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 그리고 『파이트 클럽』
무더운 더위가 짙어지던 날, 첫 발을 내딛은 ‘영화, 보고서’가 어느덧 아홉 번째 시간을 맞이했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인해 회자되는, 일명 ‘명작’이라 일컫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러닝타임 내내 몰입감을 자아내는 두 작품에 관한 심심한 고찰을 시작하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려 내면 속 가치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당신에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당신에게 던지는 명쾌한 해답에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
만일 당신의 인생이 짜여진 대본으로 이뤄진 '쇼'의 모습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있다면. 여기에 수상할 정도로 소란스러운 사건 없는 평화로운 마을 '씨 헤이븐'이 있다. 한 남성의 탄생에서부터 그 사람 인생 일거수일투족을 조명하는 프로그램 '트루먼 쇼'를 위해 존재하는.
결국 '트루먼'은 거짓된 인생에서 안주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준다. 진정한 나의 인생을 시작할 그곳을 향해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 끝은 어땠을까? 추측이라 생각했던 모든 정황들이 사실이었다는 걸 마주하게 된 그의 허망한 표정. 진실이라 믿어왔던 모든 관계들이 부정 당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고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새롭게 마주하게 될 삶의 이면에서 어떠한 에티튜드를 취해야 할지 몸소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진정한 인생을 개척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평범한 회사원 '나'가 반항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스토리텔러의 관점으로 주목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관객들을 향해 끊임없이 던져지던 메시지는 말미에 이르러서야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며 반전을 시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억눌러왔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한다는 명목 하에 결성된 '파이트 클럽'. 소수에서 집단으로 모임이 점점 무르익을수록 더욱 비범하고 날 선 방식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억압받은 자의 '변화'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비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그저 통쾌한 한 방이라 포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말이다.
결국은 투쟁 상대가 나를 억압하는 우리 사회인지, 아니면 나조차도 외면하고 있는 나 자신인지 오묘하다. 인간 내면에는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모습 중 하나를 택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내면의 진실된 소리에 귀를 기울인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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