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Apr 05. 2022

어느 날 갑자기 손이 브로콜리가 된다면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이유리 작가의 「브로콜리 펀치」를 읽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손이 브로콜리가 되어버린 청년 원준에 대한 이야기다. 원준은 복싱 선수인데, 어느 날부터 상대 선수를 곤죽을 만드는 게 힘들어진다. 미워하지도 않는 사람을 때리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복싱을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던 원준은 상대 선수를 미워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오른쪽 글러브 안에 모으는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그때, 손이 그만 브로콜리가 되고 만 것이다.


 이유리 작가는 왜 하필 브로콜리를 택했을까. 뭔가 무해하고 푸릇푸릇한 이미지라서? 그걸 원준이라는 캐릭터에 투영시키고 싶었나. 아직 소설을 다 읽지 않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이 시점에서 추측해볼 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건 참 신선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 나한테 손이 브로콜리가 됐다고 하면 “개소리하지 마.”라고 할 텐데 작품 속 인물들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받아준다. 알고 보니 이 세계 안에서는 종종 있는 몹쓸 병이란다. 나쁜 것들을 맘속에 오래 넣고 있으면 생기는 병. 브로콜리뿐만 아니라 강낭콩이 되기도 하고 고추가 되기도 한다. 만약에 저런 병이 실제로 생긴다면 걸릴 사람 참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흠결 없는 마음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직 결말을 보진 않았지만 『브로콜리 펀치』 초반부에 수록되어 있는 두 작품(「빨간 열매」, 「둥둥」)에 비추어 봤을 때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그게 이유리 작가가 흠결 있는 마음들에 전하는 위로가 아닐까. 내 오산일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안필순 할머니의 회색앵무 말자가 살아 돌아오는 결말만 아니면 된다. 그러면 장르가 갑자기 호러가 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결말이 날 가능성은 0.00001%도 안 된다.     


 요즘 읽는 책마다 재밌어서 기분이 좋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서 더 그런 것 같다. 『브로콜리 펀치』를 다 읽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세랑 투어를 시작하려고 한다. 정세랑 작가의 초기작 세 권이 대기하고 있다. 첫 번째로 읽으려고 골라둔 책은 『덧니가 보고 싶어』인데 표지부터 강렬하다. 무려 키스하는 삽화를 가운데에 딱 그려놓았다. 내용도 그만큼 강렬하고 재밌길 기대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정세랑 투어에 같이 탑승하실 분? 있으면 마음속으로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살 집은 어디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