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보호막이었을까
내가 이혼한 2021년은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에 익숙해져 갔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이나 카페, 술집에서 만남을 갖는 대신에 넷플릭스와 홈카페, 혼술에 익숙해져 갔다.
이혼 초반, 가족을 비롯하여 아주 가까운 지인들 외에는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혼 사실을 숨기기에 코로나는 아주 좋은 보호막이었다.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나 카톡으로 이혼 사실을 알리기에 이혼은 나에게 너무나 중대한 사건이니까.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지.' 코로나는 나의 이혼을 숨기기 위한 아주 좋은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사실은 내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거겠지. 나의 이혼이 누군가에게 씹기 좋은 안줏거리가 되고 나의 결혼이 실패로 결론 나고 나와 내 아이들이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 그것이 못내 탐탁지 않은 마음이었겠지.
공교롭게도 코로나는 바이오 분야에 이른바 '코로나 특수'를 가져다주었고, 덩달아 나도 코로나 실험으로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온몸을 감싸는 전신보호복을 입고 호흡보호구를 착용한 채 BL3(생물안전 3등급 연구시설)에 들어가서 4~5시간의 실험을 했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나면 곧 퇴근 후 아이들 하원할 시간이다. 놀이터에서 잠깐 놀아주고 저녁 챙겨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나도 곯아떨어진다. 눈을 뜨면 다시 등원과 출근의 반복.
코로나 때문에, 일이 바빠서, 때로는 아이들이 아파서, 그 핑계들이 나에게 일종의 보호막을 제공해 준 샘이다. 그 보호막 덕분에 어쩌면 나는 더 빨리 회복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쳐서 뭉개져버린 꽃술들이 꽃잎에 겹겹이 둘러싸여 활짝 피어나길 기다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