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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니까 이혼해 줘

그렇게 이혼녀가 되었다

by 돌트리플

2021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회사 업무시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를 위해 사무실을 나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투자를 위해서 대출을 받았는데 투자 실패로 빚이 몇천만 원 생겼어. 당신과 아이들에게 미안하니까 이혼해 줘"


'미안하다'와 '이혼'이 어울리는 단어인가? 미안하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지 왜 이혼을 이야기하는가? 이혼 이야기를 전화로 이렇게 갑자기 하는 게 맞는 것인가? 혼란스러웠고 우선 통화를 끊고 집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은행계좌를 보여달라고 했으나 대출 잔액을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이혼하자고만 했다. 그의 핸드폰을 뺏으려고 몸싸움까지 했지만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사람과 4년을 연애하고 6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이 둘을 낳았나.
내가 끝까지 그의 핸드폰을 확인하고자 한 것은 작은 해결책이라도 찾아보려는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대출현황을 알려주고, 상환계획을 공유하고, 나를 속여온 시간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아이들을 봐서라도, 함께해 온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까.

나는 용서할 기회도, 이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볼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채 이혼녀가 되었고, 아이들을 양육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협의 이혼으로 이혼 과정이 순탄했던 점. 이혼과 순탄이라는 단어가 공존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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