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하나를 끓여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체에 된장을 한번 걸러내어 맑게 끓이는 사람이 있고, 그냥 바로 넣어 걸쭉하게 끓이는 사람도 있다. 두부를 마지막에 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넣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두부맛이 담백하고 후자는 짭조름 콤콤하다.
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으로 암산을 하면서 너무 많이 산 건 아닌지 뺄 것이 없나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늘의 금액대별 마트 사은품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좀 적게 산 건 아닌지 더 넣을 것이 없나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맑고 담백한 된장국은 어머님 방식이고, 걸쭉 콤콤한 된장국은 나의 방식이다. 또, 마트에서 암산은 어머님 몫이었고 사은품에 눈이 먼 사람은 나였다.
이렇듯 어머님과 나는 취향이 달랐지만, 각자의 방식을 지켜주었기에 큰 다툼이 없었다. 지금 보니 어머님 쪽이 거의 지켜주는 입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취향의 차이 때문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특히 패션 취향이 문제다.
아침이면 노치원에 입고 갈 옷들로 입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사실 지난겨울에 산책을 다닐 때도 옷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는 했다. 그때만 해도 체질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열이 많은 어머님은 한 겨울인데도 홑겹 점퍼를 입겠다고 하셨다. 그나마 좀 얇고 짧은 오리털패딩으로 타협을 한 후 산책을 함께 나갔다. 뒤로 자꾸 넘어지시는 바람에, 어머님이 앞서 가고 발목까지 오는 긴 오리털패딩을 입은 내가 바로 뒤를 따라갔다. 어머님과 달리 나는 추위를 심하게 탄다.
절반쯤 걷고 나니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걱정스럽게 한 말씀 하셨다.
어르신 앞지퍼가 다 열려 있어서 추우실 것 같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곧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어머님이 열이 많으셔서… 땀이 나서 열어놓으셨나 봐요.. 하하하…
두꺼운 패딩으로 발끝까지 꽁꽁 싸맨 나를 보며, 시어머니만 얇은 반쪽짜리 패딩을 대충 입힌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더 열심히 설명했었다. 사실은 목까지 올려놓은 지퍼를 살짝 내리는 줄로만 알았지, 끝까지 다 열어놓으신 줄은 몰랐다. 그 후론 그냥 어머님이 원하는 얇은 패딩을 입혀드렸다.
그런데 노치원에 입고 갈 옷은 타협을 할 수가 없었다. 옷의 두께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입고 주무시던 옷을 안 벗으려고 하신다.
“밖에 나갈 때는 옷 갈아입으셔야 돼요.”
“안 갈아입어도 돼. 이거 깨끗해.”
“그래도 어디 갈 때는 이쁜 거 입으셔야지요~”
“그럼, 이 옷이 안 이쁘다는 말이야?”
할 말이 없었다.
옷색깔에 대한 주장은 더 확고하시다.
빨간색을 선호하고 검은색을 너무 싫어하셨다. 팬더곰이 그려진 티셔츠도 안 입으려 하실 정도였다. 그러니 거의 매일 같은 옷만 입겠다고 고집하신다.
가장 난감한 것은 레이어드 룩이다. 문제는 티셔츠만 두 개 입거나, 블라우스만 두 개 입으신다는 거다. 동네 산책은 이렇게 입고 잠깐 나갈 수도 있겠지만, 노치원에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매일 다른 옷으로, 이왕이면 좀 이쁘게 입혀드리고 싶었다.
아침마다 입고 나갈 옷으로 옥신각신 하다 보면 애가 탄다. 셔틀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어느 날은 블라우스 위에 느닷없이 티셔츠를 겹쳐 입고 나오셨다. 마스크를 챙긴다고 방에 다시 들어갔다가 이렇게 변신하신 거다. 시간이 없어서 일단 그냥 그대로 나갔다. 주차장에서 설득을 거듭하여 티셔츠는 벗으셨지만, 나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로 가서 누웠다. 얼마나 지나야 이런 상황들이 좀 수월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웃음이 슬며시 나온다. 어머님의 이런 패션취향이 마냥 낯설지는 않아서였다. 어디서 많이 보던 거다.
다 떨어진 내복에 청바지를 입고 미니 원피스를 겹쳐 입은 후 장화까지 신고 서 있던 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느라 남편이 혼자 애들을 볼 때 벌어진 일이었다. 거의 거지꼴로 마중을 나온 딸을 쳐다보며 남편을 탓했다. 그러자 자기가 아무리 촌스럽기로서니 일부러 이렇게 입히지는 않는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남편은 딸을 이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 쭉 아이의 패션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다.
어머님도 별일이 아니었다. 매일 새로운 옷으로 바꾸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똑같은 옷을 원하시면 그렇게 하고, 좀 특이한 옷을 원하시면 그렇게 하면 된다. 이게 노치원에 적응하는 것보다 큰일은 아니지 않은가?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일은 에너지가 별로 고갈되지 않을 것 같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