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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Aug 08. 2024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꽃그림-궁중모란도 2화

"단언컨대, [궁중모란도]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꽃그림이다."

    

'완벽한 모란 그림'이라고 하지 않고 '완벽한 꽃그림'이라고 하는 까닭은,

궁중모란도가 세상의 모든 꽃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모란 씨앗과 그림을 수입한 지 1000여 년 만에 일이다.


[궁중모란도]의 명칭은 기존의 모란 그림과 차별하기 위함이다.

[궁중모란도]는 조선의 [도화서]에서 창작하여 궁궐을 장식한 그림이자 오랜 세월 양식화를 거쳐 보편적 조형성을 획득한 작품을 말한다.

수묵으로 그린 모란이나 민화와 다르고, 사실적으로 그린 공필(工筆) 모란도와도 다르다.      

[중국은 모란의 종주국이다. 해마다 전국에서 수많은 모란 축제가 열리고 수천 명의 전문화가들이 있다고 전한다.]


모란을 재배했던 시기는 4천여 년이고, 그림으로 그려진 지도 1000년이 넘었을 것이다.

특히, 모란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매년 수백 곳에서 모란 축제가 열리고, 전문 화가만 수천 명이 넘는다는 소문이 있다.

이런 흐름을 몰아 국화(國花)로 지정하려고 한다.      

중국에서 매년 수만 점 이상의 모란 그림이 그려져 유통되지만 [궁중모란도]처럼 완성된 모란이나 완성된 꽃그림은 없다.     


“화사(畵史) 신한동, 회사(繪史) 장벽만(張璧萬), 허담은 모란병풍을 그리라.”


장벽만은 대표적인 화원 가문인 인동 장씨 출신으로, 형 장득만 역시 화원으로 국가 종이제작관청의 별제(대표)를 지냈다.

허담은 화원 가문인 양천허씨(陽川許氏) 출신으로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화원이었다.      

의궤에 기록된 화원 신한동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과 활동 시기가 겹치고, 정작 정순왕후 가례에

신한평의 이름이 빠져있다는 점을 본다면, 동일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궁중모란도는 강세황의 수묵모란도나 중국 모란도와는 전혀 다른 도상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도화서 책임자인 별제가 3명의 화원을 따로 불렀다.   

  

"이번에 제작할 모란 병풍은 10폭, 2좌이다. 제작 기간은 6개월이다.

작품 제작을 도와주는 차비노(差備奴) 길동과 상길이를 붙여주마. 특별히 배첩장 1명도 참여한다."

     

"화원 3명과 노비 2명, 총 5명이 참여하여 병풍 2개를 6개월 안에 그리라는 말씀이지요. 뭐, 시간은 넉넉합니다.

쉬엄쉬엄해도 충분히 기안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례의 규모를 보았을 때, 모란 병풍의 숫자가 너무 작지 않습니까? 경험상 족히 10좌 정도는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별제께서 저희를 특별히 이뻐하셔서 이리 편하게 정한 것입니까? 하하하..."

  

"그럴리가 있겠느냐."

    

별제가 비웃듯이 말한다.    

 

"화원 허담의 말대로, 이번 가례에 들어갈 모란 병풍은 총 9좌이다. 그중에 2좌는 새로 창작하고 나머지 7좌는 보수하라는 명령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있던 모란 병풍에 덧그려 사용한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좋은 행사에 새 작품이 아니라 보수한 작품을 사용하다니요?"   

   

"이미 예조판서께 여쭈었네. 선례가 없는 일이니 하명을 거두어 달라고.

그랬더니 대감께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시더군."  

   

"별제, 이건 왕명이네. 알다시피 임금(영조)께서 얼마나 청빈한 분이신가. 작은 물건 하나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네.

하물며 병풍 그림 1좌 제작비가 천만 원이 넘는 거금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실 분이 아니라네."

   

"별제, 자네도 알겠지만, 이번 정순왕후 가례는 규모가 역대급이네. 이미 가례도감이 설치되었고, 반차도(행렬도)와 의궤(기록그림)를 제작할 계획도 세웠다네.

정순왕후를 궁궐로 데리고 들어오는 행사만 해도 총 1,299명과 말 379필이 동원할 계획이네.

이미 왕실 어르신들은 혼인식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며 불평하시네."

   

화원 신한동이 대답한다.    

 

"이제야 배첩장을 배속시킨 이유를 알겠습니다. 모란 병풍 7좌를 보수하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일단 배첩장과 함께 서화 수장고에 있는 오래된 모란 병풍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어떤 것을, 어느 정도로 보수해야 하는지 점검하는 데만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이보게들, 부지런히 움직이게나."

[땅바닥 위에 모란을 세워 그린 기본형의 그림이다. 보통 8폭에서 10폭으로 제작한다. 평균 크기는 높이 2m, 가로 8m 정도이다. 한 폭의 완성된 도상을 약간 변주하여 그린다. 반복은 집중력과 장식성을 높인다.]


[도화서] 서화 수장고의 문이 열렸다.

서화 수장고는 각종 그림과 도안들은 보관하는 장소이다.

영조의 정부인인 정성왕후(貞聖王后) 장례식에 사용했던 모란 병풍 2좌와 오래되어 폐기할 예정인 작품 중에서 5좌를 선별했다.

5년 전 국장 때 사용했던 병풍은 두세 군데 찢어져 있었지만 색상의 상태는 좋았다.

하지만 나머지는 비단이 갈라지고 색은 산화되어 마치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화원 장벽만이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대략 50~100년은 넘었을 것이다. 이것은 왜란 직후에 그려졌을 것이네."    

  

"왕실에서 사용하는 병풍 그림은 대략 20년 전후로 폐기하고 다시 그리지 않소. 그런데 어떻게 100년 가까이나 되는 작품을 보관하고 있단 말이오?"

    

"작품을 자세히 보시오. 지금의 모란 그림과는 짜임새나 형상이 무척 다릅니다. 아마도 보관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오"  

   

"그렇군요. 모란 그림의 역사를 보는 듯하오."

     

신한동이 대화에 끼어든다.    

 

"자자. 감상과 분석은 나중에 합시다. 아마도 지겹도록 보아야 할 거요."

    

"2좌의 수리는 쉬울 것 같소. 일단 배첩장이 찢어진 부분을 붙이고 나면 채색은 허담 화원이 맡아주시오.

오래된 5좌는 일단 도화서에 펼쳐놓고 어떻게 보수할 것인지 의논해 봅시다.

길동아, 상길아. 너희들이 수고해야겠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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