사라기지 전에 그림으로 남기려고 하오.”
안견은 지필묵을 꺼내어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빠르게 적었다.
“그림은 최대한 빠르게 그리도록 하시오. 내가 수시로 검증할 것이오.
그림이 완성되면 아바마마(세종)께 제일 먼저 보여드릴 것입니다.”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빠르게 초안을 만들어 보이겠나이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안견을 향해 안평대군이 말한다.
“도화원에 적극 협조하라고 말해 놓았소. 이밖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해보시오.”
“대군의 서화 수장고에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안평대군이 자신의 호를 따라 집을 짓고 살았던 인왕산 자락 비애당이 있던 곳이다. 전란에 불타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안견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안평대군이 소장하고 있던 고화(古畵)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당시 안평대군은 최고의 서화 수집가였다.
신숙주의 기록에 의하면, 안평대군은 222점에 이르는 방대한 서화를 수집했다고 한다.
위진 남북조의 고개지, 당나라, 송나라의 소동파, 원나라의 조맹부의 작품을 비롯한 대부분은 중국 명화였다고 전한다.
거처로 돌아온 안견은 사람을 시켜 도화원에 있는 실력 있는 화원 3명을 부르고 미술재료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화원들이 올 동안 비애당 서화 수장고로 들어가 작품을 살폈다.
안견도 도연명의 무릉도원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린 사례는 보지 못했다. 그렇게 100여 점의 중국의 그림을 살폈지만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찾지 못했다.
“사례가 될 만한 그림은 없다. 그렇다면 대군의 꿈 이야기를 상상을 가미해 그대로 그려볼 수밖에 없다.”
거처에는 이미 화원들이 와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단에 그릴 것이다. 크기는 너비 130cm, 높이 45cm 정도로 하고 족자로 만들 것이다. 배첩장은 불렀느냐?”
화원들이 그림틀을 짜고 벼루에 먹을 갈고, 물감과 각종 미술용 붓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오늘 중으로 초안을 그려 대군에게 검안을 받아야 한다.”
안견은 작은 종이에 가는 숯으로 초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기고 찢어버린 종이가 사방에 쌓였다.
“일단 이야기의 전개 순서대로 그려보자. 음... 평범한 산길에서 시작해 높은 산, 기암괴석이 나오고, 이를 통과하면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고 했지.”
우리 그림에서 작품을 보는 순서는 우측에서 좌측이다. 따라서 시간에 따른 사건의 전개도 우측에서 좌측으로 그린다.
“좁은 동굴은 도원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이니 화면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아참, 산관야복의 사람도 그려 넣어야지. 그런데 안평대군이나 박팽년, 신숙주도 그려야 하나?”
[청전 이상범/무릉도원도 10폭/비단에 채색/1922년 일제강점기/이건희 컬렉션.
이상범은 도원문진도를 그린 안중식의 제자였다. 안중식의 그림이 세로인데 반해, 이상범의 그림은 가로로 긴 그림이다. 채색기법이나 태점의 표현이 스승과 유사하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림 속의 기암괴석이나 높은 산봉우리, 골짜기의 표현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다.
배를 타고 도원 입구에 다다른 어부가 있다. 아직 도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상범이 25세에 그린 작품으로 일제강점기이다. 조선이 망했기 때문에 새로운 도원(이상세계)을 찾는 과정이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화실에는 다섯 개의 초를 뭉친 10여 개의 촛불 더미가 불을 밝혔다. 준비를 마친 미술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과 바닥에는 기암괴석이나 복숭아나무, 집, 사람을 그린 수십 장의 밑그림이 널려 있다.
넓은 종이를 펼쳤다.
안견은 숯으로 초본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초본이 통과되면 이후 먹으로 세세하게 그릴 것이다.
화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안평대군과 박팽년이 도원으로 들어가기 전의 장면, 도원과 현실의 경계를 이루는 높은 봉우리의 기암괴석과 동굴 부분, 마지막으로 넓은 공간에 펼쳐진 도화동 장면이다.
도원으로 들어가기 전의 장면에는 말을 탄 안평대군과 박팽년을, 그 앞에서 길을 알려주는 노인을 그렸다.
도원의 경계는 높은 기암괴석 사이로 좁은 길을 넣어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그렸다.
“내일 아침 일찍 이 초본을 대군께 보여드려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