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는 내가 감수해야 할 감정입니다만
한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일, 행복한 일, 기쁜 일만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 적은 딱히 없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원치 않는 일이 지리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단 생각도 한 적 없다. 그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슬픈 일이 있으면 행복한 일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젊을 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걱정할 일이 줄어들 거로 생각했었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었다. 걱정 거리는 더욱더 늘어났고 그 고민을 해결할 방법도 딱히 찾을 수 없는 순간도 많았다. 오히려 어릴 때 하던 걱정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됐고 나이가 들면서 걱정이 이어지는 기간이 더 길어졌던 것 같다. 나름 30년 넘는 인생에서 얻은 교훈이나 경험, 지혜 등은 온데 간데 없이 그렇게 그 위기를 오롯이 부딪혀야만 하는 날들이 생각보다 잦았다.
때론 내가 요구한 적도 없지만 삶이 선사하는 위기의 순간마다 감정의 큰 동요 없이 살아온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한다. 코를 시큰하게 만드는 그 순간 '이게 울 일이야?'라는 냉정한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이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서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순간들이 요즘 자주 찾아오는 듯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건 내가 감수해야 할 감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꽤 단단해지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 위기가 내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지 모르겠지만 이 고통으로 인한 감정은 오롯이 내가 감수해야 할,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동반자들에게 잠시 넋두리를 늘어놓을 순 있지만 항상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그 고민을 상담하는 상대방이 가족이라고 해도 언제나 그 감정을 100% 소화해야 할 당사자는 나 자신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 감정으로 인해 너무 지칠 때는 개인적으로 그냥 그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도 조금 내고, 짜증이 나면 짜증도 내고, 슬프면 슬픈 감정 그대로 즐기면 된다. 화를 내고 짜증도 내고 운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에 솔직한 것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희노애락 모든 걱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므로 고통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슬픔도 빠르면 몇 분, 몇 시간 뒤, 느려도 몇일 뒤면 잊혀질 감정이다.
큰 위기에 직면해 고통스럽다고 해도 감정에 솔직해지고 내가 감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더 견고히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