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왜 구질구질하게 살아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리부와 에피소드

by 서은

... 왜 구질구질하게 살아

동전을 세어 탑을 쌓았다. 오백 원, 백 원, 오십 원... 심지어 십 원짜리 몇 개까지 다 세어놓고 보니 5만 원이 조금 넘는다. 도로 무너 뜨린 뒤, 우편 창구가 셋, 은행 창구는 하나인 작은 우체국에 들고 갔다. 다행히 우편업무 보시는 분들이 대다수인 듯 은행창구 쪽 번호표를 뽑으니 바로 2번째였다. 동전을 입금할 수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계좌가 있으면 되지만, 동전 분류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그렇긴 하지. 그게 맞지.‘

창구에 놓인 받침대를 빌려온 나는 우체국 중앙 테이블에 서서 백 원짜리 10개, 오백 원짜리 10개 단위로 차분히 탑을 쌓기 시작했다. 한참을 주억거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혀있음을 보았다. '기다리면서 딱히 시선 둘 때가 없으니 동전 세는 거라도 보는 거겠지.' 나는 다시 동전 세기에 집중했다.


그때 중앙 테이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여자가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요즘도 동전 갖고 와서 입금하는 사람이 있나?"

"글쎄... 있잖아."

"사람들도 기다리고 복잡한데. 구질구질해! "


구질구질해하는 여자의 한마디가 내 귓가를 때렸다. 내 귓가만 때리면 괜찮은데,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 귓가도 때린 모양이다. 제 딴에는 작게 말한듯한데… 원래 자기 험담하는 말에는 귀 평수가 곱절로 늘어나는 법이다. 이 여자는 인생에서 입을 딱 다물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오히려 한마디를 보태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괜찮으세요?' 걱정스럽게 묻고 싶은 것을 참았다. 공현진의 소설『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중 눈치 없는 주호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상대에게 물어본 대사이다. 주호는 진심으로 상대를 염려한 것이지만, 눈치도 있고 악당인 나는 '왜 그런 말을 해?'라는 반어법의 의미로 되묻고 싶었던 것이다.


'뭐가 구질구질하다는 거지? 동전 가져와 세는 거? 아니면 자신의 대기 시간이 늘어나는 거?' 그제야 나는 운동복 바지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 차림으로 동전씩이나 세고 서있는 내 모양새와 처신이 세트로 구질구질해 보였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앞 순번 사람이 은행창구에서 일을 보는 동안, 동전을 센 것이다. 시간을 절약하고자 정확히 10개 단위로 쌓아놓은 동전은 바로 입금하면 그들의 평균 은행 업무 시간보다 빠를 것이며, 실제로 내가 소요한 시간은 앞사람보다 훨씬 짧았다. 내 순번이 되었다. 동전을 받아 든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잠시 보이더니, 10개씩 쌓아놓은 동전 탑을 순식간에 허물어 금액별로만 쓸어 담았다. 그러고는 무게를 재는지 어떤지 동전계수기에 넣으니 바로 금액이 계산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 공든 탑이 다시 한번 와르르 무너지는 일을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또 한 번 겪는다. '아하, 분류해와야 한다는 게 그냥 동전 금액별로만 분류하라는 거였구나.'

은행에서 동전을 세어 입금하는 건 조금도 구차한 일이 아니다. 구질구질하게 여긴 여자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그런 일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 것이고, 나 또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상 그녀가 구질구질하게 여긴 '동전 세는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동전은 좀 안 만들고 싶다. 하지만, 현금을 사용해 물건을 구매하거나 지불하면 어쩔 수 없이 동전은 생긴다. 나는 재래시장에서 장 보는 걸 좋아하고, 아직까지도 작고 열악한 노포에서 밥을 먹으면 현금을 내고 싶어 한다. 재래시장이라는 게 파래 세 개에 천 원을 받고 팔기도 하고, 야채 한 봉지에 천 원, 천오백 원 하는 것들도 많아서 무조건 10%씩이나 떼 가는 카드 부가세를 부담시키고 싶지는 않다. 되게 착한 척하고 싶어 하는 아줌마스러움이라 타박해도 별수 없다.

성악설을 믿는 내 입장에서는 이 세계는 이미 나를 포함해 악당이 한가득이니 나 같은 작은 악당도 착한 척을 하다 보면 조금쯤 착해지기도 하고, 그런 수가 늘어 모두 다 같이 착한 척이라도 하면 세상은 한결 살만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이없어 보여도, 누가 뭐래도, 이것은 나의 '주의' 중 하나이고 남이 보기에 구질구질하게 볼 수 있는 '주의' 몇 가지는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리라.



하루 중 희주가 가장 시간을 쏟는 일은 요리였다.

유튜브에서 채식 요리들을 찾아보고 영상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재료를 샀다.

저온 조리 레시피에 따라 당근, 우엉, 연근, 감자, 죽순 같은 야채를 네 시간 넘게 익히고,

콩을 삶고 껍질을 한 알 한 알 벗기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

그게 채식이야?

희주는 된장찌개에서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골라내고 있었다.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희주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희주가 평소처럼 고기를 골라 담은 접시를 남자친구 쪽으로 밀었는데 그는 평소와 달리 팔짱을 끼고 접시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질린다, 진짜.

갑자기 마음이 변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너는 정상이 아니야. 그는 식당에 희주를 두고 나가버렸다. 나도 안다고. 희주는 혼자 앉아서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소설보다 여름, 문지사, 2023)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높아지고,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도 멸망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예언과 유엔식량농업기구의 걱정 어린 발표 앞에 우리는 적잖이 당황하고 호들갑을 떨며 염려하였다. 하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만 같은 절망스러운 느낌은 다른 현실적인 염려 속에 뒤섞이며 빠르게 잊혀갔다.


사람들은 아무리 별거 아니라도 자신만의 삶에 대한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방식'이랄까 '루틴'이 있다. 희주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라거나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자신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운동과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누구보다 살고 싶다, 살아남고 싶다고 생각한 희주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꿀벌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인류의 건강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라는 생각에 뭐라도 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루틴으로 꿀벌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바쁜 직장인의 굴레에서 탈퇴해 슬로 라이프와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며 그런대로 자족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조금 이상한 취향일지는 모르나 일반인들이 삶에 휩쓸려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사는 데 반해, 그녀는 나름의 방식과 루틴을 매일매일 변함없이 실천하며 살아가는 의식 있는 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의는 변칙적이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공격받기 쉬운 연약한 맛이다.

그녀는 꿀벌 관련 스크랩을 하고 유튜브에서 건강한 요리 제조법을 뒤지고, 전수받은 필살기로 채소를 익히는데 장장 4시간을 할애한다. 건상식을 추구하는 슬로 푸드 마니아가 수영 후에는 떡볶이와 어묵, 튀김 등의 먼지가 들어가야 맛있다는 길거리 포장마차 음식을 루틴으로 즐긴다. 배우지 않아도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각종 취미반 수강신청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순된 태도의 희주.


게다가 그녀가 지향하는 채식 지향, 미니멀라이프의 삶은 수시로 삐걱거린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닌데, 남자친구는 그녀의 이중적인 채식주의를 경멸한다. 그 미완의 질척거림이 그에게는 역겹게 느껴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규칙이랄까, 주의는 있다. 그 방식을 유지해야만 그나마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도저도 아니라과 이중적이라 질타받기 쉬운 것이다. 연인사이라면 질타라는 무기는 '이해해 봄' 혹은 '이해해 보려 노력해 봄' 후에나 꺼내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입장을 바꿔 보면 누군가 매번 식사 때마다 이런 어정쩡한 채식주의 시전을 한다면 비록 질린다는 말은 못 내뱉지만, 밥맛은 좀 떨어질 것 같다. 공현진의 소설은 이렇듯 어느 한 사람을 '악당'으로 만들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저자의 '녹'이라는 소설 속에서도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가해자로 몰린 주인공조차 그녀의 입장이 되어보거나 제삼자로 바라본다면 상당한 피해자로 비친다.


이런 이해의 변곡선이 허물어질 때 희주는 이 이해의 변곡선을 그리지 않아도 좋을 주호를 만나게 된다. 주호는 현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이 필수로 갖춰야 할 '눈치'라는 무기는 없지만, 눈치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어느 공간, 시간 너머를 체득하고 이해하는 희귀종이다. 평상시는 미움 사기 딱 좋은 캐릭터지만, 진짜 깊은 사려가 필요한 순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게 그 이면을 탐색할 줄 안다.


눈치를 보거나 눈치 본다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주호는 사람의 목숨과 스피드를 바꾸는 세상에서 자신의 주소를 잃어버렸다. 돈에, 스피드에,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온갖 것들에 수많은 목숨이 대체되었지만, 제대로 된 애도조차 없이, 정작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잘 흘러가는 세상에 주호는 어리둥절하였고 침잠하였다. 해수면 상승으로 남태평양 섬나라 몇 개가 가라앉았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사라질 거라는 기사를 보고 주호도 생존 수단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고 자신을 편하게 대하는 희주는 만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눈으로 보자면 이들은 정상적인 인생 궤도에서 뒤처져 시간을 배회하는 이탈자 거나 대책 없이 오랫동안 가라앉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라앉아 물 위로 좀체 떠오르지 못하던 주호와 희주에게 수영 강사는 정상적인 진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주호는 분노를 조절 못하는 강사와 함께 악을 쓰고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주호는 그의 화가 자신들 때문만은 아님을 직감하고, 우리가 그를 악당으로 만들었다고 희주에게 말한다. 그가 공장에서 경험했듯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 사회시스템 아래서 수영강사 역시도 지독한 피해자 중 하나라고. 그의 발악은 뇌파를 쥐고 있는 저 위쪽 원격 조정자들을 이기지 못해 발작적으로 터진 것이라고 항변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지독하게 침잠할 때가 있다. 희주처럼 조용하게 침잠하는 이도 있고, 모나고 보기 싫게 침잠하는 수영강사도 있고 주호처럼 답답하게 침잠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 방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가라앉고 다시 떠오르기 위해 열심히 허우적대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 속을 회 뜨듯이 분석하는 사람들과 달리 주호의 따뜻하고 걱정 어린 물음은 시공간의 차원을 따뜻하게 변화시켰다. 희주가 물들었고, 시간의 차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물들었다. 또 한 번, 공현진의 소설 속에 진정한 악당은 없었다.



keyword
이전 07화『보험과 야쿠르트』 아줌마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