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라락~
커튼을 걷어 환기를 시킨다. 소파를 정리하고 현관도 한번 살펴본 후 재빨리 커튼을 다시 닫는다. 바깥 풍경이 어머님 눈에 들어오는 순간, 외출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암막커튼이라 아침인데도 어둑하다.
오늘은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받는 날이다. 어머님의 상태에 따라 점수를 받고, 받은 점수대로 요양등급이 나뉜다. 이 등급을 잘 받아야 전문기관을 이용할 때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조금 있으면 방문조사원이 어머님의 상태를 확인하러 올 예정이다.
“딩동”
벨이 울린다. 얼른 뛰어가서 문을 열었다.
“어이구~제가 좀 빨리 왔죠? ”
“네. 맞아요. 어머님은 저쪽에 계세요.”
거실 쪽으로 안내하다가 문득,
“어머, 제가 잘못 들었어요!! 일찍 오셔도 상관없어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변명을 했다. 너무 긴장했나 보다.
사실은 요양등급점수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걱정과 혹시 잘 받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잡념에 빠져있었다. 어쨌든 점수를 잘 받아야 하니 부담스럽기는 했다.
조사원과 잠시 대화를 하는 동안, 어머님이 방으로 슬며시 들어가신다. 거실로 나오시라고 하니, 산책 나가자는 말인 줄 알고 모자를 머리에 쓰신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나갈 채비를 계속하신다.
모자를 쓰고 벗으면서 실랑이를 하니, 조사원이 이쪽으로 오시라고 대신 말해준다.
그제야 어머님은 내 손을 잡고 거실로 향했다.
“손이 참 따뜻하네…”
조금 전까지 다른 사람처럼 구시더니… 마음이 울컥한다.
어머님은 참으로 정직하게 대답하셨다.
신체기능을 확인할 때는 치마를 훌쩍 걷어올려 관절염으로 퉁퉁 부은 무릎을 보여주면서 아픔을 피력하셨고, 인지기능을 확인할 때는 아무리 물어봐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또 기억력 확인을 위해 조사원이 제시한 단어들은 단 하나도 다시 기억해내지 못하셨다. 등급을 잘 받을 방법이 있을지를 고민한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공부하고 미리 대비한다고 잘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님을 대신해서 대답할 일도 있었는데, 주로 어머님이 못 하시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못 하고 있는지를 어머님옆에서 계속 말했다. 가끔씩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지면 생각했다.
못 알아들으시겠지? 못 알아들으실 거야…
그러면서도 조사원이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상세히 덧붙여가며 대답했다. 끊임없이 나가시는 바람에 현관에 신발을 아예 못 꺼내놓고, 커튼은 항상 닫혀 있으며,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고 만져보려 하셔서 요리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사정 등등…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어머님을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하려면, 지금 얼마나 나쁜지를 절실하게 증명해야 했다.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면담을 끝낸 후, 조사원은 어머님에게 ‘지금 밖에 비가 올 것 같으니 나중에 나가시라’고 친절히 말해주고 떠났다. 이 말을 듣기로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나가자는 말은 안 하셨다.
커튼을 조금 들추고 창 밖을 쳐다보는 어머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으실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실까… 머릿속으로는 이런 감성에 젖어있지만, 지켜보는 내 모습은 사실 좀 우스꽝스럽다. 몸을 최대한 뒤로 숨긴 채 문간에 기대어 눈만 빼꼼 내밀고 있는 자세다. 왜냐하면 이런 순간, 즉 지금 막 창 밖을 열심히 보고 있는 순간의 어머님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밖으로 끌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돌아서던 어머님이 나를 알아채버렸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서 있는데, 나를 보고 활짝 웃으신다.
“비가 와서 못 나가겠네…”
또 울컥한다. 이래서 나는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오롯이 힘들어할 수도 없다.
어머님 정신이 온전한 순간순간마다 나오는 따뜻한 눈빛과 말과 행동들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준다.
'손이 따뜻하면 마음도 따뜻하다'는 말이 있는데, 진실이라고 굳게 믿어야겠다. 어머님이 '손이 참 따뜻하다'라고 하실 때마다 허투루 하신 것은 아닐 거라고 무진장 의미를 부여하면서, 오늘도 나를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