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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마음의 상처 회복과정

무너져도 다시 쌓기의 반복

by 돌트리플

이혼 후, 내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운전 중에는 '아무 데나 들이받아서 확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남겨질 아이들과, 아이들을 떠 앉게 될 노부모가 눈에 선해 눈을 부릅뜨며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건가' 하는 자책이었고,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결론에서 오는 억울함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막막함.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내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음을 그때는 몰랐다.


사랑해서 조건 없이 결혼한 대가는 이혼통보라는 뒤통수였고, 얼얼한 뒤통수라는 현실 앞에 사랑 신뢰 의리 따위의 감정놀음은 한낱 사치에 불과했다.

그저 얼얼한 뒤통수를 움켜쥐고 하루하루 살아내야 했다. 나의 상처에서 오는 아픔이 컸기에 아이들의 아픔은 나보다 덜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혼 후 일 년쯤 되었을 때,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졌고, 4살이었던 둘째 어린이집에서 학부모참여수업이 있었다. 평일 7시였고 원생 부모 모두 참석이 가능했다. 첫째는 엄마한테 맡겨두고 둘째와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그림과 만들기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고 아이들 손을 잡고 온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전시된 작품을 한 바퀴 둘러보고 어린이집에 들어가려 하는데 둘째가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또래보다 말이 늦던 둘째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냥 안 들어가겠다고만 완강하게 표현한다.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설마 하며 "아빠가 안 와서 안 들어가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쪼끄만 게 뭘 알겠냐 싶었는데 다 알고 있었나 보다.


첫째를 봐주고 있던 엄마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는데 꾹꾹 눌러뒀던 눈물이 터져 나와버렸다. 꾹꾹 눌러둬서 그런지 참을 수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에도 눈물이 묻어났다. 엄마도, 나도, 아이의 마음도 무너진 날.


그 이후로도 아빠들이 참석할 수 있는 주말에 하는 유치원 체육대회에는 여행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또다시 무너져버릴까 봐. 아이가 아빠손 잡고 온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할까 봐. 그런 아이의 표정에 내가 또다시 무너질까 봐.


아이 둘 데리고 셋이서 식당을 가도 눈치가 보였다. 아이들이 아무 말 안 해도 괜히 아빠랑 같이 온 테이블을 보면 아이들 표정을 살폈다. 그냥 쳐다보는 눈길도 아빠는 어디 가고 셋이서 왔냐는 눈치로 느껴졌다. 실제로 아빠도 같이 오지 그랬냐는 오지랖 넓은 식당 주인의 말에는 "바빠서요~"라고 대충 둘러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별일 없었고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내가 지레 겁먹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는데 내가 그냥 눈치가 보였다. 이혼 후 싱글맘이 된 마음은 그랬다. 지은 죄가 없지만 죄인인듯했다.


지나고 보니 내 뒤통수가 아팠던 만큼 아이들 마음도 아팠겠지 싶다. 내 상처에 매몰되어 내 아이들의 상처는 잘 돌봐주지 못했다. 무너진 마음을 쌓아 올리고, 또다시 무너지면 다시 쌓아 올리고, 이혼으로 다친 마음의 상처 회복과정은 그런 거였다. 언젠가는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와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해져 있길 바란다.


튼튼하되 무딘 마음은 아니길. 풍요로운 인생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길. 어른들의 잘못으로 죄 없는 아이들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길. 나 또한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길. 결국엔 다시 무너지지 않을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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