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서양문화의 바탕색이 흰색인 것과 비견된다.
그림 속의 바탕색은 곧 공간의 색이다.
그렇다면 황색으로 규정한 이유는 뭘까?
홍문관 대제학이 도화서 화원에게 묻는다.
“오봉도의 하늘에 황색을 칠한 연유가 무엇이오?”
화원이 눈치를 보며 대답한다.
“관례에 따라 그렸을 뿐, 자세한 것은 모르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로 유교에 따른 철학관을 가지고 있소.
유교 나라의 기본이 되는 책은 [천자문, 千字文]이오.
[천자문]은 중국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무제(武帝)의 명으로 지은 책으로 4자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고시(古詩)입니다.”
“저 또한 천자문을 익혔습니다.”
“천자문의 가장 큰 특징은 유교의 우주관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은 천자문의 첫 구절로 ‘하늘은 가물가물하고, 땅은 누렇다.’라고 해석하지요.
땅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런 공간을 철학적 개념으로 ‘누렇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색채를 다루는 화원이니 아시겠지요. ‘누렇다’를 현실의 색으로 표현하면 무슨 색이 됩니까?”
화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황색입니다. 오봉도의 배경이 되는 하늘에 황색을 칠한 연유가 여기에 있군요.”
[오봉도의 하늘에 아무 색도 칠하지 않았다.
황색으로 보이는 것은 황색 배접지를 깔았기 때문이다. 황색은 우리 그림의 바탕색이다. 오봉도, 십장생도를 비롯한 궁중 채색화에는 황색을 칠했다.]
초기 [오봉도]의 배경이 되는 하늘에는 아무 색도 칠하지 않았다.
하늘과 공간을 한 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봉도]뿐만 아니라 대부분 채색화는 황색을 칠하거나,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상태에서 황색 배접지를 깔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때부터 오봉도의 하늘에 가물가물한 색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연유가 있지 않겠소?”
“정녕 모르옵니다.”
화원의 사회적 신분은 중인(中人)이다.
중인은 전문성을 가진 하급 관료로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정치적 견해를 내놓거나 상소를 올리는 일도 없었다.
도화서 화원 정도라면 오봉도의 배경색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경색이나 하늘색에 관한 문제는 철학이나 정치와 직결되기에 모른다고 한 것이다.
“성리학은 사회적 인간에 대한 학문입니다.
따라서 사람 위에 군림하는 영웅이나 절대자 같은 특별한 존재는 있을 수 없소.
무엇보다 하늘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불온하게 여깁니다.”
“하늘에 가물가물한 색을 칠한 것이 천자문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가물가물한 것을 현실 색으로 표현하면 감색(紺色)이 됩니다.
감색(紺色, navy blue)은 매우 어두운 청색입니다.
검은색이 아니라 짙푸른 청색을 사용한 이유는 색이 없는 검정을 꺼리는 유교 문화 때문인 줄로 압니다.”
[최소한의 색을 사용해 가물가물한 하늘을 표현했다. 짙은 청색(감색, 紺色)으로 보이는 것은 검은색을 꺼리는 유학문화 때문이다. 다른 그림과 달리, 오봉도의 하늘에만 감색을 칠한 것은 왕과 하늘의 관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지가 들어가 있다.]
“그러고 보니 십장생도와 같은 다른 그림의 하늘에는 감색을 칠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봉도의 하늘에만 감색을 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봉도가 왕의 그림이기 때문이오. 왕과 하늘을 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소. 이들은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을 도교나 미신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사이비(似而非)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하늘과 왕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감색으로 칠한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다.
거무튀튀하게 칠하던 [오봉도]의 하늘에 변화가 생긴다.
하늘을 청색으로 칠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어좌 뒤편에 있는 오봉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임금이 말한다.
“이보시오, 예조판서 대감. [오봉도]의 하늘에 떠 있는 것이 두 개의 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해가 밤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아 영 보기가 싫습니다.”
“이건 건국 이래 오래된 전통이옵고, 하늘에 대해서는 그저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시오. 여태 우리는 [천자문]의 우주관에 따라 하늘을 가물가물한 색으로 칠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조대왕 때, 승문원 사자관이던 한석봉은 [천자문]이 현실과 다르다며 조선의 방식으로 바꾸었고, 그 후 몇 번의 증보 작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석봉천자문]이 유생들의 기본교재인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중국의 [천자문]은 성리학이 정립되기도 전에 편찬한 것입니다.
조선은 세계에서 성리학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아닙니까. 주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한 지가 수백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고리타분한 옛것을 고집하니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색을 칠하면 좋을지요?”
“대사간은 어찌 생각하시오?”
대사간은 사간원의 수장이다.
사간원은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언론과 공론을 주도하는 핵심기관이다. 이 기관을 삼사(三司)라고 했다.
조선은 왕조 국가였음에도 왕이 마음대로 통치할 수는 없는 나라였다. 조선 시대에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준은 공론(公論)이었다.
그래서 사간원 수장의 의견은 아주 중요했다.
“성리학에서 하늘, 우주는 사단(四端, 인의예지)의 근본 자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인의예지를 상징하는 색이 좋지 않겠습니까?”
예조판서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렇긴 하온데, 우주적 심성인 인의예지를 무슨 색으로 표현할지 막막하옵니다.”
임금이 말한다.
“선비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가?”
“그건 왜 물으십니까?”
“선비는 성리학을 공부하고 체화한 사람이오. 이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색이라면, 진정 우주 본성의 색이 아니겠소?”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선비들이 좋아하는 색은 청색이옵니다.”
“청색을 왜 좋아하는가?”
“군자의 맑은 마음을 현실적인 색으로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군자의 맑은 마음인 맑을 청(淸)이 푸를 청(靑)으로 유추되었습니다.”
임금이 무릎을 치며 말한다.
“오호, 그럼 청색으로 칠하면 되겠습니다.”
[오봉도 4폭 병풍/231.3cm*334cm/비단에 채색/19세기 말/국립고궁박물관. 오봉도의 하늘을 진하고 선명한 청색으로 칠했다.]
당시 청색은 파란색과 푸른색이 결합한 청록색이었다.
실제 청록색으로 하늘을 칠한 [오봉도]가 창작된다.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녹색이 슬며시 빠진 파란색의 하늘이 그려지기도 한다.
[오봉도]의 하늘색은 성리학의 우주관에 의해 유추된 색이자, 선비들의 양심을 담은 현실적인 색이다.
[오봉도 6폭 병풍이다. 산봉우리나 바다는 탁하고 연한 색을 사용했지만, 하늘은 선명한 청색으로 칠했다. 19세기 이후 오봉도의 제작 수준은 현저히 떨어진다. 조선의 국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반해 청색은 더욱 선명해진다. 심지어는 그림 장식에도 청색 비단을 사용했다.]
예조판서는 도화서에 새로운 [오봉도]를 제작하라고 명령했다.
도화서에서는 최고급 석청(石淸)을 준비했다. 영롱한 푸른빛이 나올 때까지 칠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완성된 오봉도는 4폭 병풍으로 만들어 왕의 거처에 놓았다.
예조판서가 제작 비용을 댄 고위관료와 창작에 참여한 화원의 명단, 제작 과정을 담은 보고서를 왕에게 올렸다.
장계(狀啓)를 들고 오봉도를 감상하던 임금이 말한다.
“이 그림을 제작한 화원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주관화사에게는 종6품 현감의 벼슬을, 그 아래에는 공에 맞게 상을 내려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