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노치원 생활

by 달팽이머리

관심이 없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데이케어센터’라는 곳은 어르신 유치원, 다른 말로 '노치원'을 말하는 거였다.

나는 ‘데이케어센터’ 차량이 지나가면 당연히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했었다. 예쁜 꽃과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는 차량 겉모습을 보고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타고 있을 줄 알았다.


이곳에 어머님을 등록해 드릴 준비를 하면서도 이런 느낌은 계속 들었다. 우리 애들을 처음 유치원에 보낼 때 했던 일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방, 실내화, 양치도구 등등 준비물부터 비슷했다

먼저 집에 있는 가방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처음에는 연세를 고려해서 중후한 느낌의 토트백을 골랐다. 하지만 두 손이 자유로운 게 좋을 것 같아 백팩으로 바꿨다. 다시 보니 편하게 물건을 넣고 뺄 수 있는 크로스백이 더 나아 보였다.

거울 앞에서 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나를 어머님이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셨다. 가방을 내려놓고 실내화를 집어 들었다.


“어머니, 이거 한번 신어보세요.”

“이거 필요 없어. 밖에 못 신고 나가.”

“아뇨, 안에서 신을 거예요.”

“집에서는 이런 거 신으면 안 돼.”

마트에 모시고 가기 힘든 까닭에 온라인으로 산 건데 거부하신다. 꽤 비상한 논리를 펼치며 안 신으시다가 마지못해 발을 살짝 넣어보신다. 사이즈가 너무 컸다.

이제 어린이용을 살 수밖에 없다. 오리캐릭터가 붙어있는 분홍끈 실내화를 주문했다. 유치해서 싫어하시면 어쩌나 싶었다.

새로 배송된 실내화를 꺼내면서 일부러 크게 말한다.

“아이고 색깔도 환하고 이쁘네~신으면 참 예쁘겠다~”

호들갑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려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신어보신다. 옛날에 우리 애들 신발을 사줄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이제 새신 신고 가방 메고 ‘데이케어센터’, 즉 ‘노치원’에 가시기만 하면 된다.


나는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입소문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어머님이 다니게 될 ‘데이케어센터’을 고르려고 하니, 인터넷의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경험자의 생생한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나와 비슷한 경우를 마주치기는 쉽지 않았다.

어머님과의 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직접적인 보호자들이 아닌 방문요양보호사 분들이었다. 이런 경우는 ‘데이케어센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보호자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별수 없이 손품을 팔아서 괜찮은 곳을 찾아야 했는데 통화를 자꾸 하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기준이 점점 생겼는데, 우선은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하는 곳에 마음이 끌렸다. 뭘 잘 모르는 보호자가 별 것도 아닌 걸 물어봐도 성실하게 대답해 주면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괜찮은 곳을 찾아냈고 가족들이 함께 방문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 아이들 유치원을 고를 때도 직접 가서 분위기를 살피면서 마지막 결정을 내렸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살폈는데,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답답해하지 않고 기다려줄 마음이 있는 지를 보았었다. 숫기 없고 내향적인 우리 아이는 남들 앞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겨우 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다려주는 곳이라야 했다.


“오늘 차 타고 좋은 데 구경 갈 거예요”

“나는 밖에 안 나갈 거야.”

다른 곳으로 구경 간다고 하면 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안 나간다고 하신다. 그냥 산책 나가자고 말을 바꾸고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이렇듯 수시로 바뀌는 어머님을 기다려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할 텐데…

주차를 하는 동안 어머님과 나는 센터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곁을 지나던 직원들이 계속 말을 붙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처음 오셨어요? 그럼 제가 어르신 먼저 모시고 들어갈까요?”

직원이 슬쩍 어머님 팔을 잡으며 말을 붙여보기도 했지만 안 들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관심을 자꾸 쏟아주는 직원들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사무실로 올라가서 자세한 상담을 시작했다. 지나가던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와서 곧 재미있는 수업을 시작하니 참여해 보시라고 또 권한다. 머뭇거리던 어머님에게서 승낙의 표정이 보이자 얼른 실내화를 갈아 신겨준다. 예쁜 실내화라는 칭찬까지 해주니, 어머님도 기분 좋게 따라나서신다.


다른 가족들이 상담을 하는 동안, 나는 수업 중인 어머님을 보러 갔다. 뒤쪽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니, 나의 서러웠던 초등학교 입학식이 떠올랐다. 그때는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학교를 갔었다. 그런데 입학식에 늦은 엄마가 손수건을 급하게 달아주다가 옷핀으로 가슴을 살짝 찔렀다. 별 상처도 안 났는데 나는 학교 가는 내내 울었고 결국 등짝을 맞았다. 학교라는 곳도 낯설기만 했다. 어리바리 뒤늦게 줄을 섰는데 담임선생님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셨다. 그 순간 서러움은 사라지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학교생활도 즐거워졌다.


오늘, 어머님도 산책 가는 줄 알고 나왔지만 ‘데이케어센터’로 오는 바람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실 수도 있다. 처음 보는 낯선 환경에 불안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선생님을 보고 이런 기분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수업을 받으면서 행복한 기분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 다니게 될 이곳의 생활이 내내 즐거우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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