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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욱 Mar 11. 2020

잘나가는 세일즈맨은 설명하는 대신 들어준다.

경력이 쌓이고 인정받을수록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가 하나가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실수에서 피해 가기란 어렵다. 2012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투자기업 CEO이자 작가인 레이달리오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몰락시킨 실수들은 창피할 정도로 명확했다. 첫째, 나는 맹목적인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감정에 휘둘렸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고 , 아무리 열심히 연구했어도 <월스트리트 위크> TV쇼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또다시 배웠다. 나는 TV쇼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또다시 배웠다. <중략> 나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단정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충격적이고 곤혹스럽다. “  -『원칙』 레이달리오.


 프리랜서에게 자신감은 분명 필요하긴 하다. 한데 자신감에 있어 중용을 찾기가 참 쉽지 않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우린 종종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신 “내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확고한 이유”를 대곤 한다. 그래서 설득당하는 대신 상대를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레이달리오와 무수한 사업가들, 또한 당신을 확고한 실패로 이끄는 출발점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업무 중의 커뮤니케이션을 논할 때 “듣기”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도 듣기는 중요하겠지만 특히나 일에 있어서는 잘 듣는다는 것은 커다란 이점들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응 아는 이야기~”라고 말하고는 넘어갈 것이다. 한데 우리는 듣는다는 것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은 이 ‘듣기’라는 것이 당신을 더 오래오래 필드에서 많은 돈을 벌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의견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의견을 예의 바르고 자세하고 자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사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특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흔하지 않은 능력이다. 오죽하면 서점에 말과 화술에 관한 책은 따로 코너를 해서 분류를 할 정도겠는가. (물론 나의 첫 책도 말과 목소리에 관한 것이었으니 ) 정리하면 난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다. 여기에 추가해서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 조심스럽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당신의 결과물에 대해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피드백해줄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다. 바로 그렇기에 그들의 말하기 능력이 향상되길 기대하기보다는 당신의 ‘듣기’ 능력을 향상하는 게 백배 빠르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은퇴한 한 프리랜서는 은퇴하기 몇 년 전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하 나는 뭔가 새로운 스타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말이지... 아무도 나에게 그걸 원하지 않아. 날 좀 잘 끌어준다면 나도 다시 잘 나갈 수 있는데 말이지... 진짜 아무도 나한테 새로운 걸 해보라고 하지 않아.” 당신이 프리랜서가 되었다면 아마 선배들에게 이런 푸념을 듣게 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당신의 입에서도 나올 수 있을 말이다. 물론 12년 차인 나도 지난 몇 년 동안 이 말을 했었다. 놀라운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리랜서 생활 8년 차가 넘어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실력이 좋다고 자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창기에는 녹음 하나당 1시간이 넘게 걸렸던 적도 많았건만 어느 순간 하나의 프로젝트를 10분도 걸리지 않게 끝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수월하게 끝나다 보니 녹음실 감독님들과의 의사소통도 별로 길지 않았다. 그들이 운을 떼면 내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네 그렇게 해봐 드릴게요.”라고 말했고 숙련이 된 나는 곧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보여줄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완벽해 보였고 난 정말이지 (창피하지만 ) 내가 이제 정점을 찍었다고 확신했다. “이보다 잘할 수는 없다.”라고 스스로 극찬을 했으며 은근히 나보다 못하는 프리랜서들을 비웃고 욕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분명히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나아질 부분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나는 시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예전에 티브이만 틀면 나오던 내 목소리는 점점 그 광고의 개수가 줄어들어갔고 실제적으로 일의 개수도 점점 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난 티브이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순간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 촌스럽다. ” 사실이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작업물이 촌스럽고 올드하다는 생각은 사실 예전부터 들었지만 스스로가 애써 무시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사실은 잊고 싶었던 피드백들이 무수히 몰려왔다. “ 그렇게 하면... 좀 촌스러운 거 같은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 “흠.... ”  “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이 부분이 좀 거슬려서요. ”


 내가 취했던 반응들도 기억났다.  제대로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짜증이 차올랐고 ‘그렇게 하면 이상하지 않나? ’ ‘아니 저게 말이 돼? ’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나는 분명히 생각했고 표정에 그것은 다 드러났었음에 분명하다. 동시에 감정적인 반응으로도 튀어나오곤 했다. 10분이면 끝날 것 같은 녹음을 그들이 질질 끌며 이렇게도 해달라. 저렇게도 해달라 라고 말하면 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아 회의는 집에 가서 하라고.’ 뿐만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들이 말한 주문을 다 실현해주고 있었지만 이미 내 얼굴에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네에 그렇게 해볼게요.”라고 말했지만 난 한 번도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옷가게에 맞춤 수트를 맞추러 왔던 것이고 나는 그들의 치수와 원하는 색상, 디자인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봐주려고 하는 대신 내가 상품으로 만들어 95.100. 105 사이즈의 이미 색이 바래져버린 촌스러운 수트를 제시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이 촌스러운 수트를 원했기에 그렇게 해주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틀렸었다. 그들은 굉장히 루이비똥과 발렌티노를 섞어놓은 디자인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난 ‘집중해서 듣지 않았기에’  옷 가게들에 차고 넘치는 흔한 수트를 그려준 것이었다. 그것도 수트는 수트이기에  그들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동시에 이른바 ‘11년 차의 전문가’가 불편한 내색을 해댔기에 말을 삼켜버리고 ‘그래 저 사람이 주는 수트가 맞는 거겠지.’라고 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었다. 


 바닥을 찍고 나서야 난 이 촌스러운 막무가내의 자신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무리 내가 잘하는 것을 보여줘 봤자 촌스러울 뿐이었기에 난 처음으로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제시하는 대신 상대방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현해주려 노력했다. 그들이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선명하게 재현해 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대충 아는 이야기라고 넘기는 대신 오롯이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타인의 관점”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내가 행한 듣기 방법은 단순하지만 듣기의 교본 같은 방법이었다. 상대방을 향해 몸을 돌리고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집중해주었던 것이다. 마치 심리학의 대가 칼 로저스처럼 말이다. (그는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만으로 내담자의 50퍼센트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마법이 일어났다. 난 내가 처음 들어주려고 노력한 순간 상대방이 움찔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그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시선을 피하며 짧고 간략하게 설명했던 그들이 (아주 오래간만에 ) 열과 성의를 다하여 머릿속의 추상적인 느낌을 그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 것이다. 물론 한 번에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작업이 진행되며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는 동안 그의 말은 더 명료해지고 깔끔해졌고 디테일해졌다.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점점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록 작업은 예전처럼 10분 만에 끝나지 않고 더 긴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클라이언트들이 진심으로 결과물에 만족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바꾼 건 오직 듣는 태도를 바꾼 것 하나뿐인데 내 목소리의 촌스러움은 사라지고 듣기 좋고 트렌디하며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결과물이 뚝딱하고 나와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피드백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동안 내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습관도 알게 되었다. 피드백대로 살짝 바꾸어서 해주었더니 세상에. 내 입에서 ‘우와 내 목소리가 이렇게 트렌디했어?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참여한 광고는 히트를 쳤다. 경청의 소중함을 깨달은 나는 그다음 녹음, 또 그다음 녹음에도 피드백을 기꺼이 환영하고 소중하게 대하게 되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내 스타일이 트렌디해진 것은 물론 난 다시 왕성하게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뜻하지 않은 선물도 얻게 되었으니 바로 그들과의 훌륭한 신뢰관계이다. 잘난척하며 대충 듣던 내가 미소를 지으며 경청하길 원하자 그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나와 작업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잘 나가는 프리랜서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고객은 말을 잘하는 세일즈맨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세일즈맨에게 더 끌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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