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한 직장에서 14년간 근무하다 보니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을 안고 직장을 떠나는 것을 여러 번 봐왔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해 이직하는 경우, 아이를 낳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경우, 정년퇴직을 하는 경우,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그만두는 경우 등등. 정년퇴직을 제외하고는 어찌 됐든 본인의 의지로 일을 그만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버린 돌트리플의 수장인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랄까. 한 집의 가장이 된 것이 자의였냐 타의였냐는 중요하지 않다. 결론은 내가 우리 가정의 가장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육아휴직 쓰고 좀 쉬어~"라고 말했다. 그럼 돈은 누가 벌어? 내가 우리 집 가장인데?
돌트리플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매달 일정한 수입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은 전남편이 아이들 양육비를 매달 꼬박꼬박 송금해 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 월급에 양육비를 더해도 주머니 사정은 빠듯한 것이 현실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일하는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내야 하고 세 군데만 보내도 학원비 5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금수저도 아니고, 세를 받는 건물주도 아니고, 배당소득세를 낼 만큼의 주식부자도 아니고, 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니다. 노동으로 매달 수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일개미.
그래서 나에게 매달 일정한 수입을 제공하는 '직장'이라는 것은 더 크고 중요한 의미로 와닿았다.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월급이 적은 지금의 직장보다 더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서 한동안 취업 사이트를 많이도 들락거렸다. 그런데 1년여를 노력했지만 단 한건의 서류도 통과되지 않았다. 내 경력이 소위 말하는 '물경력' 인가? 이직을 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은가? 혹은 내가 넘보지 못할 만한 대단한 곳의 문만 두드린 건 아닐까? 하며 높기만 한 이직의 문턱 앞에서 지나온 세월과 나의 처지를 곱씹기 일쑤였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니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차의 사용이 자유로운 분위기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직장이 나쁜 조건이 아니라고 마음을 바꿔 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수입을 늘릴 수 있는 추가적인 파이프라인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주식 등의 재테크, 경제분야에 관심이 생겼고 40대에 접어들면서는 연금과 같은 노후준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나의 수입이 줄어도 불안감이 적은 맞벌이를 하다가 외벌이로 바뀌면서 오히려 경제관념이 달라진 것이다. 이것을 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은 규칙적으로 주어지는 먹이에 적응해 야생에서의 사냥에 대한 필요성을 잊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부동산
남편이 친 돈 사고로 협의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모두 퉁 쳐서 담보대출이 남은 지방의 구축 복도식 24평 아파트를 넘겨받기로 했다. 아이들 키울 곳은 있어야 하니 위자료도 필요 없고 재산이라고는 이 아파트 밖에 없으니 아파트와 남은 담보 대출을 넘겨달라고 했다. 그 당시 집값이 똥값이었을 때라 그런지, 혹은 아이들을 위해서였는지, 순순히 전 남편은 나의 요구에 응했다.
이혼 후, 신혼의 추억이 깆든,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이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혼 후 한 해가 채 지나기 전에 때마침 내가 사는 지역에 잠깐의 부동산 호황기가 찾아왔고 때를 잘 타 적당한 가격으로 매도 후 신축 34평형 아파트로 갈아타기 했다. 이후 부동산에 관심을 조금씩 갖고 내가 사는 지역의 부동산 매매 시세와 분위기를 파악해 나갔다. 이사 후 3년쯤 지났을 때, 같은 아파트 24평형을 갭 천만 원에 전세 끼고 매매했다. 2 주택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을 했는데 유주택자도 선착순으로 계약이 가능했다. 지금 살고 있는 34평 아파트를 월세 주고 공공임대주택에 월세로 가면 월 30~40만 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평수는 24평으로 줄어들지만 최장 10년 동안 신축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메리트는 덤이다. 과감하게 계약금을 쏘고 부동산에 연락해 세입자를 구했다.
SNS - 인스타, 블로그
이혼 후 동네 엄마가 나에게 인스타그램을 해볼 것을 권했다.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아이들 육아 기록도 할 겸 한번 시작해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는데 그곳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다양한 체험단 모집은 무료로 물건을 사용해 보고 후기를 올리면 되는 거였다. 샴푸 세제 치약 식료품 화장품 등의 체험단을 신청해서 선정되면 제품을 사용해 보고 사진을 이쁘게 찍고 설명을 추가해서 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면 된다. 공짜로 살림살이를 마련하니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열심히 인스타 체험단을 했다.
그러다가 체험단은 인스타그램 보다 블로그가 더 다양하고 광고를 통한 수익화까지 가능하다는 정보를 접하고 블로그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맛집 위주로 체험단을 많이 했고 1년에 외식비를 500~800만 원 정도 아낄 수 있었다. 키즈풀빌라 체험단에 당첨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에드포스트로는 소소하게 1달에 3만 원 정도 수익을 얻고 있다.
연금 3종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노후준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후를 위해서 연금 3종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저축보험 세 가지가 그것이다. 국민연금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립금이 제법 쌓였고, 나의 퇴직연금은 다행히 DC형(확정기여형)이라 포트폴리오를 더 적극적으로 고위험 자산에도 분산투자 하기 시작했다. 연금저축보험에도 소액이지만 매달 꾸준하게 적립금을 넣어 적립액이 제법 많아졌다.
다행인 것은 정년퇴직까지 아직 20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는 점이다. 시간은 연금 3종의 원금을 늘려줄 것이고, 복리로 이자를 불려줄 것이다.
때로는 한부모 가정인 데다가 수입도 적은데 재산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억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나를 더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벌고, 아끼고, 모으고, 불린 돈으로 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아낌없이 지원해 줄 수 있는 멋진 엄마가 되는 것. 그것이 싱글맘인 나의 새로운 꿈이자 청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