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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Jul 04. 2024

오봉도(五峰圖)의 탄생 1화

1674년 숙종이 14세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숙종은 부왕인 헌종의 죽음을 무척 슬퍼하였다.

약방에서 관례에 따라 보약을 지어 올리면서 드시기를 권유하자,

임금이 통곡하면서 말한다.


“내가 밥을 잘 먹고 있는데, 경들은 어찌 보약을 먹으라 하는가?

아버님을 생각하면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여 그저 목이 메어 울 뿐이다. 내가 없던 병이 더 생기게 되었으니, 경들은 다시는 이러한 무익한 말을 하지 말라.”


영의정을 비롯한 고관 대신들이 모였다.


“빨리 정사를 돌봐야 하는데 저리 슬퍼하니 옥체가 상할까 염려되오.

분위기를 쇄신할 방안이 없겠소?”


“임금이 왕의 본분을 잊지 않고 정사에 전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딱히 다른 방법도 없는데, 그리 합시다. 단 한 번 보고 수장고에 넣는 그림보다는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림이면 좋겠소.”


[오봉도]가 정확히 언제 창안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최초의 기록이다.


‘이날 새벽에 신농씨(新農氏)와 후직(后稷)의 위판(位版)을 모셔다가 제단 위에 봉안(奉安)하고 제물(祭物)과 의장(儀仗)을 모두 갖추었는데, 비바람이 크게 일어 온종일 그치지 않아, 관경대(觀耕臺)에 설치한 어좌(御座)의 오악(五岳) 그림 병풍이 모두 찢어지므로...

-숙종실록 6권, 1677년 숙종 3년 2월 27일’


‘어좌의 오악(五岳) 그림 병풍’은 [오봉도]를 지칭한다.

그냥 오악 그림 병풍이 아니라 어좌, 즉 왕이 앉는 자리에 있는 그림이라는 말이다.

이는 숙종 초기부터 [오봉도]가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오봉도 4폭 병풍/비단에 채색/231.3*334cm/19세기 말/국립고궁박물관. 병풍으로 만들면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로 임금이 야외로 행차할 때 사용했다. 왕조실록에 기록된 오악병의 모습은 양식화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일 것이다. 사실적인 선묘를 바탕으로 수묵과 채색이 결합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한다.]


[오봉도]를 미술 조형적으로 분석해 보면 [십장생도]와 유사하다.

대부분 형상은 [십장생도]에서 가져왔다.

[십장생도]에서 구름, 학, 거북, 사슴, 수풀 같은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면 곧바로 [오봉도]의 핵심 요소들이 만들어진다.


[십장생도]는 고려 때부터 있었다.

불로장생의 도교적 내용으로 세화로 쓰이거나 민간에서 유통되었다.

우리가 보는 [십장생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청나라의 [요지연도]나 [해학반도도]의 결합으로 새롭게 창작된 그림이다.

[십장생도]와 마찬가지로 [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 같은 유학권 나라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창적인 그림이다.

따라서 독창적인 [십장생도]가 완성된 이후에 이를 바탕으로 [오봉도]가 창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봉도]는 왕을 상징하는, 왕을 위한 특화된 그림이다.

그렇다면 [오봉도]의 뜻을 알아야 한다.

[십장생도]는 완성된 장생도란 뜻으로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 민본정치를 통한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이는 조선의 건국이념과 성리학의 최종 가치인 ‘태평성대, 민본세상’과 일치한다.


[오봉도]가 정치의 정점에 있는 왕을 위한 특화된 그림이라는 것과 연결하면,

‘민본세상, 태평성대를 구현하는 사람 혹은 역할’이라는 뜻이 된다.


왕을 위한 특화된 그림을 창안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도화서]에서는 주관화사를 중심으로 동참화사, 수종화사 10여 명을 묶어 조직을 짜고 창작에 들어갔다.

[십장생도]를 기반으로 형상을 만드는 것에는 합의했지만 곧 커다란 조형적 문제에 봉착한다.

[십장생도]와 같이 수려하고 복잡한 그림을 배경에 두면 왕이 그림 속에 파묻혀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천재가 필요하다.

주관화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구도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좌우대칭구도’였다.

좌우대칭구도는 왕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형상을 간결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좌우에 각 두 그루의 소나무를 배치하여 안정감을 주고 시선을 중심으로 모았다.

중앙에 큰 봉우리를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균형을 잡으면서 봉우리와 폭포를 그려 넣었다.

이렇게 조선 시대 최초로 좌우대칭형 그림이 완성되었다.

[전례가 없고 획기적인 좌우대칭구도를 사용했다. 이는 미술조형원리로 분석해야 한다. 좌우대칭구도는 도상을 간결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시선을 중앙에 집중시키는 장점을 통해 왕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붉은 해를 반드시 그려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붉은 해는 영원성의 상징으로, 흔히 주요 행사에서 천세를 외치는 것처럼 핵심적인 요소이다.

민본세상, 종묘사직은 영원해야 한다.


시간의 한계를 두는 것은 조선이 망한다는 말이고, 이는 역모와 연결될 수도 있는 무서운 개념이었다.

좌우대칭형 그림인 [오봉도]에서 붉은 해를 그릴 수 있는 자리는 중앙뿐이다.


이런 [오봉도]의 초벌그림을 본 영의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붉은 해가 중앙 봉우리 위에 떠 있고, 그 아래 왕이 앉게 된다는 말이지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럼, 왕의 머리 위에 태양이 있는 셈이네요.”


찬찬히 그림을 보던 예조판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태양과 왕이 동격이 된다는 말인데? 다다...당장 주관화사를 불러라!”


조선에서 왕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었다.

왕은 신분상 양인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선비의 대표였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태양에 인격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왕의 머리 위에 태양을 그려 넣으면 왕과 태양이 동일시되거나 태양이 위임한 존재 따위의 수많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는 곧바로 정치사상의 문제를 일으킨다.


[십장생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을 그려 넣으면, 그림 속의 사람이 곧 신이 되고 숭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안평대군이 성삼문, 박팽년과 같은 선비들과 함께 꿈속에서 거닐었던 세상을 그린 [몽유도원도]에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같다.


가끔 왕을 태양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왕의 정치력이 만백성에게 미친다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지 태양과 같은 절대적 존재로 여긴 것은 아니다.


태양은 영원성을 뜻하는 아침 해로 한정시켰다.

사대부들은 아침 해를 양심의 상징으로 수용했다.

[몽유도원도, 십장생도, 오봉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몽유도원도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요지연도, 해학반도도와 결합하여 새로운 십장생도가 창안될 수 있었다. 새로운 십장생도가 완성되자 이를 바탕으로 간결한 형태의 오봉도가 창안되었다고 추정한다.]


“이보게 주관화사. 붉은 해를 뺄 수 없으니, 우측이든 좌측이든 한쪽 옆으로 옮기는 게 어떠하겠는가?”


“균형이 무너져 보기에 좋지 않사옵니다. 자칫 지금까지 공들여 창안한 대칭 구도를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동참화사가 말한다.


“태양을 오른쪽으로 옮기고 왼쪽에는 보름달을 그려 넣어 균형을 잡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예조판서가 펄쩍 뛰며 말한다.


“그건 아니 될 말이다. 달은 부정의 상징이다. 임금을 위한 그림에 어려움이나 난세, 고통을 뜻하는 달을 그려 넣을 수는 없다. 해와 달을 함께 그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 된다.

일월사상은 미신이자 도교이다. 조선은 유학의 나라로 도교를 믿지 않는다.”


공식기록에는 오악도, 오봉도라고 했다.

[오봉도]를 일월오봉도로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

조선은 성리학과 유학의 나라였지 도교의 나라가 아니다.


도화서 별제가 거든다.


“중종대왕 시절, 조광조 선생께서 도교 관청인 소격서를 혁파했다고 들었습니다.

도교의 요소가 들어간 그림을 그렸다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고초를 치를 수도 있으니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마시오.”


“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묘안이 없겠는가?”


뒤에 앉아있던 수종화사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말한다.


“양쪽에 다 그리면 됩니다.”


“두 개의 해를 그리자는 말이냐? 아니, 어떻게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떠 있을 수 있지?”


“어차피 그림이옵니다. 현실의 실제 풍경이 아니라 진정 원하고 바라는 세상, 꿈을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붉은 해는 천세를 뜻하니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겠지만, 또 하나의 해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난감하다.”

[18세기 후반, 오봉도는 인문학적 상징이 정착되고 안정된 구도와 수려한 진채기법이 정착되면서 절정기에 이른다.]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주관화사가 거든다.


“민본세상의 전성기를 뜻하는 낮 해를 그리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색상도 겹치지 않게 하얀색이 좋을 듯 하옵니다.”


“음... 묘안이로다. 하지만 장차 이를 두고 논란이 될 것만은 틀림없다.”


채색을 담당하는 동참화사가 묻는다.


“배경색은 어떻게 하오리까?”


주관화사가 답한다.


“그거야 뭐 어렵소? 그냥 아무것도 칠하지 말고 놔두시오. 이후 배접지를 깔면 자연스럽게 황색이 될 것이오.”


이렇게 좌우대칭형 구도에 두 개의 해를 그린 [오봉도]가 완성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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