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山中) 골프코스는 산길처럼 굽이굽이 난 게 자연스럽다.
산허리를 깎아 억지로 평평하게 낸 계단식 코스를 좋아하는 이도 아직 있더라만,
산중에 골프장을 만드는 형편에서는 구릉과 계곡을 장점으로 살려낸 코스를 빚어냄이 옳다.
마에스트로CC는 스코틀랜드 인(로버트 오웬 페인터)이 설계했는데 한국의 산중 지형을 살뜰하게 살려냈다.
용인과 맞닿은 안성의 나지막한 금병산(235m) 계곡을 넘고 물을 건너며 구릉을 돌아가면서, 단 한 샷도 생각 없이 칠 수 없는 골프코스가 펼쳐진다.
이렇게 매 홀마다 다른 모습으로 골퍼의 도전을 유혹하면서, 모든 홀이 기억에 남는 개성을 갖춘 산중코스는 매우 드물다.
이 산이 이어진 한남정맥(漢南正脈)을 따라가면 가까운 곳에 천주교 ‘미리내성지’를 품은 시궁산(514m)이 있고 그 산 한쪽 기슭에 화산CC가 있다.
화산CC가 현묘한 동양화 같다면 마에스트로CC는 감수성 예민한 파스텔화 같은 느낌이다.
“짧고 장타자들에게 불리한 곳”이라고 이 코스를 평하는 이들도 있더라만, 7,141야드 코스가 짧다는 이를 이해해야 할지 존경해야 할지 모르겠다.
각 홀마다 요구하는 전략이 다르고, 그린으로 향하는 자리마다 필요한 샷과 생각이 다른 것이다. (짧다고 느끼면 ‘백티’에서 치면 된다)
거의 모든 홀들에 도전의 유혹과 전략의 선택이 있다.
특히 200미터 지점 수직벽 벙커 너머에 페어웨이가 있는 2번 홀은 장타자에게 원 온까지 유도하는 ‘시그니처 홀’이며, 그 다음에도 쉴 틈 없이 도전적인 홀들이 이어진다.
(호수를 넘기면 세컨드 온에 도전할 수 있는 4번 파5 홀... 장타자는 원 온을 노릴 수 있는 5번 파4 홀... 짧아서 세컨드 온을 유도하지만 그린 주변이 까다로운 6번 ‘우 도그렉’ 파5 홀 등......)
후반 홀에서도 모험과 전략이 엇갈리는 유혹은 계속되고, 15번 홀에서 18번 홀까지의 엔딩 구간은 인상적이다. 특히 18번 파5 홀의 아일랜드 그린은 게임의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극적인 승부처이다.
(이 글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집필을 위한 답사 단상이므로, 이 코스를 책에 싣는다면, 각 홀에 대해서는 본격 탐사기에서 다루고자 한다)
마에스트로CC는 한 때 반짝 주목받았으나 7,8년 동안 저평가되어 왔다.
이 골프장이 “명문 회원제”라며 회원권을 분양하던 10여 년 전, 회원제 골프장 건설 시대의 막차는 이미 떠나 있었다.
그 후 법정관리를 겪으면서 한동안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몇 년 전에 부영건설이 인수한 뒤로 회복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 퍼블릭코스가 되어 많은 손님을 받아야 하는 까닭에 그린 스피드를 느리게 관리하는데도 그린이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그린 주변의 관용성이 적고 그린에 올린 뒤에도 입체적 상상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각 홀들마다 특별하고 아기자기한 설계 조형을 추구하다보니, 한번의 실수가 큰 실점으로 이어지기 쉽고 초심자 공략 루트의 관용성이 덜하다는 점에서 골퍼들 사이에 좋고 싫음이 갈라지기도 한다.
내륙지방 퍼블릭코스가 감당하기 쉽지 않을 켄터키블루그래스 한지형 양잔디가 한여름 열대야를 이겨내고 잘 관리되기를 기대한다.
코스에서 고압 송전탑이 자주 보이는 게 흠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송전탑이 없으면 우리가 문명생활을 할 수 없는데 어쩌겠는가.
골프장은 본디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황무지에 만드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삼아왔던 것이니, 송전탑 아래에 골프장이 있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봐야 한다고 여긴다.
딱 10년 전 이곳 시범라운드에서 나는 생애 최저타를 쳤다.
그때는 코스 관리 상태와 서비스가 초특급이었던 반면 골프장 전체에서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움이 엿보였다. 특히 유럽의 궁전 시늉으로 지은 클럽하우스에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클럽하우스를 값비싸게 짓는 경쟁이 치열하던 때였는데, 사람을 모시기보다는 위세로 누르려는 듯 '고품격'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지나쳐, 오히려 품격이 덜해 보였다.
또한 클럽하우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다 보니 코스 자체 매력에 대한 집중이 덜되어 서로 겉도는 것 같기도 했다.
엊그제 이곳에서 10년 전보다 10타 이상 더 쳤지만, 나는 이 골프장이 그때보다 많이 조화로워졌음을 느꼈다. 내 눈이 클럽하우스에 익숙해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건축물의 과잉 치장이 어딘가 많이 걷힌듯하여 골프장으로서 온전해 보였다.
골프를 흔히 ‘귀족 스포츠’라고들 하는데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귀족들은 골프보다는 궁정 안에서 자기들끼리 할 수 있는 테니스 등을 더 많이 즐겼다.
귀족의 윗자리 계급일수록 더욱 그러했고 골프는 기사 계급이나 귀족적 생활문화를 동경하고 닮으려는 젠트리 층이 더 많이 즐긴 게임이었다.
산업혁명 후 부(富)를 얻은 신흥 젠트리(Gentry)들은 자식들을 귀족처럼 키우고 싶어 교육에 투자했고, 성장 과정에서 육체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규칙을 익히도록 스포츠를 만들어 교육에 포함시켰다.
‘관용과 봉사’ - 골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포츠는 그 Gentlemen 시민 정신의 발로이다.
마에스트로CC는 가진 매력과 완성도에 비해 매우 저평가된 골프장이다.
옛날의 서양 귀족들보다 더 귀한 정신을 가진 우리 시민들이 즐기는 퍼블릭코스로서, 몫과 가치를 높여가기 기대한다.
.
.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둘째 권 집필을 위한 골프장 탐사 중의 '워밍업' 단상입니다.
첫째 권이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
(날이 흐리고 사진이 시원치 않아서 마에스트로CC 홈페이지 사진을 한 장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