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나도

김윤담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야자 시간에 딱 한 번 도주를 했다. 섣부른 도망자 넷이 당직이었던 화학의 불시 검문에 걸렸다. 화학은 '전교에서 하나뿐인 특별반 애들도 야자를 다 하니'라며 이죽거렸다. 도망에 노련했던 몇몇 아이들은 친한 친구들에게 적당한 변명거리를 일러놨으나, 4명은 일탈의 기쁨에 들떠 변명할 친구들을 섭외해두지 못했다. 절대적인 프라이드를 침해받은 담임은 방과 후 옥상이 아닌 양호실로 아이들을 불렀다. 문을 잠갔고 무릎을 꿇린 채 아이들의 여린 허벅지 위로 길쭉하고 굵은 나무 몽둥이 타작이 시작되었다. 스커트를 입은 여자아이들이라 때려도 안 보이는 곳이 허벅지 위쪽이었으니 담임의 안목은 탁월했다. 몇 차례도 안되는 매 타작에 울음이 터져 나왔고, 허벅지 타작을 마친 담임은 점심시간 아이들을 호출했다.


점심시간 교무실은 맛있는 짜장면 냄새가 진동하였고, 담임선생은 화를 참지 못하는 중이었다. 빨간 루주를 칠한 입술은 꽉 다물었는데도 바르르 떨렸으며, 분노를 감추려 가늘게 뜬 눈과 대조가 되면서 서로 맥락이 닿지 않아 어린 나는 진심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교무실에 불려온 나는 솔직히 조금은 수치스러웠고,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넷 다 부모님 모셔와."

"네."

담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대답했다.

"너는?"

얼른 쉽게 묻어가지 못하는 나를 담임이 알아챘으나,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집에 걱정을 끼치기 싫었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그러겠다 말하고 면피는 할 수야 있겠으나, 부모님이 안 오시면 거짓말에 대한 추궁은 더 가혹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아마도 안 오실 것 같았다.

"너는?"

목소리가 작아진다. 입술을 깨물고 말을 하시다니. 엄청난 복화술이다.

"내 말 안 들려? 부모님 모셔오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뭐, 이런 일에 부모님씩이나', '뭐라고 대답하지' 고민을 마치기도 전에 담임의 손바닥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뺨따귀를 맞은 나는 이게 뭔지 깨닫기도 전에 시멘트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아담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우와, 정말 대단하다. 괴력과 같은 힘에 맞은 나는 놀람 반 수치스러움 반에 벌떡 일어섰다. 처음에는 귀싸대기를 맞은 뺨이 아팠고, 시간이 지날수록 창피함이 더 길게 내려앉았다. 짜장면을 먹던 교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우리를 바라보았고, 하나둘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았다.


부모나 돌보는 사람들로부터 가혹한 처사를 받으면 마음속에 멍울이 진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벌어진 '이 사고'를 가슴속에 품고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는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살아간다.

아니 여적도 기억하는 걸 보니 죽을 때까지 기억할 것만 같다.

담임선생은 그해 가을 아이를 임신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녀의 송별회 자리는 울음바다가 되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운동장을 걸어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다.

아마 웃었던가?



아버님은 말수가 적은 편이시지만 다정했다. 남편의 누나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누나 밥그릇 위에 김을 올려주는 모습을 봤을 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해져 감정을 추스르느라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무심하면서도 따뜻한 행동을 본 건 처음이라, 또 그걸 부럽게 바라보는 내가 혼자 가여워서 마음이 좀 힘들었다. 물론 시댁에 있는 게 내 집처럼 편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즐거웠다. 특히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모여 술 한 잔씩 걸치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낯설면서도 좋았다. 게다가 손맛 좋은 어머님의 제철 나물이며, 수육, 오이, 장아찌, 국까지 입맛에 너무 잘 맞아 전에 없던 집밥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도 이 가족의 진짜 일원이 되고 싶다.' 둘러앉은 식탁에 끼어 웃으면서도 그렇게 고아 같은 마음이 들었다.

(김윤담,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다람, 2024)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를 대한민국 K-딸의 한 사람으로서 꽤나 통쾌해하며 읽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한민국 절반의 엄마들은 현재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고 그 회환을 가장 가까이에서 제일 만만한 딸을 골라 한풀이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읽고 나자 답이 안 되어 반대로 죽도록 답답해졌다. 당연하다. 주인공도 엄마도 더 나이 들어보지 못하였으므로. 더 나이가 들고, 엄마가 거동을 못하게 되었을 때도 그녀가 지속적으로 엄마를 미워만 할 수 있을까? 그냥 요양원에 혼자 덩그러니 있을 엄마를 상상만 하고, 줄기차게 미워할 수 있을까? 그렇게나 심지가 굳다면, 자신의 삶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이 든 이후 K-딸과 K-엄마는 그렇게나 ‘쿨’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 그게 답답했다.


김윤남의 에세이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는 효도가 강요되는 대한민국에서 사랑받은 기억보다는 정서적 학대를 받은 딸의 기록이다. 그녀는 절실하게 살아남고 싶어 자신의 엄마와 절연하였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어야 이런 절박한 글이, 고발이 가능할까? 그녀의 글은 야속한 엄마에게 한풀이를 되돌려줄 수가 없어서 자기 나름의 방식인 글쓰기로 살풀이 굿을 춘 것같다. 그러면 시원해야 좋을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후련함도 미약해지고 또 다른 생각들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누군가 죽기 전에는, 아니 죽는다 해도 더 이상 상대방을 떠올리지 않을 수도 없고, 이 절연이 완전한 끝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마도 그녀 역시나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고약스러운 대접을 받으며 성장해서 딸을 위하는 방식을 모른다. 가끔씩 걱정하여도 표현에는 더 인색하였다. 인색에 인색을 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약하고 나쁜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 세대의 많은 부모님은 표현에 인색하다. 자신은 더 그렇게 무심하게 키워졌으므로.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는 충분히 식상한 이야기다. 우리는 식상한 주제를 끄집어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식상하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이 많이 되는 주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식상한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이고, 결국 가닿기 힘들어서 두려움 반 짜증 반 '식상한 것'으로 치부하게 된 것 아닐까? 세상에 솔직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는 이 식상한 주제를 제대로 화두로 떠오르게 했다.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더불어 용기 없는 딸들의 생각도 많아질 듯하다.

그녀를 나르시시스트라거나 기회주의자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미워함과 완벽한 절교'에 대한 결론은 있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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