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오시는 시간

by 달팽이머리

“삐리릭~”

화장실에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이상한 느낌에 밖으로 급히 나왔다.

후다닥 뛰어가면서 어머님 방을 쳐다보았다.

저 방문을 먼저 열어볼까? 아님 그냥 지나쳐서 현관으로 갈까? 순간적인 갈등이 몰려온다.

일단 현관 쪽으로 달렸다. 신발신을 틈도 없이 현관문부터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이 문 밖에 서계신다. 엘리베이터는 도착직전이다.

“들어가요, 어머니. 옷 좀 제대로 입고 다시 나와요.”

“나는 나갈 거야.” 못 들은 척하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당장 타고 내려가실 기세다. 다급하게 앞을 막아서서 팔을 잡았다.

그러자 갑자기 비명을 지르신다.

“아구, 아구, 아이고~아이고~”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럴 때는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말로 설득하려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어머님에게 새로운 치매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화를 내고 큰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도 하신다. 남편과 나는 이런 순간이 너무도 낯설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그래, 지금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야… 다른 누군가가 찾아온 거야…‘그분’이 온 거야….

우리는 이런 순간을 ‘그분’이 오시는 시간이라고 이름 붙이며 그저 지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점점 사소한 일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고, 특히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셨다.

그야말로 돌아서면 나가자고 하신다.

집 안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하면 좀 덜해질까 하는 생각에 온갖 도구들을 사다 날랐다. 색칠하기, 블록 쌓기, 보드게임 등등… 하지만, 관심이 없으셨다.

평생 집안일을 하셨으니, 바느질놀이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인형 만들기 재료들을 사보기도 했다.

부직포로 된 다람쥐인형을 드려봤지만, 흥미가 없으신지 두어 번 바느질한 후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내 방에 이불이 없어…”

”아... 그거 지금 빨고 있어요~”

세탁기로 가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불을 보여드렸다. 같은 질문을 몇 번쯤 반복한 후 다시 들어가셨다.

그런데 TV소리도 안 들리고 너무 조용했다.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바느질을 하는 중이셨다. 커버가 벗겨진 베개속통을 헌 옷으로 감싸서 꿰매고 있으셨다.

인형 만들기가 효과가 있었네? 다른 것도 한 번 해보자!!


치매에 좋다는 두뇌 트레이닝책을 샀다.

“여기 동전그림 보이시죠? 모두 합하면 얼마예요?”

“삼백 원”

하지만 다음 페이지에 있는 따라 읽기를 한 후에는 곧 흥미를 잃으셨다.

이번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지난번에는 정말 어쩌다 보니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어머님이 혼자서 온전히 해낼 수 없는 일들도 늘어갔다. 칫솔에 치약을 묻히거나 세수할 때 비누를 사용하는 것 같은 ,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런 일들이다.

‘그분’이 오시는 시간까지 잦아지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형 만들기를 하고 치매책을 아무리 사서 풀어봐도 나에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어머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고, 아무 문제 없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고, 아무 문제가 없지도 않았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우리는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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