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피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by 로지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피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와 보내려는 시간을 피한다기보다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에 매달려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나 이외에는 어떤 신경도 쓰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의 품을 벗어나 타지의 기숙사에 살면서, 혹은 자취를 하면서 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면 할수록 할머니는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해가 다 진 7시나 9시가 되어서야 할머니에게 화상 통화를 걸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할머니는 항상 전기세가 나온다며 집 안의 불이란 불은 다 끄고 티비 불빛에만 의존한채 어둑한 방안에서 우두커니 앉아계셨다. 할머니와 화상통화를 할 때면 할머니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느낌, 삶의 낙이 없어보인다는 느낌을 느꼈고, 얼마 지나자 점점 자주 느꼈고, 그 뒤엔 항상 느꼈다.


할머니는 동생이 가게를 차리고, 내가 집을 떠난지 거의 5년 동안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집을 지키면서,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고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그렇게 시간들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래도 가장 최근의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아주 성한 기력으로 동네 공원까지도 다녀오고, 그래서 역시 적적해서 공원에 나온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정하고 건강한 할머니도 세월이 야금야금 가져가는 기력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머니가 집 안에서 넘어져 머리에서 피를 흘리던 날부터 나는 모든 것을 다 접고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의식을 잃은 날부터 나는 내 방에서 자는 것도 그만하고 집에서 자기 시작했다.


그토록 내가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 할머니가 이렇게 혼자 집을 지키며 적막과 공백으로 이루어진 24시간 중에 겨우 10%도 안되는 10분 남짓한 손자들과의 화상통화를 기다리고, 엄마가 퇴근한 해질녘까지의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동안 나는 그렇게 가까이에 살면서 그렇게 할머니가 내 또래엔 결코 꿈꾸지조차 못했던 '자유'라는 것을 외치면서 벽을 치고서 나는 얼마나 거창한 걸 얻었는가? [^1]



의미의 관점에서 내가 기어코 자유를 추구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할머니를 외롭게 남겨두는 것보다 중요한가? 내가 내 나름의 복잡한 일들로 머리를 환기하고 싶어서 혼자 산책하려고 했을 때, 그 일들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 [^1]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고 줄이다 못해 오고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디지털 신호로만 연결되면서 그토록 제로로 만들어서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나는 얼마나 가중치를 나 자신에게만 두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 할머니는 나를 키우기 위해 부산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전주로 내려온 건데. 포천에서부터 전쟁을 겪고, 순천을 거쳐 부산에 이르러 겨우 터를 잡고 식당을 차렸는데 그 모든 걸 동료에게 줘버리고 한 달음에 달려올만큼 나에게 아낌없이 주셨는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생색도 내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으며, 불만도 갖지 않으셨는데.



[^1]: _ 이런 성찰은 역설적이지만 다 저질러놓고, 하고싶은걸 다 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처음부터 지금 '정답지'라고 생각하는, 할머니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오히려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멀리갔다왔기 때문에 할머니를 보살필 수 있는 능력을 얻었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회귀인 것이다.



이렇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선한 사람을 두고 나는 야속하고 답답하고 한심하게도 그게 고마운 줄을 몰랐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이 깨달음들을 얻은 것이 모든 게 다 끝나버린, 소 잃은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소를 잃기 직전에 외양간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억지스러운 욕심과 후회도 든다. 지금 이렇게 24시간 같이 지내는 것을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젊으셨을 때, 나눈 대화를 대부분 기억하실 때 이렇게 해드렸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과 바다'에서 어른들이 보기에 산티아고 노인은 남들에 비해 고기를 많이 못잡는다는 점에서, 더 늙고 힘이 없다는 점에서, 더 가난하다는 점에서, 마음을 쓰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가장 다정한 철학, 69p


충코는 대상을 사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산티아고 노인을 '사물'로서 사람들이 바라보며, 따라서 다른 대상들과 '비교'하게 되며, 산티아고 노인은 남들에 비해 고기를 많이 못 잡고 더들고 힘이 없고 더 가난하다고, 그런 점들에서 마음을 쓰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반면 유일하게 노인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마놀린에게, 산티아고는 유쾌하고, 따뜻하고, 야구를 잘 알고, 누구보다 훌륭한 고기잡이 기술을 가졌고, 깊게 팬 주름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가진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나에게 할머니 역시 그런 존재이다. 사물로 결코 바라볼 수조차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오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고, 내가 살아오면서 접촉한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고, 가장 내가 많은 인생의 태도를 배운 사람이고, 내가 요즘 세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뒤틀려 있고 왜곡되어 있다고 느끼는 점들에 대해서 단 하나의 이상함이나 오염됨 없이 모든 순수함을 간직한 분이다. 할머니는 비교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할머니는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용어가 있다. 모든 깨달음을 얻어서 자기 혼자만 만족하면서 살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 그런 미숙한 존재들과 섞이면 고통받고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 속세에 나와 살기를 자처한 사람을 일컫는다.


[[모순 10, 나의 모순. 블랙스완을 죽이는 이이적 인간 가설의 해로움]] [^2]


[^2]: _ 신기하다. 순전히 경제적, 수학적으로만 접근했는데 불교적 성찰과 비슷한 결론을 얻은 것.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보살이 아닐까 한다.

할머니는 그 어떤 누구와도 나를 비교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결코 자신이 무언가를 받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항상 아낌없이 주셨다. 할머니는 방문 간호사에게, 요양보호사에게, 또 집을 방문한 모든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첫 마디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시원한 곳에서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라고 권하면서 할머니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신 걸 베풀려고 하셨다. 자신에게 무심하여 먹을 약도 과다복용시켜 실신하게 만들고, 귀가 잘 안들리시는 할머니와 같은 공간에서 대담하게 근무중에 사적인 통화를 하던 요양보호사에게는, 그녀가 거짓말을 치는지 아닌지 의심은 한 치도 하지 않은 채 수술한다는 아들 맛있는거라도 사주라고 2만원을 꼭 쥐어주었다. 젊은 시절 농사지으면서 살 적에는 가난한데 식구는 많은, 매일 배고파 우는 소리가 떠나질 않는 옆집 먹으라고 짚으로 만든 담 밑에 구멍을 내고 쌀을 한바가지씩 집어넣어주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좀처럼 뭔가를 갖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할머니가, 엄마가 입원하던 시기에 날더러 '너 이제는 방에서 자지 말고 집에서 자야한다?'라고 이야기하던 것은, 그 뉘앙스는 지나가는듯이 말한 것이었지만 할머니가 지금까지 해온 말과 행동들을 볼 때 정말 간절하게 원했던 것 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가볍게 생각해서 그 순간에는 잠잘 때만은 개인 시간을 가져야지, 라고 생각하고 '혼자서도 못자?'라고 했으나 이내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집에서 자기 시작한 것은 아주 잘한 선택과 결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싶은거 없냐고 물어볼 때에도, 갖고싶은거 없냐고 물어볼 때에도 그런거 없다고, 좀처럼 원하거나 요구하지 않던 할머니가 유일하게 요구했던 순간이다. 둔하고 건조한 나지만 다행히도 할머니가 좀처럼 하지 않던 희귀한 요구를 알아채고, 놓치지 않고, 들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할머니와 함께 보내던 시간을 피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겪었기에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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