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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02. 2022

<돼지의 왕> ; 폭력이 우리를 집어삼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 <돼지의 왕>을 5회까지 정주행 했다. 작품을 보면서 위험한 기분이 든 건 영화 <조커>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황경민이 가해자들한테 처절한 복수를 해나가는데, 그게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론 속이 시원했다.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잊혀가던 기억의 봉인이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사실 완전히 잊을 수 있는 기억은 아닐 것이다. 그것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으니 말이다. 걔네들은 기억 조자 못하겠지만.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살면서 느낀 건 당한 사람은 기억해도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실이 예전처럼 억울하고 화가 나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무뎌진 거 같다. 하지만 다 나 같을 순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드라마를 보면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으니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상처가 무뎌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황경민은 해결방법으로 ‘폭력’을 택했다. 가해자에게 최대한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다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거나 다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자해라면 자해다. 아마 황경민에게는 가해자들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당시 무기력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도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게 황경민이 ‘괴물’이 되는데 트리거(trigger)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 부분 이야기가 아직 다 풀리지 않았지만, 철이에 대한 죄책감도 상당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철이의 환시를 처음 보고 까무러치게 놀라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사랑하는 아내인 민주의 노력에도 내려놓지 못할 아주 무거운 것이었나 보다. 안타까운 건 ‘폭력’은 근본적인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줄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사과는 결코 받을 수 없고, 철이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완전히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폭력’의 굴레도 끊을 수 없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화살이 언제 자신과 주변에 향할지 모른다. 황경민이 이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잃을 게 많아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그걸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가는 건 위험하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에 ‘폭력’으로 맞선다면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누군가는 멈춰야 끝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폭력에 좀 더 예민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도 예민한 사회 말이다. 조금의 폭력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맞아도 싼 경우를 너무 많이 만든다. 맞아도 싼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누군가를 때릴 권리 자체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제 좋은 선례를 말하고 싶다. 바로 다음 주에 <유 퀴즈>에 출연하시는 푸른나무재단 김종기 명예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었다. 이후 학교폭력 예방 운동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덕분에 학폭법까지 제정이 됐다.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물론 학폭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일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솔직히 나도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폭력’은 답이 아니라는 거다. 학교폭력 피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당시에는 가해자들 다 죽이고 자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폭력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그러지 않았다. ‘폭력’은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일이다. “나도 이랬으니 당신도 그렇게 해.”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우리에겐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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