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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Jun 04. 2020

엘리시안 강촌CC - ‘그대’를 닮은 코스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시리즈 책자 둘째 권 집필을 위한 골프장 탐사 후의 기본 단상입니다. 



몇 해 전에 이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 프로암 행사에 후원사 자격으로 나갔었다.

우리 조에 배정된 프로골퍼는 당시 몇 차례 우승 경험이 있는 (티샷 평균 비거리 순위가 정규 투어 중상위의) 이 모 선수였다. 

동반자 가운데 한 분은 남부 지방 대도시에서 올라왔는데 스스로 장타자이며 ‘로우 핸디캡 골퍼’라고 티오프 전에 밝혔다. 열 번 치면 7~8번은 70대 타수를 친다고 말하였다.     


레이크코스 6번 파5 홀(대회에서는 17번 홀로 운영)


(대회는 힐 - 레이크 코스에서 열렸다.) ‘샷건 플레이’ 방식이라 우리 조는 17번 파5 홀에서 시작했는데...... 첫 티샷에서 이 ‘장타자’의 ‘멘붕’은 시작되었다.      

  

강력한 티샷을 하고 세컨 샷 지점에 가 보니 자신의 공보다 30미터 더 멀리 나간 곳에 여자 선수의 공이 있지 않은가......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드를 잡고 강력하게 친 세컨 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나 무성하게 길러놓은 러프에 빠졌다. 한 번에 ‘러프 탈출’하지 못한 그는 5번째 샷 만에 그린에 올라왔는데 그날의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 측정 기준)3.4미터였다.

언듈레이션이 별로 없는 그 첫 홀 그린에서 그는 4퍼트를 했다.      


힐코스 2번 파5 홀


그 다음 홀에서도 잘 맞은 티샷이 여자프로 선수보다 30여 미터 덜 나가고, 그린에서 (1미터 넘는 거리 컨시드를 받고서도) 3퍼트를 하자, 그는 “무슨 그린이 이따위야!”라고 부르짖었다. 

세 번째 홀에서 힐코스 1번 홀로 넘어왔는데, 힐코스는 레이크코스에 비해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컸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내리막을 타고 하염없이 굴러가는 볼을 망연히 바라보며 또다시 4퍼트를 한 그는 하마터면 퍼터로 그린을 찍을 뻔했다.      


세게 치려고 힘이 들어간 티샷은 (빠져 죽거나) 깊은 러프로 가고, 그린에서 퍼터만 잡으면 벌벌 떨다가 ‘땡그랑’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 그는 그날 ‘100타’ 쯤 쳤다.      



엘리시안강촌CC는 평화로운 골프장이다. 

흔히들 이곳을 예쁘고 편안한 ‘힐링 코스’라 하는데 그 말에는 쉬운 코스라는 뜻도 담겨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나온 성적들은 그런 평판과는 다르다. 

2015년 이곳에서 열린 KDB대우증권클래식 대회에서 박성현 선수가 3라운드 합계 13언더파로 우승했고, 2016년에는 양채린 선수 6언더파 우승, 2018년 김해림 선수가 6언더파, 2019년 조아연 선수가 17언더파 우승했다. 다른 대회에 견주어 선수들에게 쉽게 정복당하는 코스로 기록되지 않는다.


평소에 곱게 다듬어놓은 러프와 짧게 세팅된 티잉 구역에서 치던 레크리에이션 골퍼들이 ‘대회세팅’으로 플레이 해 보면, “여기가 이렇게 예민한 코스였구나” 할 수도 있겠다.         


힐코스 8번 파3 홀

 

북한강변 굴봉산 기슭 포근한 분지에 앉은 엘리시안강촌CC는 27홀(밸리코스, 레이크코스, 힐코스) 휴양형 골프장이다. 

이 골프장은 GS그룹이 운영한다. 골프장 뿐아니라 스키장, 수영장, 휴양림, 콘도미니엄 등을 갖춘 종합 레저 단지로 1997년 LG그룹에 의해 문을 열었는데, LG그룹을 이끌던 구씨와 허씨 두 집안이 LG와 GS로 그룹 분리되면서 전자, 화학, 금융 등은 LG(구씨), 정유와 건설 부문은 GS(허씨)로 나뉘었다. 

건설부문에 속하던 이 골프장과 리조트 사업은 GS이 맡게 되었다. LG그룹은 이와 별도로 곤지암CC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 문을 열 때 이름은 ‘강촌CC'였다. GS건설이 제주도에 36홀의 ’제주엘리시안컨트리클럽‘을 열면서 2008년 ’엘리시안‘의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엘리시안(Elysian)은 그리스 신화의 엘리시움(Elysium)에서 따온 말로, 영웅들의 낙원, 즉 최상의 행복이 있는 이상향‘을 뜻한다고 한다.     


힐코스 9번 파4 홀 세컨샷 지점 뷰


강촌(江村)이라는 이름은 ‘이상향’ 보다 예쁘고 정겹다. 

가장 높은 힐 코스 7번 홀 티잉구역에서 보면 북한강의 푸른 흐름과 강 건너 삼악산, 월두봉이 장려하게 굽이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지 않은 곳에 강변 마을도 보인다. 눈을 코스 안으로 돌리면 낮고 넓은 분지에 꽃과 나무의 정원처럼 곱게 가꾸어진 코스가 펼쳐진다.     


레이크코스 7번 파3 홀(대회 때는 18번 홀로 운영되기도 한다)
힐코스 7번 홀 티잉 구역 뒷편으로 북한강변과 그 너머 산들이 보인다


이곳은 무엇보다 ‘예쁜 코스’로 유명하다. 

코스 설계자는 고 임상하(1930~2002) 선생으로 화산CC, 파인크리크, 신라, 지산, 뉴서울 북코스 등을 설계한 분이다. 골프장 업계에서는 ‘국내 골프설계자 1세대 3인방’으로 김명길, 장정원, 임상하 선생들을 꼽는다. 이분들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설계 코스들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임상하 선생의 작품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면서도 현재성을 갖는 것들이 많다. 그의 작품들은 거개가 아름답고 입체적인 난도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하다 골프장 설계를 하게 되었다는데 설계한 코스마다 ‘컨셉’과 ‘미학’과 ‘플레이의 가치’가 엄정하게 조화롭다.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골프 코스에 반영하는 미학적 세계관을 정립한 분이라 느낀다. 


당대에서는, 프로 선수 출신으로 일동레이크 등의 뚜렷한 설계작들을 남긴 김학영(1937~) 선생과 아울러 뚜렷한 ‘작가적 세계’를 이룬 분이라 여긴다.      


레이크코스 6번 홀 티잉 구역 뷰


임상하 선생은 이 골프장 자리에, ‘넓고 다이내믹한 18홀 코스’를 만드는 안과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는 휴양형 27홀 코스’를 꾸미는 안을 함께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LG그룹이 이곳에 조성하고자 했던 것은 복합 휴양리조트였으므로, ‘아름다운 27홀 코스’가 선택된 것으로 알려진다.     


힐코스 5번 파4 홀


골프코스는 그 소유주의 성품을 닮기 마련이다.

GS그룹은 효주(曉州) 허만정 선생에서 비롯되었다. 경남 진주 땅 만석꾼이었던 그는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소작농과 인근 주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곡식을 나누었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창업에 크게 기여했다. LG가 ‘락희상회’를 설립할 때 셋째 아들을 참여시키며 돈을 대었고, ‘삼성’이 창업될 때는 종잣돈을 대며 큰 아들을 보냈다. 

LG는 1947년부터 3대에 걸쳐 구씨와 허씨의 동업관계로 유지되다가 2004년 LG(구씨 대주주)와 GS(허씨 대주주)로 분리되었다. 두 기업그룹은 서로의 사업영역을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지키고 있다.   


  

삼성 가문의 골프장에서 특유의 미감과 관리 기준이 느껴지는 것에 견주어, GS그룹의 엘리시안강촌CC에서는 온화하고 은근한 섬세함이 느껴진다. 

클럽하우스는 소박하고 간결하며 코스는 자연에 안겨 있다. 사람을 낮추보려는 위세나 자연을 정복하여 굽어보려는 천박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아함이라 할까.     


 

골프 코스의 구성과 홀 이야기, 자연 이야기들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에 실릴 본격 탐사기에서 세심히 다루려 한다. 이 글은 책 발간을 위한 탐사 과정에서의 정제되지 않은 단상이다.

(조금만 이야기하자면, 힐코스는 도전적이고 레이크코스는 아기자기하다. 밸리코스는 포근한 가운데 예민하다 할까. 레이크코스는 파3 홀 3개, 파4홀 3개, 파5홀 3개의 3-3-3 구성이다. 임상하 선생 설계작에 이런 구성이 더러 있는데 27홀 3개 코스를 만들 때면 이런 구성을 즐겨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타자와 단타자, 초보자와 숙련 골퍼 들에게 골고루 기회와 위험을 느끼게 하기 좋은 구성이라 생각한다.)


.....................     

강촌은 추억이 되살아나는 이름이다.

어릴 적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강촌에 많이 왔다. 수선화 같은 소녀와 함께 오기도 했고 기타치고 있는 힘 다해 술 마시던 청춘의 소풍 길이기도 했다. 올 때마다 북한강의 새벽안개가 슬펐다.      


내가 한때 거쳤던 문학 전공에는 ‘소설연습’ 과정이 있었다. 스승은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의 소설가이자 일제시대에는 글을 써서 항아리에 묻어두었다는 예술가였다. 나는 과목 이수 제출 글에 강촌에 얽힌 이야기를 썼다. 강변의 물푸레나무를 보고 “오필리어의 영혼 같은 잎......” 이라 쓴 표현에 대하여 스승은 자세히 물으셨다. 멋을 부린 글이 부끄러워 나는 더듬거렸다.      


졸업을 앞두고 글을 쓰지 않겠다는 내게 스승은 말씀하였다. 자신도 한때 글을 쓰지 않겠다 선언하고 석재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어떤 알 수 없는 꿈에 이끌려 다시 쓰게 되었다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꿈꾸라 하셨다. 


사회에서 브랜드 짓는 일을 하며 광고 글을 숱하게 썼다. 잡지 편집장 노릇에서는 부질없는 잡문을 산처럼 써댔고 사업하면서도 내 제품 광고를 쓰고 말했다...... 

지금은 골프장 이야기를 쓴다.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애쓴다.      


엘리시안강촌CC에 무심히 자란 물푸레나무를 보면서 청춘을 떠올린다.

참 어여쁜 곳이구나. 그 가냘픈 수선화 소녀가 서른다섯 쯤 활짝 핀 관능으로 성장(盛裝)하였다면 이렇게 고운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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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책자 제 2권 집필을 위한 골프장 탐사 중의 메모 단상입니다. 책에 실리는 탐사기에서 더 상세한 내용을 다룹니다.


첫째 권이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8921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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