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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아이 둘을 양육하게 된 진짜 이유

첫째에게 보내는 고해성사

by 돌트리플

가정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혼이 기정사실이 되었다. 남은 것은 3개월의 숙려기간. 3개월 동안 같이 산다 한들 서로 불편하기만 할 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전남편이 집을 나가기로 했다.


"나 혼자 애 둘은 못 키워. 둘째는 아직 어리니까 내가 키울 테니 첫째는 당신이 키워. 같이 데리고 나가."

나 나름 이혼 후를 생각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짧은 고민 끝에 뱉은 말이었다. 실제로도 혼자 둘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 애 둘을 키우게 되면 나는 애 키우느라 고생하며 늙어갈 텐데 총각 마냥 자유를 누릴 전남편을 상상하면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내가 그동안 맞벌이 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한 거 너도 당해봐라 하는 심술보도 함께 작용했다.


그렇게 5살이었던 첫째는 갑자기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전남편이 일하는 회사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기존의 어린이집에는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둘러댔다. 어린이집 그만두는 것도, 새로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전남편한테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동안 내가 고생한 거 너도 한번 당해봐라 싶은 심술보는 여기서도 작동했다.

전남편은 급하게 지낼 집을 구하고 첫째를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록했다. 그리고 짐을 싸서 나갔다. 첫째를 데리고.


그렇게 양육권은 각자 한 명씩 키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하였으나 내가 문제였다.


둘째 밥 먹일 때, 첫째 녀석 밥은 먹었으려나 걱정이 되더라. 둘째 재우다가도 첫째는 바뀐 잠자리에서 잘 자고 있으려나 걱정이 되더라. 둘째 기저귀 갈다가도 문득 첫째 이사 간 집 화장실은 깨끗하려나 걱정이 되는 거다. 갑자기 옮긴 어린이집에는 잘 적응을 하려나, 새로운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려나, 같은 반 친구들은 착한가.

둘째 키우면서 출근하고 일하면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첫째 생각만 자꾸 났다. 멋도 모르고 활짝 웃어주는 둘째의 함박 미소에 도저히 함께 웃어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다 챙겨가지 못한 짐이 있어서 가지러 와주세요"

첫째가 쓰던 칫솔과 낮잠이불을 조수석에 싣고 오는 길에 내 차 선팅이 진한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세상사람들한테 내가 엉엉 우는 거 다 보여줄 뻔했지 뭐야. 누가 보면 초상났는 줄 알았을 거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식 앞에서는 살랑이는 바람에도 허물어지는 모래성이 따로 없더라.


일주일 만에 결국 내가 백기를 들었다.

"첫째 잘 지내? 밥은 잘 먹고? 걱정이 돼서 안 되겠어 그냥 데리고 와"


내가 아이 둘 다 키우겠다는 말에 아이들 아빠도 일주일 동안 첫째 케어하랴 회사 출근하랴 적잖이 고생을 했는지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아이 둘의 양육권을 모두 내가 갖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첫째를 보내보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아이 둘 키우다 힘들 때마다 그냥 하나는 보낼걸, 하나만 키운다고 할걸, 하며 뭣도 모르는 후회를 했겠지. 겪어보니 알겠더라. 아이들 없이는 못 살겠더라. 나는 그런 사람이더라.


그때 그 일이 첫째에게는 아빠와 다녀온 조금 긴 여행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할 것 같다. 이 어미는 끝까지 이기적이다. 그저 내 마음 편할 궁리만 한다. 아이한테 상처 줘놓고 상처 안 받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혼 후 아이를 상대방에게 보낸 비양육자분께: 각자의 가정에는 다른 사정이 있습니다. 당신도 아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셨겠지요. 당신을 나무라는 글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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