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식, 주변에 어떻게 알려야 할까?
누군가는 나에게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이혼 사실을 알리는 게 좋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주변에 알려서 뭐 하냐 그냥 비밀로 하라고 했다.
이혼 한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다르고, 이혼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다만, 나의 경험상 이혼의 극복 과정에 따라 주변 지인들에게 천천히 이혼 사실을 오픈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혼 사실을 숨기다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이혼 사실을 부정적인 것이며 숨겨야 하는 치부로 인식할 수 있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로스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큰 상실의 극복 단계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심리적 단계들을 경험하며, 나는 이러한 심리적 단계에 따라 주변에 자연스럽게 이혼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혼소식을 주변에 알리는 것, 이 쉽지만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이혼을 주변에 알리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보려고 한다.
1단계 -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이 시기는 막 이혼을 결정하고, 이혼 접수 후 숙려기간을 포함한 이혼 초기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내가 이혼한 게 사실인가, 이것은 꿈이 아닐까, 등의 부정 단계에 해당한다. 또한 이혼의 유책 배우자 혹은 이혼의 원인에 대한 분노심이 극에 달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나 조차도 이혼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베프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이혼을 말하기는 힘든 시기이다. 본인의 마음을 추스르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일상을 유지하면서 너무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2단계 - 할 말이 있는데 사실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혼 사실을 털어놓는 단계이다. 친한 친구, 친한 직장 동료, 놀이터에서 매일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에 해당한다.
사실 2단계 초기에 지인들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는 게 꽤나 힘들었다. "사실 내가 할 말이 있는데..."라며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만 해도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또르륵 흘러내리는 경험이었다. 또는 이혼을 말하자마자 친구들이 먼저 울어버려서 그 모습을 보고 덩달아 나도 울음이 터져버리는 상황들.
하지만 이 단계를 거치면서 나는 지인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고 다시 잘 살아보고자 하는 용기도 많이 얻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가장 내딛기 힘든 한 발이었지만 그만큼 꼭 내디뎌야 하는 첫 발이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벼워지고, 별 것 아닌 것이 되어간다.
3단계 - 제가 남편이 없어서요 하하!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단계다.
아이 친구 가족들과 캠핑을 종종 간다. 거창한 캠핑 장비를 구비한 건 아니고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3만 원짜리 작은 텐트에 캠핑 의자, 돗자리, 이불 등등 간소하게 챙겨 가는데(간소하다고 해도 자동차 트렁크와 조수석이 가득 찬다) 아이 친구 가족들이 가는 캠핑에 슬쩍 끼여서 가는 꼽사리캠이라 가능하다. 아무튼 캠핑에 종종 아이친구 아빠들도 함께 하는데, 하루는 캠핑 중 저녁식사 겸 맥주 한 캔 하면서 아이친구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남편도 데리고 오지 그러셨어요." 아이친구 엄마가 나의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나 보다. 예전 같았으면 당황스럽고 슬픈 마음도 들었을 텐데 이제 나에게는 웃으며 대답하는 여유가 생겼다. "제가 남편이 없어서요~ 하하!"
4단계 - 안녕하세요, 돌트리플이에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가볍게 내보일 수 있는 이혼녀, 싱글맘이라는 타이틀. 아직은 나에게 오지 않은 단계이다. 유명인들은 이혼하자마자 단번에 모든 사람들이 본인들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되는 4단계에 놓인다고 생각하니 내가 다 아찔한 기분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1단계에서 4단계까지 차례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나보다 대담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은 1, 2단계쯤 쉽게 점프해서 넘어갈 수 있다. 같은 경험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반응은 다르고, 다를 뿐이지 무엇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내가 2단계와 3단계 사이 어디쯤 있었을 때였다. 내 오랜 친구지만 해외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고, 연락도 잘 못하는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아 나의 이혼사실을 털어놓았고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괜찮지? 괜찮지 뭐." 그 순간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괜찮아?"라는 반응만 들었을 때는 내가 정말 괜찮은가? 돌아봤는데 "괜찮지?"라는 말을 듣으니 내가 괜찮구나 싶어 지는 거였다.
이상하게도 친구의 그 말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1단계쯤에 그 말을 들었으면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말 괜찮았다. 그래 나는 괜찮다! 그러니까 당신도 괜찮을 것이다. 4단계로 가보자. 아니, 꼭 4단계 까지 가지 못해도 좋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이혼을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