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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Feb 10. 2020

'골프웨어의 시작'과  기품에 대한 단상

‘골프웨어’는 영국의 ‘윈저 공(1894~1972)’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큰아버지입니다. 왕자 시절에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로 불렸고, 1936년 1월 에드워드 8세로 ‘대영제국’ 왕위에 올랐다가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만화 주인공 부인 아님)과 사랑에 빠져 전 국민의 반대에 내몰린 끝에 왕위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지요. 1년 남짓 만에 퇴위하고 ‘윈저 공(Duke of Windsor)'이 되어 평생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았습니다.                       

                                                                                                                                 


그를 이어 왕이 된 이가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콜린 퍼스가 맡은 역의 ‘조지 6’세이며 지금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입니다.


윈저 공은 왕세자 시절부터 세계 패션계의 절대 아이콘이었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들 가운데는 그의 패션이 극성을 이루던 1920~30년대의 영국식 드레스코드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이들이 많습니다. - 대표적인 이가 Polo 브랜드로 유명한 랠프 로렌(Ralph Lauren)입니다. 그는 1974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코스튬 디자이너로 그 시대의 복식 문화를 아름답게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패션 세계관을 선포하였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스콧 피츠제랄드의 원작대로 롱아일랜드의 신흥 상류사회였으나 옷차림 문화의 모델은 1920년대 영국 귀족사회였다고 합니다.


윈저공이 ‘프린스 오브 웨일즈’ 였던 왕세자 시절, 그가 입는 옷은 대부분 유행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22년 세인트앤드류스 골프장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는 재킷 안에 조끼 대신 스웨터를 입었는데 스웨터는 당시까지 노동자 서민들이 입는 일상 작업복이었습니다. Sweat이라는 말이 뜻하듯 땀을 잘 흡수하는 기능적인 옷이었으므로 귀족들의 워드로브(Wardrobe 옷장, 옷 체계의 의미)에 포함되지 않았었지요.

                                                                                                                                                        


그날 그는 재킷을 벗고 스웨터 차림의 골프를 선보였던 모양입니다. 그가 입었던 옷은 페어아일(Fair Isle) 스웨터로, 스코틀랜드 페어아일 섬의 어부들이 입었던 것에서 비롯된 토착 문양으로 짜인 것이었습니다. 어부의 작업복이 Gentlemen's Eternal Wardrobe의 한 품목이 되는 순간이었으며, 골프웨어는 그 순간부터 영국 귀족사회의 격식 굴레를 벗고 기능성과 창의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지요. (스웨터에 니커보커즈 차림은 지금도 가장 클래식하고 기품 있는 골프 어타이어 Attire로 종종 재현되곤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골프채널 방송 중계와 광고들을 보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부자는 당대에 나고 멋쟁이는 2대에 나며, 미식가나 가문의 요리는 3대 째에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무색하게 지금 우리나라 골퍼들의 옷차림은  ‘세계의 전위’라 할만큼 창의적이고 독보적입니다. 정보가 다양하고 빠르게 퍼지니 2대 3대가 아니라 2~3일이면 멋쟁이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한편 비싼 옷을 맵시 있게 입어낸 옷차림 가운데서도 입은 이의 기품은 보기 힘든 경우도 흔합니다. 기품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차림새라면 모르되 기를 쓰고 품위 있게 보이려 하는 입성임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브랜드의 로고를 엄청나게 크게 박아 넣은 골프웨어들입니다.

의상 협찬을 받는 선수들은 스스로가 일종의 광고 매체이므로 그런 옷을 입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 브랜드의 성원들이나 동호회 사람들도 그것을 입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페어아일 섬의 어부들이 페어아일 패턴 스웨터를 입는 것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어쩌면 윈저공이 그랬던 것처럼 창의적인 자신감이나 생각의 표현으로 그런 옷을 입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태자 시절의 그는 어부의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신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의상은 언어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 언어는 세계로 퍼져 어부나 귀족이나 다를 게 없다는(적어도 법률적으로는)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로고 박힌 옷을 입는 분들이 무슨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지 이해하기는 힘겹습니다. “나는 OO통이다”. “나는 XX지다" 라는 구호인지요. 그 브랜드의 숭고한 이념을 떠받드는...... 또는 버림받은 그 브랜드를 구하려 외치는......


그것은 거개가 ‘브랜드의 강요’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함이기 쉽기에, 저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이런 옷가지 디자인 경향이 일시적인 것이기를 기대합니다. 가슴에 로고를 박더라도 입는 이를 존중하는 예의를 담아 넣고, 등짝에 브랜드 패턴을 새기더라도 아름다운 은유를 통한 디자인으로 담으면 안될까요.


물론 지금은 ‘Dressing Right’의 시대는 아닙니다. 옷 입는데 너무 많은 걸 생각하고 눈치 볼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소신이 있다면 멋 나는 대로 입으셔야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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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지은이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은 옷에 대한 저의 글을 낯설어 하시겠습니다만, 저는 패션 브랜드 컨설턴트 일을 오래 해왔습니다. [남자의 옷 이야기] - 시공사 간- 책을 내기도 했었지요. 불현듯 골프와 옷이 만나는 단상의 순간을 만나 몇자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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