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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을 적에 미련이 너무 많아서 한이 맺히면, 죽어도 저승에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된다고 했다.
요절한 소녀귀신의 네러티브.
노래 속의 소녀귀신은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천진하게 웃으면서 말하는게 더더욱 서글프게 만든다.
너무 한이 맺혀서 성불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소녀귀신이 하고싶은 것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인생네컷도 찍어보고싶고, MBTI를 주제로 친구들과 수다떨고싶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것도, 시원한 맥주도 마셔보고싶고 ..
십대 시절 가지고있던 소박한 욕구. 너무나 평범한 하루여서, 날잡고 한다면 하루만에도 다 할 수 있었을 그런 것들을 사는 동안 단 하루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들어본적도 없는 한 소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한이 맺힐 정도로 힘들게 살아야 하는게 대중적인 레벨이 되었다는게 서글프다. [^1]
2
죽어도 여한이 없음.
오늘이 누군가에겐 가장 바라는 내일이다.
공기를 느끼고, 숨을 쉬고, 지근거리에 있는 할머니를 한 번 더 눈에 담고, 병원에 모시고 가고, 말을 걸고, 보살펴드리고, 제발 화장실 갈 때 불 좀 켜라고 말하는 아주 평범한 하루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무사히 살아서 내일을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한게 별로 없다고 느낄 수 있는 하루지만, 이런 소녀귀신과 같은 혼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제발 꼭 살아보고싶은 하루인 것이다.
할머니와 지내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꺼져가는 등불같은 할머니와 지내면서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삶이 끝나는 것.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 사는 동안 했던 그 모든 고생들, 노력들, 희로애락들,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과거에 머물며 현재로 연결되지 않게 되는 것. 알고지내던, 그런 희로애락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
그렇게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명확해지는 한 가지 개념은, 그렇게 결국 끝나는 것이 삶인데, 잠깐 왔다 가는 여행같은 것인데, 그 여행에서 나는 얼마나 즐기고 있는 것인지. 그 여행에서 소요되는 경비가 아까워서, 기껏 여행지까지 와서 그 소중한 시간들을 전단지 알바나 인형 눈 붙이기같은 것들에 쓰고있는 것은 아닌지. 잉여 자원 레이어와 현실을 사는 것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어렵지만, 죽음은 그런 것들을 놓아버리지 않게끔 해주고, 그것들을 붙들고 생각하게 한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어울리는 순간들은 대부분 추억으로 남겨질 경험들을 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것들은, 통장 잔고가 1억원을 달성했을 때나 월 1천만원을 벌었을 때와 같은 축적의 순간들은 아니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는 대답에 가까워져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그리고 내일은 그보다 더.
3
천재, 임팩트 시그널, 블랙스완.
단 하나면 된다. 살면서,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의 홈런이면 된다. 그것이 그때까지 암흑기에 머물며 견디던 모든 배고픔과 추위를 보상하고도 남는 거대한 성공을 가져다준다.
공들여서 깎는 것. 10시간이 주어졌다고 할 때, 만드는데에 1시간만을 들여서 영상 1개씩, 10개를 만들었을 때보다, 10시간을 들여서 1개의 영상을 만들었을 때 뚫을 수 있는 천장의 높이가 훨씬 높다. -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
AI의 시대. 다시 말해서, 무엇이든 들려주고, 보여주는 지니에게 누구나 소원을 빌 수 있는 시대. 어떤 소원을 빌지 상상하는 바로 그 능력이 정말 중요해진 시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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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었던 댓글
@가나다라-b6n9k
3일 전
사랑하는 내동생 영은이. 오빠는 와이파이도 모르냐고 핀잔주던때가 엊그제같은데 이제 난 스마트폰 도사가 다 될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했어. 병원에 누워서 다 나으면 하고싶은거 많다고 나지막히 했던 말이 아직도 떠올라.. 그게 어떤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길을 걷고 드라이브하는 평범한 일상을 갖고싶었겠지.. 둘이 같이 맥주도 한잔 못마셔봤고 못해줬던것도 너무 많아서 미안해. 아마 MBTI는 내 기억속에 넌 ENFJ정도가 아니었을까? 보고싶어 사랑해
-사람이 죽어도, 사람은 기억 속에 살아간다.
@whysoidiot
2일 전
이 노래 덕분에 조금 더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예술은 진정 세상을 이롭게 한다.
@후니훈지
1일 전
처음 들었을땐 애니메이션이랑 노래가 엄청 좋네? 하다가 직접 와서 보고 울었음
사연 없는 귀신 없겠지만 MBTI도 모르고 인생네컷도 못찍어보고 그냥 아아랑 맥주 한잔 하는게 소원이라는 어린 귀신
귀신이 놀래키거나 복수할 마음조차 들지 않게 하는 지친 현대인
너무 많은 이야기가 노래 하나에 담겨있는 것 같아서.. 다들 저승가는 길에 미련 없이, 불만없이 오를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삭막해서 자기만 생각하게 되는 세상이지만, 모두의 안녕을 비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댓글에선 위로를 주고받는 장이 열렸다. 노래도 노래지만, 댓글에서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노래의 가치를 더했다.
[^1]: _ 그러나 이는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다. 특히 불과 몇세대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풍요는 커녕 전쟁과 기근, 질병으로 태어난 뒤 100일을 생존한 것을 축하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주어진 틀에 너무 갇혀서 그런 것이지만, 어릴 때 나의 세계는 부모님이기에, 부모님이 보여주는 세상을 살아갈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