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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May 19. 2020

꽃피는 강진 ‘다산베아채’ 단상

강진만은 골프장보다는 순례길이 어울리는 곳이다.

해남에서 강진 장흥 보성 고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해안 길은 더 건드리지 않으면 좋겠다.



길섶에 새빨간 모란이 드문드문 피고 있다. 새파란 하늘 아래 초록으로 물결치는 보리밭과 샛노란 유채꽃 너머로 강진만의 따사로운 바다가 물밀어온다. 이곳에서 자란 시인 영랑(永郎)이 왜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했는지 저절로 알겠다.  



다산(茶山)이라는 이름은 골프장 하나가 감당하기에 가볍지 않다.
골프장 바로 뒷산이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는 만덕산이다. 멀리 월출산 암봉에서 치고 내려온 호남정맥의 강렬한 기운이 주작산, 덕룡산의 금강 병풍 봉우리들로 솟아오르며 바다를 만나 멈춘다. 탐진강 하구의 아담한 퇴적 평야는 완도 쪽에서 밀고 올라온 바다를 만나 강진만을 이룬다.
너른 강 같은 이 바닷길에 왜구(倭寇)와 장보고(張保皐)의 배들이 번갈아 드나들었을 것이다.



다산 또한 초당에서 매일 이 바다를 보셨다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40세 되던 해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을 살면서, 11년 동안 ‘다산 초당’에서 지냈다.



초당 뒤 바위에 선생께서 손수 새겼다는 ‘정석(丁石)’ 글자를 본다.



‘무언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외로움’
을 아느냐 묻는 듯하다.


유홍준 교수가 다산의 글씨를 평하며
“추사는 진짜 예술가로서의 프로 명필, 다산은 프로가 아니면서 프로를 넘어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를 보여주는 명필”
이라고 한 것에 한편으로 공감한다.
다만 나는 글씨를 대하는 두 분의 생각이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丁,石’ 둘 다 어디 숨을 데 없이 단순한 글자들이다.
다산은 아무런 멋을 내지 않고 두 글자에 자신을 새겨 넣었다. 정이 석이고 석이 정이다. 새기는 이가 새겨지는 바위다. 그에게 글씨가 예(藝)나 술(術)이었겠는가.
이 바위를 넘어 이곳이 다산이며 이 시간 이후가 다산 아닌가. 과연 다산 선생이로구나.



‘다산베아채’는 정약용 선생의 호와 더불어, 단테의 첫사랑이자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골프장은 강진만 바다에 바로 붙어 있다. 27홀 코스의 14개 홀에서 바다가 보이고 그 중 몇 개 홀은 바다와 접한다. 북쪽과 서쪽에는 만덕산 덕룡산 주작산이 병풍처럼 골프장을 감싸고 있는데 먼 쪽의 기암영봉들도 골프장의 풍치를 크게 돕는다. 이만한 풍광 입지는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주작산이다


퍼블릭코스로서의 수익성을 고려한 설계가 돋보이며 편안하고 무난히 아름답다.
바위들의 골기가 강한 자리여서 골프장을 조성할 때 바위가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코스 내에 바위 조형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자연 바위를 노출한 조형 배치가 몇 군데 있었다면 더 조화로웠을 듯하다.
몇 개 홀의 조형은 이곳의 풍광이 가진 장점을 다 살리지 못해서 아쉽다. 그린 너머에 바로 바다가 있는데 나무들이 그 가슴 설레는 경치를 막아서게 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홀이 여럿이다.



이렇듯 예사롭지 않은 자리에 골프장을 허락한 것은 한갓 인간의 정부가 아닐 터이다.
산의 길, 물의 길, 바람의 길, 바다의 길 한 귀퉁이에 한 세월 공놀이 길을 낸 것뿐이다. 이곳은 역사의 길 한 모퉁이에도 세를 낸 셈이고.


기왕에 이 터를 만들었으니 지극한 경지에 이르기 바랄 뿐이다.


마음에 새긴다 정,석(丁,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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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초 다녀온 뒤 적은 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둘째권 집필을 위한 골프장 탐사 중의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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