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by 로지


회귀, 사이클, 제자리걸음, 다시 돌아오는 것, 뫼비우스의 띠, 그토록 추구하는 가장 값진 것은 이미 가졌을지 모른다.



요즘 나를 지배하는 개념은 회귀이다. 아니 사실 예전부터 지배해왔으나 그 어렴풋한 정도가 요즘들어 선명해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헬리혜성의 공전 주기가 너무나 거대한 타원형이어서, 어느 시점에는 지구에서 그것을 전혀 볼 수 없다가 80년이 지난 어느날 모습을 드러내듯이, 이 회귀라는 개념도 내 무의식 속 우주에서 궤도를 그리며 돌다가 지금 의식으로 관찰 혹은 채집 혹은 느끼기가 가능한 거리까지 근접해온 것이라고 하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러므로 나를 지배하는 개념은 회귀라는 걸 깨달았다고 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회귀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 이 개념을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한다.




내 안에 점점 '사이클' 내지는 '순환' 개념이 움트고 있다. 사과 위에서 앞으로, 앞으로만 전진하던 개미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초기에 생각하던, 아니면 원래 글을 쓰기 전부터 갖고있던 특성들을 비로소 설명해주는 이유를 찾으며 원점들로 돌아오곤 한다. 이는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점점 더 많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더 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캡처할수록 이렇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직 결론내리지 못했다.




[[상대적 박탈감, 감사할수록 무수입수명을 더 늘릴 수 있다]]



회귀라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먼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 파란만장한 모험을 마치고 나니 사실 모든 게 꿈이었던 것. A가 싫어서 다른 걸 열심히 추구했지만 결국엔 A를 좋아하게 되는 것. A가 필요없다며 내팽개치고 가출했지만 결국 A를 찾아 돌아오는 것.



우선 요즘 내가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태도의 연장선으로, 한 번에 글을 써내려갈 수 없는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워밍업을 하기 위해서 그동안 내 안에 떠돌고 있던 조각들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첫째, [[관계의 세 종류, 능동적, 수동적 우연성과 자발적 선택 0.6]]에서 초점을 맞췄던 결혼이라는 개념. 이것은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의 주인공이 커리어의 모든 성취 후에 맞이했던 상황에 착안해서 그녀가 맞이했던 공허함을 나는 예방하기 위해 다뤘지만 그 안에도 회귀의 이미지가 들어있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돈을 모으고, 하기싫은 일을 하며, 또한 그것을 극대화 하기 위해 현재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면서까지 그렇게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얻게되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소홀히 했던 그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들인 것이다. 처음 주어졌던 소중한 관계들의 끈이 점점 끊어지고 난 자리에 결혼을 해서 새롭게 생겨난 소중한 관계들이 자리잡는다.[^1] 달려가고 또 달려가다 보니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것.



둘째, 영화 컨택트(Arrival)의 원작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회귀의 측면에서 내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그 작품에 나오는 외계인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다. 아니 모두 존재한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일어난 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두 담아 어디서부터가 시작점인지 알 수 없는 원 모양의 문자로 소통하며,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거부하거나 변경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저 현재로 옮겨놓는 식으로 산다. 인류학자였던 주인공은 그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고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미래는 딸을 잃는 슬픈 미래였지만, 외계인들이 그랬듯이 미래를 알면서도 미래로 가면서 사랑과 임신과 출산과 딸을 키우는 행복과 딸을 잃는 슬픔을 기꺼이 경험해나간다.



셋째, "신데렐라를 위하여"의 가인은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고 아껴주던 태경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거절하고 거절하고 또 거절하지만, 아주 밑바닥 상태에서만은 태경을 찾는다. 그리고 또 만나지 말자고 선언하지만, 태경이 마침내 가인을 잊을만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려고 하자 태경에게 다시 시작하자며 울고불고 매달린다.



넷째, 너무나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한 소녀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너무 싫어서 가출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것은 자신에게 처음부터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그곳이 안락한 곳이었는지 알게된다.




써놓고보니 이 이야기들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만일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들에서 회귀라는 패턴을 본다.



내 안에 있는 회귀라는 개념은 이런 이미지이다.


한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뤄줄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기나 긴 여행 끝에 마침내 그 보물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렇게도 원하던 보물을 손에 넣고 보니, 알고보니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고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보물은 그 보물 자체가 아니라 그 시작점부터 갖고있던 가족, 응원해주고 인정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글쓰기를 하고, 독서를 하면서 매일 나아지고 있다. 잘못하고 있었거나 모자랐던 것들을 바로잡는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지만, 동시에 나는 제자리에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나는 경제적으로 자유롭길 원했다. 독립되길 원했다. 그래서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싶은 건 뭐든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다. 내가 엄청난 부자여서가 아니라, 애초에 바라는 게 너무 소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사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여전히 일을 한다. 이미 나는 가진게 아닌가? 나는 이미 충분히 가졌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들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고 달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끝에 공허함이 주로 있을 것이라는 걸 어느정도 확신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나가고 있다. 나는 둘 중에 하나만 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려나가다가 위의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처럼, 그제서야 깨닫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매사에 감사하면서 좀 더 느리게 살던지. 나는 알면서 달려나가고 있다. 이것은 도망에 가깝다.


[[솔직함은 도망을 인정하는 것, 모르는 사이 도망치고있는지 모른다. 0.6]] [^2]



어제 글에 대해 AI가 말했듯이, 이것은 단순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귀가 아니라, 3차원으로 보면 나선형을 그리면서 z(높이)값이 높아진 상태의, x,y 값만 동일해진 회귀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아직 뚜렷한 근거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 근거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시뮬레이션 소재에 대한 마트료시카 제약 고찰]]



아마도 이 길의 끝에서 나는 뭔가 엄청난 반전을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값진 것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그런 뻔하고 예상 가능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그 지점에 닿아 겪어보는 것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생물학적 중력이 나에게 가하는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나는 중력이 만들어내는 중력장에 의해, 그것들을 시각화하고 느낄 수 있는 언어의 형태로, 직관선행이론, 동기에 의한 추론을 활용해서 그것들을 그저 매일 반복하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글로 옮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다.


회귀라는 개념은 직선적 사고에 익숙해있던 나의 뇌에게 낯선 개념이다. #모순 적이게도 회귀를 의식적으로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사과의 한 점에서 직진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개미처럼, 나 역시 그 직선을 추구하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이게 내가 오늘 쓰고싶던 회귀의 이미지이다.



[^1]: _ - 그러면 처음부터 그 관계들을 소홀히 하는 대신 소중하게 대하면서 지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새롭게 생겨나는 소중한 관계들의 수명이 더 길다는 측면에서, 이 비유는 '회귀'라는 개념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인정한다. 이것은 나의 확증편향으로 선정한 불완전한 예시이다.



[^2]: _ 나는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있는지를 밝혀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멈추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건 나의 한계이지만 성공해야 하므로 한계라고 인정하면 안되는 한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은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않고는 못배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