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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혼할래

부모님께 이혼 소식 전하기

by 돌트리플

이혼하기로 결정한 후, 나에게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바로 부모님에게 이혼 소식 전하기. 딸의 이혼 소식에 누구보다 속상하고 가슴 아프실 분들이기에 입에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말해야지 어떡해. 그냥 담담하게 말하기로 했다. 엄마는 뭐라고 할까? 그냥 좀 참고 살라고 할까? 아무리 사위가 귀해도 딸이 먼저겠지!


"엄마 나 이서방이랑 이혼하기로 했어. 이서방이 돈사고 쳐서 이혼하제. 애들은 내가 키우기로 했어."


엄마의 첫 번째 반응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네가 돈 관리를 잘하지 왜 그랬어?" 내 탓하기였다.

어라? 이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엄마, 부부사이라도 마누라 몰래 대출받은걸 내가 어떻게 해?" 억울한 마음에 버럭 대답했다. 아니, 울먹거리며 대답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그러네. 네가 알아서 잘 결정했겠지. 그럼 이혼해야겠네."


사실 결혼할 때 부모님이 반대하셨었는데 내 고집대로 결혼했었다. 내가 행복하려고 부모님 가슴에 흠집을 냈다. 기왕 그렇게 된 거 보란 듯이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혼하면서 한번 더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마치 벼랑 끝에 서서 비장하게 결정을 내린듯한 딸의 선택 앞에 부모님은 그저 믿어주셨다. 벼랑 아래에 뭐가 있던 마음껏 몸을 던져보라고. 벼랑 끝에 선 딸에게 부모의 존재는 날개이자 푹신한 구름이었다. 가슴에 대못이 서너 개쯤 박혀있을지언정.



이혼 후 부모님은 나의 가장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 되어주셨다.

"엄마, 나 다음 주 수요일에 회식이야. 애들 좀 봐줘."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회식이나 출장이 있는 날에는 엄마를 호출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힘들 법도 한데 엄마는 한 번도 거절하시지 않았다. 손주들 자주 보면 좋고 못 보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애들이 순해서 하나도 안 힘들다고 하셨다. 우리 집에 오셔서는 집 청소도 싹 해주고 쌀이며 반찬도 냉장고 가득 채워주셨다. 나 나름 깔끔하게 해 둔다고 해도 애 둘 키우는 워킹맘이자 싱글맘의 살림이 엄마의 야무진 솜씨를 쫓아갈 수 없었다. 딸네 집 치우며 애들 아빠가 없어서 집이 이 꼴이냐며 엄마가 속상하실까 봐 걱정이었다.



아마 엄마 아빠가 없었으면 이혼 결심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애를 둘 낳아 기르면서도 아직 엄마 아빠가 없으면 안 되는 응석받이 막내딸이 나였다. 그런 못난 딸이 한 집의 가장이 되어보겠노라 큰소리치며 애 둘 양육권을 갖고 이혼하고 돌아왔다. 참 대책도 없지. 그런 못난 딸도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게 부모인가 보다.


엄마아빠, 나 이제 시댁 없으니까 남들보다 두 배로 더 잘할게요. 시부모한테 쏟을 감정과 시간들 다 엄마아빠께 드릴게요.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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