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진짜와 가짜 사이?

성해나 『혼모노』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냠냠 쩝쩝 후루룩~

이 부장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뚝배기에 코를 박은 채 해장국을 먹고 있다. 후추와 들깻가루를 듬뿍 넣은 후 밥을 말고 깍두기와 김치를 번갈아 얹어 먹는 성실한 동작을 반복한다.


냠냠 쩝쩝 후루룩~

그답다. 기대한 대로 일말의 동요나 흔들림이 없었고, 주변 사람들만 심하게 어색했고, 동요하였다. 잠시 뒤, 미닫이문이 열렸고 인사과 부장과 정 상무가 방안에 들어섰다. 비스듬히 기울인 뚝배기 해장국의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알뜰히 비워낸 뒤 일어서는 이 부장. 정 상무는 일순 당황한 듯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그를 바라보았다. 안경 속 눈빛이 차갑게 한번 빛났고, 입술은 일자로 다물어졌다. 본의 아니게 출입구를 막아선 정 상무. 키 작은 이 부장의 머리가 정 상무의 턱에 닿을 만큼 그는 바짝 다가섰다. 일순간의 정지가 꽤 길게 느껴질 만큼 불온한 공기가 방안을 맴돌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순간 이 부장은 정 상무의 고급 슈트 상의에 꽂힌 행커치프를 한번 주시하고는 씩 웃는다. 행커치프에서 한번 머물렀던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정 상무의 얼굴에 가닿는다.


그러고는 방금 먹은 선지해장국 냄새를 풀풀 날리며, "끄윽~~ 자~~ 알 먹었다." 하였다.

압도적이다. 왠지 이 순간만큼은 그가 정 상무보다 높고 큰 사람으로 보인다. 방안에 감돌던 수십 겹의 팽팽한 긴장과 침묵은 그의 넉살 좋은 마지막 한마디에 갈렸다.


'아~이 부장님. 어쩌자고?' 나는 마음속으로 순간적인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눈을 내리깔고 조금쯤 미소 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롸잇 나우, 지금 당장은 이 부장의 승리가 명백해 보인다. 이 장소, 이 시간만큼은. 하지만, 그 뒷감당도 온전히 이 부장의 몫이 될 것이다. 의외로 조금은 코믹한 결말에 사람들이 제각각 정신머리를 추스른다. 이 모든 것이 모두를 배려한 이 부장다운 해결책일지도. 그의 잘 벼린 칼끝은 사람을 찌르는 대신에 우리를 웃게 하였다.


정보검색사로 일하던 시기였다. 윗사람의 지시를 받고 온 직원들은 뭘 찾아야 하는지조차 막막해하였다. 한결같이 마음만 급할 뿐, 핵심에 집중하지 못하는지라 그들과는 늘 적당한 대화와 간 보기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오직 한 사람, 이 부장만은 자료를 대할 때 집중과 선택이 빨랐고, 서로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일 외에는 아니, 일할 때조차 그다지 말이 없어서, 곁을 잘 안 내주는 사람이구나 싶었고, 처음 얼마간은 불편하였으나, 몇 년간 그렇게 지내다 보니 말없이도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금요일 저녁이면 동물의 왕국 같은 비디오를 빌려 가기도 하고, 주말 동안 시사잡지 몇 권을 빌려 가도 되겠는지 수줍게 묻고는 하였다. 잡지는 외부 반출이 안 되지만, 나는 분실되면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 함께 흔쾌히 빌려주고는 하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떠들썩한 술자리나 회식자리도 피하는 이 부장을 사람들은 은따하였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 몇몇 관리자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나 역시도 잘난척하는 몇몇 간부들보다 그가 유능하다고 속으로만 생각하였다.


요즘은 덜하지만, 그의 이런 면면은 동료나 윗사람들 눈에는 잘난척한다거나, 타협이 불가능해서 일하기 힘들다고 평가되었다. 결국 회사가 조금 힘들어지자 첫 번째 권고사직 대상자로 이 부장이 지목되었다. 당연히 그는 거부하였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권고가, 그다음에는 종용과 회유가 번갈아 사용되었고, 마지막에는 은따가 아닌 왕따시전이 벌어졌다. 그의 책상이 여기저기로 옮겨졌고, 창고에 보직이 마련되었다. 평생 서류 작업을 하던 그가 창고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주변의 동료들은 처음에는 안타깝게 생각했으나 그다음에는 불편해하였고, 그다음에는 그를 멀리하였다. 유능한 인재에서 퇴출 1호가 된 이후로 그가 밀려나고 무능해 보이기 시작하는 일련의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어서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결국 이기적인 나도 그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참, 어처구니없는 시절이었다.




역 근처 버거 전문점을 지나다 질겁한다. 앞집 신애기가 통유리로 된 창가 자리에 앉아 버거를 먹고 있다. 입가에 마요네즈를 잔뜩 묻힌 채 콜라를 마시는 그 애를 멀리서 훔쳐본다. 그 애는 양상추와 토마토는 모조리 빼둔 채 패티가 여러 장 들어 있는 버거를 게걸스레 씹고 있다.

할멈이 저런 음식을 먹는다고?

기가 차다 못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목구멍이 청와대라 밥은 꼭 고두밥으로, 찬은 고춧가루가 섞이지 않은 담백한 것으로, 보양식이라도 비리고 누런 것은 질색하던 그 까다로운 늙은이가 버거를 먹는다고?

신애기가 버거 하나를 모조리 먹고 너겟을 소스에 야무지게 찍어 먹는 것까지 넋 놓고 지켜본다. 손 없는 날도 아닌데 어쩌려고 저럴까. 할멈을 몸주로 모실 때 하는 육고기는 일절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뿐인가. 살이 낀다는 이유로 애욕도 자제하고, 술 담배도 금하고, 어머니 염하는 것조차 보지 못했는데.

(성해나, 『혼모노』, 창비, 2024)




30년 박수로 살아온 주인공에게 신애기의 사소한 일탈은 전혀 귀엽지가 않았던가 보다. 햄버거 하나 먹는 사소한 행위건만 그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한 듯 혀를 찼다. 왜 안 그렇겠는가? 신내림을 받고 할멈 신을 몸주로 모신 이후로는 입은 청와대요, 취향은 공주 과인 까탈스러운 할멈을 알뜰살뜰 챙겼고, 혹시라도 비위를 거스를까 봐 전전긍긍, 조심하며 살아왔다. 평생 살(煞)이 낄 만한 언행을 삼가고 음식도 철저히 가렸으며, 남자로서의 애욕도 버리고, 마지막 가는 부모의 염도 못하였으니 그 쌓인 한이 업보가 될 지경이리라.


객관적으로 보자면, 허락되지 않는 음식을 먹거나 일탈을 벌이는 짓이야 자기가 책임지고 말 것이라 문수가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이 보고 말면 그뿐이다. 하지만, 신애기는 난데없이 문수 목전에 버젓이 터를 잡고 들어와 할멈 신이 자신을 점지하였다 선언하였다. 그리고 종종 할멈 신에 빙의되어 아비뻘인 문수에게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라 극악을 떨었다. 이런 상황에 문수가 신애기를 미워한들 못났다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수에게는 신애기의 거친 언행이나 일탈의 속내가 자꾸만 눈에 밟히고, 읽힌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측은지심이 드는 마음이 반, 괘씸한 맘도 반이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싹트는 것은 자신 역시도 20대 초반에 신내림을 받았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그 역시도 세습무가 아닌 강신무로 무병을 앓고 무당이 되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케이스인 것이다.


문수는 신애기가 속세의 즐거움을 버리지 못해 숨어서 흘깃대는 심정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살아왔지만, 신애기를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기억난 것이다. 신내림을 받은 박수로서의 문수가 들어오면서 그 이전의 사내아이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문수는 여전히 50대 문수와 함께 살아간다. 무병을 앓아 아이가 무당이 되면 처음에는 안타까워하던 부모들은 하나같이 순식간에 지독한 앵벌이꾼이 되어 돈벌이에 열중한다. 20대 초반의 신애기가 우악스럽게 햄버거를 먹어 치우고,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가득한 카페에서 즐거움과 위안을 받는 모습에서 한 번밖에 못 살고 마는 인생에 대한 소회랄까 한탄이 다시 소환되는 씁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씁쓸함은 버르장머리 없는 신애기를 향한 연민이 된다.


문수는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신발이 떨어지고 밀려나는 처지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문제는 이 풋내 나는 신애기가 자신의 밥줄을 잘라 버리는 데는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쾌지나칭칭 신이 잘 돌고, 사람들을 도울 때야 박수진에 미치게 몰입하여도 힘든 줄을 몰랐으나 신발이 떨어지고 나니 매사에 무기력해지며 자신을 잃어간다. 영겁, 억겁은 아니라도 이렇듯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발길을 뚝 끊어버릴 만큼 무엇을 잘못했을까 억울하기만 하다. 문수는 결국 더 이상은 신을 영접하지 못하고, 용을 써봐도 신들이 죄다 떠나버린 빈집 같은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 보루였던 황보의 굿판마저 신애기에게 빼앗겨버리는 수모를 당한 문수. 결국 10년 지기였던 황보마저 알게 된 것이다. 그가 입맛을 잃어버린 장금이처럼 이제는 더 이상 혼모노로서의 신빨을 상실했음을. 평범한 남자로 돌아가기도 힘들고, 박수일을 지속한다 해도 니세모노(선무당)일터, 문수는 무당으로서의 마지막 승부수를 걸게 된다. 그는 이때만 해도 잘 알지 못하였다. 이 굿판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를. 이 마지막 혼신의 굿판을 통해 그는 인간으로서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의도와는 다르게 박수로서의 마지막 승부를 건 것이 아니라 그토록 다시 한번 살아보는 두 번째 인생을 여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접신이 안되는 그는 비록 남들이 볼 때는 안팎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50대 퇴물 박수일 뿐이지만, 그는 인간으로서 그만큼 성장하는 기쁨을 맛본다. 세상 신명나는 굿판이 된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명확한 명제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대부분은 혼모노와 니세모노가 섞여서 서로가 진짜라고 우기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이 소설의 두 사람 역시나 혼모노의 위상을 두고 고진감래하는 듯 보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자면, 누가 진짜였던 적도, 가짜인 적도 없었다. 신애기가 할멈 신이 들어왔다고 해서 혼모노라거나 박수무당의 신발이 약해지고 할멈 신이 나가버렸다고 해서 혼모노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이 들어오기 이전의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신이 나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도 실격이란 것은 직업적으로도 잔인할 뿐만 아니라 가시적인 세계관으로 보인다. 직업적으로 보자면 혼모노에서 니세모노로 바뀌거나 반대가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런 결론의 돌출은 부당하고 옳지 않다.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문수는 분명 언제보다도 또렷하게 진짜로 돌아가는 명확한 혼모노로 보이고, 신의 기운이 가장 강한 시절을 지나는 중인 신애기는 반대로 어설픈 니세모노로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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