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잘 모르겠다
전남편은 착한 사람이다. 처음 만났던 날, 새우 껍질을 까서 내 앞접시에 놓아주었던 사람이다. 연애하면서도 싸운 적이 없었다. 식당에 가면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두 개 주문하라고 했고, 첫 입과 마지막 입은 항상 나에게 양보하는 사람이었다. 순하고 화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 내 전남편이다. 불 같은 성미에 술 때문에 평생 엄마를 속 썩인 아빠와는 정 반대의 사람이다. 그래서 술도 잘 못하고 화가 없고 다정한 그 사람과 결혼했다. 결혼하고는 음식물 쓰레기를 한 번도 내 손으로 버려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성질 급하고 짜증이 많은 나와는 다르게 느긋하고 화가 없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이 항상 나인 것이 불만인 적도 있었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항상 내 편이라는 느낌이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10년 만에 깨졌다. 그는 나 몰래 대출을 받아 투자에 실패했고, 이혼을 요구해 왔다. 뒤통수가 얼얼하게 아파왔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혹독한 현실 앞에 무의미했고 슬픔이라는 감정은 무거운 책임감 아래 짓눌려 새어 나올 기회조차 잃었다.
이혼 후 4년 반이 지났다. 그새 1살, 4살이던 아이들은 6살 9살이 되었다. 30대 중반이던 내 나이는 40대에 접어들었다. 집 회사 육아 사이를 쳇바퀴 돌듯 반복하면서 틈틈이 숨 쉴 구멍은 최소한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가졌다.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매달 마지막주 주말에 아이들은 아빠와 1박 2일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아이들 양육비를 매달 빠짐없이 송금한다. 그래, 이 정도면 그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싶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용서해야 하는가? 반드시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가? 용서와 용서하지 않음의 두 가지 선택지 중에 딱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가? 아직은 모르겠다.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지도,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그가 용서받을 짓을 했는지도, 내가 용서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상태다. 아직은 내 마음이 나아지고 있는 단계인 것 같다. 아직은 그를 웃으면서 대할 자신이 없다.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내 마음을 내버려 두려고 한다. 언젠가는 정리되겠지 하는 중이다. 때로는 내 마음이지만 나도 잘 모르는 그럴 때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