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하모닉 <베르디 레퀴엠>
어느덧 일곱 번째 시간을 맞이하는 작가 박의 심심한 고찰.
지난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경기필하모닉의 <베르디 레퀴엠>을 관람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을 뜻하는 '레퀴엠(requiem)'을 평소 접했던 경험이 없었던 터라 실연으로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베르디 레퀴엠'의 경우 오페라의 극적 요소를 갖춘 것이 특징이기에, 장엄한 선율로 노래하는 '망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일부 연주에 관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 번째, 제2곡 Dies irae 중 '분노의 날(Dies irae)'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압도적이다'라는 표현이 이 곡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초장부터 화려한 포문을 여는 타악기 세션의 강렬한 연주와 나머지 오케스트라 세션과 엇박으로 주고받는, 일명 티키타카가 느껴지는 긴박한 선율이 인상적이었다. 자로 잰 듯 명확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도입부에 절규하는 듯 정제되지 않은 합창 파트까지 더해져 공포감은 물론이고, 아이러니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악기 섹션에서 활로 현을 빠르게 긁는 퍼포먼스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긴박하면서도 매서운 바람 소리를 내는 듯해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제2곡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두어 번 등장하는 '분노의 날(Dies irae)'의 파워풀한 선율은 시각적인 퍼포먼스는 물론이고, 청각적인 충격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곡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제6곡 '영원한 빛(Lux aeterna)'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메조 소프라노 솔로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앞서 깜짝 놀라게 했던 파워풀한 연주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오케스트라 세션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기보다는 망자의 구원을 염원하는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달까. 청각적 충격을 선사하는 웅장함보다는 거룩함 또는 장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새로운 매력이 느껴졌던 곡이었다.
이윽고 테너, 베이스 솔로까지 더해져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3중창이 메인이 되어 곡을 이끌어 간다. 특히나 오케스트라 세션은 그들의 '목소리'에 애절한 서사를 부여하는 서포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오페라적인 면모와 더불어 단단한 울림으로 가득 찬 이 장엄한 무대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번 연주가 더욱 특별하게만 느껴졌던 이유는 4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마시모 자네티의 마지막 지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별'이라는 키워드와 연상이 되는 곡 '레퀴엠(requiem)'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나는 것이야말로 경기필하모닉과의 이별을 앞둔 그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씁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열정을 쏟아부은 무대를 선보인 후 커튼콜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필하모닉 단원을 향한 애정을, 관객을 향한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던 그의 제스처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 무대에서까지 잊지 못할 훌륭한 지휘와 애티튜드를 보여준 그의 모습은 추억의 조각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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