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이클을 맞이하며.
시장이 불타오르고 있다.
그 소식을 듣고싶지 않아도, 그 소식이 너무나 신나고 희열을 주는 이유로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며 이 사람의 입에서 저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며 결국 나도 듣게 된다.
수익을 인증하고, 그래서 그 기쁨을 표현하고, 자랑하며 부러움으로서 또 한번의 보상을 받고.
겨울을 기억한다.
버티고 또 버텨도 차가운 파란색만 보이던 시절, 하룻밤, 이틀밤은 커녕 몇달 밤을 지새워도 자꾸만 낮아지던 바닥에,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휴짓조각 되겠구나,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견디고 견디다 못해서, 이것만이라도 건지자고 생각해서 청산하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질려서 쳐다보지도 않다가,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며, 더 낮아진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 두 번째 사이클이 돌아오는 시기에, 그 모든 바닥은 천장을 뚫고 있다.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는 알고있다. - 뒤따라 사는 것.
그리고 적어도 무엇을 하면 중간은 가는지는 알고있다. -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 [^8653] 또 지금이라도 들어가면 안늦은거 아닐까? 하면서 뛰어드는 것.
[^8653]: _ 많은 클릭베이트성 스피커들이 아무것도 사지않으면 벼락거지가 된다느니, 너만 돈 못번다느니 하는 어그로를 끌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런 부화뇌동의 폭풍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중간은 가며, 아무 손해도 보지 않는다. 상대적 손해라고 느껴졌던 것들은 지난한 FOMO의 사이클이 지나고, 어느새 상대적 이익으로 바뀐다.
기회의 속성 1
기회는 그 전까지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있다가, 놓쳐버렸을 때 그것이 기회였다는 신분을 드러낸다. 그 신분이 드러나면 여기저기서 그게 기회였다고, 마치 자신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알고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스피커들로 넘쳐난다.
기회의 속성 2
그리고 기회의 또다른 속성은, 그것은 유한 자원이 아니라 무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이미 신분이 탄로난 기회가 있을 때, 동시에 신분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또다른 기회 역시 존재한다. 해야할 일은 이미 탄로나버린 기회를 붙잡지 못했음을 한탄하고 미련가지며 '껄무새'가 되는 게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기회를 캐러 다니는 것이다. - 이것은 스스로 음침하고 어두운 지하실로 들어가는 행위이며, 동시에 누구에게라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받는, 나아가 욕먹고 호적을 파이기까지 하는 길을 가는 행위이다.
사이클의 정점에서 큰 보상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이니?'하면서 따라 들어간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부터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심지어 주변에서 '그걸 대체 왜 사냐'고 할 때, '그거 사면 패가망신한다'라는 저주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최소한 내가 해야하는 것은, 내가 대다수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 가치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이걸 왜 무시하지?', '다들 이걸 왜 안하지?/안사지?'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신념을 소중히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 계약으로서 나의 시간을 일정한 환율에 팔지 않는 것, (모두가 카피해서 쉽게 가려고 할 때)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갖는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들에 대해 '대체 그걸 왜 하지?'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낭비라고 규정짓고, '너 그거 안하면 후회한다'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 납득할만한 근거가 있다면 과감히 하지 않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글쎄, 하지만 나는 멀었는지 모른다. 확신이라는 것은 1. 가설과, 2. 그걸 감행하기 위한 용기와, 3. 정신적 측면에서 무시받으며 느끼는 외로움과, 4. 물리적 측면에서 성과를 내지못하며 느끼는 배고픔과, 5. 마지막으로 그것이 맞았다는 게 드러나는 모두가 우러러보고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많은 아는척하는 연락을 받는 결과로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다고 생각한다. 이때 5번이 없으면, 1번부터 4번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자신만만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본다. 스티브잡스, 일론머스크 같은.
나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내가 믿는 것이 정말 100% 옳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선택지들보다는 이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가장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뿐이다. 나중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돌아보며, 더 좋은 선택이 있었으리라는 걸 위에서 묘사한 후견지명으로서 알게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지금 알고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1]
[^1]: _ - 이것을 스스로 부정한다면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야할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나를 틀렸다고하는 사람들이 왜 틀렸는지에 대한 방어논리를 만드는 것이 더 편하다. [^2]
[^2]: _ 다행히도, 나름의 객관적인 지표인 AI에게 생각을 종종 검증받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비뚤어져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이 덕분에 조금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