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리뷰와 후기
간밤 비바람에 축사에서 키우던 닭 여러 마리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중닭 몇 마리를 저녁 식사용으로 잡아 온 아버지는 놀러 온 사촌 오빠에게 닭을 맡겼다. 오빠는 잔뜩 겁에 질려 아버지가 안겨준 닭을 간신히 붙들고 서 있었다. 닭 꼭 붙들고 있으라는 주문과 함께 아버지는 우물 바닥에 앉아 주방에서 가져온 식도를 숫돌에 갈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눈치가 빤한 닭들은 몸을 비틀어 오빠의 작은 가슴에서 벗어나 버렸고, 온 가족이 한차례 닭 잡으러 다니는 소동을 벌이고 나서야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꼭 감았고 진심으로 닭들이 안전하게 도망쳐 버리기를 기도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평상시라면 말 없고 무뚝뚝했을 아버지는 오늘따라 목소리의 톤이 높고 빨라졌다. 조급해 보이는 그에게는 자기 자신의 확신과 남들의 인정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파이팅을 외쳐주지는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닭의 큰 울음소리는 제 운명에 대한 체감 탓인지 조금 누그러졌다.
아버지는 철저한 도시 남자로 살아온 탓에 시골도, 양계도 처음인지라 닭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닭들이 또 한차례 날개를 푸드덕대며 탈출을 시도하자, 잘 벼린 식칼을 잡은 아버지는 서둘러 닭 모가지를 정조준하였다. 일순간 현실은 잠시 정지했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호흡을 삼켰다. 두려움 반에 조급함이 더한 칼날이 생각만큼 닭 모가지를 깊숙이 찌르지는 못한 듯, 닭은 '꽥' 하는 큰 울부짖음과 함께 날개를 푸드덕대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중부양을 하였다. 비바람 속, 긴 밤을 간신히 버티고 살아남았는데, 이제는 도축될 상황에 놓인 닭들은 나름대로 환장할 지경일 것이다. 결국, 놀란 닭들은 약 10여 분가량 우물가와 마당을 종횡무진하거나 저 멀리 딸기밭 사이로 숨어 들어갔다. 아버지의 잘 벼린 칼날은 말씀과 달리 무디기 짝이 없어 가여운 닭들을 수차례 내리쳐야 했다. 끔찍했다. 나는 맘속으로 닭이 멀리 달아나 버리기를 기도했고, 그게 안 되면 쉽고 빠르게 '꽥' 하고 죽어버렸으면 했다. 결국, 이도 저도 못 하고 달아나는 닭들을 바가지로 눌러 잡기를 수차례나 거듭한 뒤, 닭은 끝내 사망하였다. 사촌 오빠와 나만이 아는 '엽기시리즈'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날 우리는 닭볶음탕으로 올라온 닭을 외면하였고, 말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잘 아는 아버지는 몇 번 닭을 권하다가 종국에는 본인도 몇 술 안 뜨고 일어나 나가버리셨다. 생명을 다루는 아버지의 인간적 두려움과 미숙함에 분노와 연민을 동시에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나는 그날 이후로 어설픈 채식주의자 시전을 했고, 동물권과 도축 방식, 소비주체로서의 책임감을 오랜 시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앤드루스는 입에 고인 걸쭉한 침을 삼켰다. 두껍고 미끈거리는 내장을 따라 사체의 구멍 안쪽으로 왼손을 밀어 넣었다.
축축하고 뜨뜻한 몸 안으로 팔뚝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왼손이 내장 끝에 닿자 오른손에 칼을 위쪽으로 들고 그 옆으로 뻗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잘라냈다. 소화관이 질겨서 작업이 힘들었다. 들소가 반쯤 소화한 먹이의 썩은 냄새가 밀려 나왔다. 숨을 참고 칼을 더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관이 잘리고 내장이 몸 아래쪽에 모여 흘러나왔다. 다른 부속 기관을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내장들을 두 팔로 퍼냈다. 필사적으로 퍼내며 자르고 찢어 냈다. 마침내 발밑에 거대한 내장 무더기가 펼쳐졌다. 앤드루스는 물러섰다. 얼굴은 창백했고, 벌린 입으로 가쁘게 숨을 쉬었다. 뻗은 팔과 손은 피에 젖은 채 떨렸다.
여전히 바위 굴뚝에 몸을 기대고 있던 밀러가 슈나이더에게 소리쳤다.
"간 좀 가져와, 프레드." 슈나이더는 고개를 끄덕이고 흔들리는 사체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한 손으로는 사체를 고정하고, 열림 구멍 안쪽으로 다른 손을 뻗었다. 팔을 홱 움직였다. 갈색과 보라색의 커다란 살덩이를 든 손이 빠져나왔다. 칼을 빠르게 몇 번 휘둘러 두 조각으로 잘라 큰 부분을 밀러에게 가볍게 던졌다. 밀러는 두 손을 국자 모양으로 만들어 간을 받아, 손에게 빠져나가지 않게 가슴께로 꽉 잡았다. 입가로 들어 올려 한입 크게 씹었다. 고기에서 검은 피가 흘러 턱 양쪽으로 내려와 땅 위에 떨어졌다. 슈나이더는 히죽 웃고 자기 몫을 씹었다. 미소 지은 채 천천히 씹는 그의 입술은 고기 때문에 짙은 빨간색이었다. 그가 간을 앤드루스에게 내밀었다.
"한 입 먹겠나?' 그가 묻고 웃었다.
앤드루스는 목구멍에서 쓴맛을 느꼈다.
(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 구픽, 2023)
존 윌리엄스의『스토너』를 먼저 읽어본 독자에게 『부처스 크로싱』은 다소 낯선 작품이 될 것이다. 『스토너』는 아주 개인적인 한 인간의 성장과 사랑, 불행, 잊혀간 죽음을 담담히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그것이 불운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감당하였고, 진지하게 인내하면 살아내었다. 자기 삶에 대한 존엄성을 잃지 않았기에 평범하였으나 인간으로서 실패하지 않은 삶이라는 교훈마저 주었다. 이런 개인적이고 정적인 작품을 대한 뒤, 본격적인 서부 이야기, 그중에서도 들소 사냥(아니 학살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하다.)이라는 거칠고 불편한 주제를 다룬 소설이 그의 작품이 맞나 조금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긴 호흡과 함께 약간의 어리둥절한 시간을 도모해 본다면 두 개의 이야기가 서사와 주제가 다를 뿐 존 윌리엄스라는 소설가의 정체성 속에서 빠져나온 두 개의 카테고리임을 인지하게 된다. 또 두 작품을 쓴 바탕에는 따뜻한 의도가 있었고, 그 의도대로 선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 없다.
스토너가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였다면 부처스 크로싱은 자연에 대한 거대한 욕망과 정복 의지가 불러온 자연 파괴의 과정을 고발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인간들은 문명의 발견과 개발, 인류적 진보라는 허울 좋은 미명을 뒤집어쓰고, 실제로는 자연을 생산수단으로만 치부하였고, 사력을 다해 파괴하였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단한 자부심을 품었으나, 그 결과는 인간이 바라던 수준이나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데 대한 응징은 사나웠다.
아메리카 대륙의 들소 떼는 인디언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방편이었고,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기에도 충분한 개체수를 갖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들소를 식량으로 사용하는 한편, 몽둥이나 바늘, 활과 화살촉, 장신구와 목걸이, 장난감, 빗 등 생활에 편리한 모든 도구들을 들소뼈로 직접 제작하였다. 들소 뼈는 후일 농부들이 비료로 사용할 만큼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서부 개척 시기 인디언 말살을 목적으로 들소 사냥은 필요이상 횡행하였고 수많은 들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게다가 유럽에서 들소 가죽이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킨 것도 무분별하고 거침없는 들소 사냥 붐을 일으키는데 크게 한몫하였다. 들소 사냥 초창기 사냥꾼들은 1,000~1,500마리씩 사냥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들소 사냥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아메리카 들소는 씨가 말라 겨우 2~3천 마리의 개체만이 남게 되었다.
들소 떼의 개체수가 거의 멸종에 이르기 직전, 주인공 윌리엄 앤드루스는 하버드를 떠나 부처스 크로싱에 당도한다. 그에게는 도시 문명을 벗어나 자연과 직접 맞닥뜨리고 싶다는 청년적 갈망이 들끓었다. 즉시 최고의 들소 사냥 전문가인 밀러를 만났고, 자신만이 아는 곳에 최소 3,000마리 이상의 들소 떼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는 준비한 자금으로 장비를 마련하고 최소의 사냥꾼들과 들소 사냥을 떠나게 된다. 앤드루스가 사냥균 밀러를 만난 것은 불운이었다. 밀려는 들소를 자연의 생산수단으로만 보았고 앤드루스나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자연 자체에 대한 존경이나 갈망은 하나도 없는 인간으로, 들소사냥에 지나치게 탐닉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의 들소까지 사력을 다해 죽이는 것과 가죽을 되도록 많이 얻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가 물소 가죽을 얻는 방식은 정상적인 사냥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인 도륙이었고, 가죽을 벗기는 프레드 역시 노련된 솜씨로 삽시간에 몇천 마리의 소를 해체하고 가죽을 벗겨나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물소 떼의 숫자만큼 공장식 작업은 몇 날 며칠 이어졌다. 모든 과정은 전문적이고 용의주도해서 불필요한 행위, 감정 소모는 배제되었고, 초반 이 두 가지에 불편함과 혐오 어린 시선을 가졌던 에드워드 역시 동화되어 갔다. 밀러처럼 감정 없이 총을 쏘고, 프레드처럼 솜씨 좋게 소가죽을 벗기고, 들소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믿음을 나눠 가지며 들소 간을 삼키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그는 자신을 잃어갔다. 앤드루스가 알고자 했던 자연은 '더 순수한 공간’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이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을까? 끝없는 욕심으로 들소 떼를 도륙하던 이들은 피의 전투를 적정선에서 끝내지 못했고, 그 결과 순식간에 시작된 겨울 폭설에 발이 묶인다. 이 과정에서 앤드루스는 그가 진정으로 알고 싶던 자연과 어느 정도 동화되는 순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이들은 1,500장의 가죽만 챙겨 돌아가게 된다. 나머지 수천 장은 후일을 기약하며 남겨둔 것이다. 귀환길에서 프레드의 죽음과 온갖 고생을 감내하며 돌아온 부처스 크로싱에서 그들을 맞은 것은 폭락된 가죽시장이었다. 유행이 지난 가죽은 헐값에도 처분하기 힘들었고, 철도는 도시를 우회하였으며, 버렸던 들소 고기가 철도회사에 팔릴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이었으나 산속에 갇혀 있었던 그들은 이런 시장의 변화들을 알아챌 길이 없었다. 결국, 자연을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만 이용한 뒤, 인간이 겪게 되는 응당한 결말은 차갑고도 허무했다.
이 소설의 서사가 된 들소 대량 학살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열병처럼 벌어졌던 사건중 하나일 뿐이다. 미정부의 인디언 말살 정책과 서부 개척, 철도건설, 상업적 가죽 채취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면면은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대자연의 시간을 거스른다.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입고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했던 인간의 잘못된 자연 이데올로기는 자연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까지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역사가 증언하듯이 수많은 사례가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과 정복의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누가 막아도, 어떠한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인간은 계속할 것이다. 언제까지? 돈이 된다면 언제 까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