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좀 줘.”
“나무... 요?”
나무란 말이지... 잘 생각해야 한다.
먼저 어머님을 살펴보았다. 특별한 점이 없다.
이번엔 어머님 방으로 가 본다. 옷장이 활짝 열려 있다.
“뭐가 필요하세요?” 다시 모셔와서 여쭤본다.
침대에 있던 옷을 들어 보이면서 계속 나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옷걸이를 한번 갖다 드려본다. 흡족해하신다.
옷걸이의 이름이 오늘은 ‘나무’이지만 내일은 뭐가 될지 모른다.
시작은 대수롭지 않았다.
요리순서가 조금씩 뒤엉키고 재료가 빠지기도 했지만, 그러실 수 있다 생각했다.
감자를 당근이라 불러도 그러실 수 있다 생각했다. 나도 가끔씩 그러니까.
하지만 그 감자와 당근을 손에 들고 주방에 가만히 서 계실 때쯤, 도무지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실 때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단순한 건망증이라 생각했던,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던 병, '치매'는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
“내 방에 TV 가 안 나와...”
조금 전까지 시골장을 탐방하는 리포터 목소리가 문 밖으로 분명히 들렸었는데...
리모컨을 들어 TV를 틀어드렸다. 신기한 눈빛으로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신다. 조작법도 눈여겨보신다.
어떨 때는 리모컨이 리모컨이 맞지만, 한 순간 처음 보는 물건으로 바뀐다. 사물을 잊기 시작하셨다.
“내가 셋째 딸이거든, 키가 제일 작았어... 근데 다른 형제들은 홍역도 걸리고 볼거리도 걸리는데 나만 멀쩡한 거야.”
“한방에 다 모여 잤는데 말이지... 나만 안 아팠어. 나는 감기도 잘 안 걸려...”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주신다.
가까운 기억은 잊어버리지만, 먼 옛날 기억은 또렷하시다. 그런데 가까운 기억에는 가족도 포함된다. 사람도 잊기 시작하셨다.
종이와 볼펜을 들고 남편이 어머니 곁에 앉는다.
“엄마, 내가 누군지 알아요?” “글쎄, 모르겠네...”
“그럼 엄마 이름은 알아요?” “내 이름? 알지...”
“여기 한번 써 봐요.” 또박또박 이름을 쓰신다.
“그럼, 내 이름은 알아요?” “모르겠어..." 남편은 어머니 이름옆에 자기 이름을 써 놓는다.
“근데 엄마, 내가 누군지 알아요?” “모르겠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엄마, 나 엄마 아들이잖아... 내 이름 알아요? 여기 엄마이름 옆에 쓰여 있잖아... 한번 읽어봐요.”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땀을 뻘뻘 흘리던 남편은 세수를 하러 갔다.
금세 어머니는 궁금한 눈빛으로 내게 물어보신다.
“저기... 여기 있던 아저씨 어디 갔어요?”
돌아온 남편은 종이를 들고 처음부터 다시 반복한다.
그런데... 어머님이 대답하신다... 아들이라고.
이름까지 덧붙여서 말해주신다.
“맞아요! 엄마! 나 엄마 아들이잖아... 흐흐흐~잘했어요... 흐흐흐~”
어머니가 이름을 불러주자, 남편은 비로소 꽃이 되었다.
그나저나, 아까 ‘아저씨’라고 하신 거 말해줄까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