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과 야쿠르트』 아줌마 안녕하신가요?

이유리『보험과 야쿠르트』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급한 외출 중이었다.

지하 1층에서 움직이던 엘리베이터가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다. 하강할 때는 층마다 멈춰 선다. 한층 당 2세대가 거주하기에 평상시 오래 걸리지 않는데, 바쁜 날은 꼭 이렇더라.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쉬어졌다. 문이 열리는 순간 표정을 밝게 지으려 애쓰며 눈을 들었다. 무거운 상자들 사이로 앞이 가로막혀 사람 얼굴이 안 보였다. 굳이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우리 집 아래층을 비롯해 거의 모든 층의 버튼이 눌러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자 높다랗게 쌓인 택배 상자 뒤쪽에서 체구가 갸름한 젊은 여자 하나가 나오더니 택배 상자를 해당 가구 앞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층마다 이 동작을 반복하는데 많이 해본 솜씨다. 개중에는 꽤 무거운 짐도 있어서 나는 자진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가벼운 택배일 때는 재빠르게 집 앞에 갖다 두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고, 무거운 상자일 때는 무언가를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끼워두고 나갔다. 1층까지 닿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내가 걸어가는 속도를 앞질러 택배차량의 뒷문 단속까지 마쳤고, 커다란 택배차에 올라타고는 아파트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20대 초반인 거 같은데, 젊은 아가씨가 치열하게 사는구나. 여자 택배기사의 노련한 솜씨를 지켜본 나의 짜증은 어느새 사라졌고, 당당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나는 요즘 엘리베이터 안에서 택배 아저씨가 아닌 택배 아가씨들을 자주 만난다.


횡단보도 부근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야쿠르트 배달 전동차인 코코를 만났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나는 야쿠르트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항상 재미있다고 생각한 코코 위에 이런, 야쿠르트 아줌마는 없었다. 늠름하게 코코를 운전하는 야쿠르트 아가씨였다. 앳된 얼굴을 한 그녀 역시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요즘은 아가씨들도 야쿠르트 아줌마를 하는구나.' 그녀의 유니폼 위에는 프레시 매니저라는 공식 명칭이 붙어있었다. 프레시 매니저라면 나이도, 성별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좋은 용어 같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쳐다보았나 보다. 그녀가 친절하게 빙긋 웃으며 내게 물었다. "뭐, 드려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 야쿠르트 주세요.” 나는 처치 곤란의 야쿠르트를 받아들었다.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동네마다 엔딩이 조금씩 다른 그 유명한 야쿠르트 송. 어쩌다 40이 되도록 변변한 직업 하나 못 구하고,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젊은이들의 직업은 더 이상 꿈의 실현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갈아 넣는 생존게임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젊음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진입장벽이 낮고 당장 돈을 만들 수 있는 일감을 선택한다. 주로 택배, 퀵서비스 같은 단순노동이나 카페와 편의점 등 단기 알바를 전전하며 생계유지에 집중해야만 간신히 먹고살 수 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은 지속된다.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이라도 겸하다 보면, 공부할 시간에 노동을 하면서 30, 40이 훌쩍 넘고, 결국은 보험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등 사회적으로 하대해서 부르는 직종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프레시 매니저라는 고상한 영어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낯설고 어려워서 그냥 그렇게 부르는 직종의 일들을 취향과 상관없이 감지덕지하게 된다.


하나만 해 하나만,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누구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데 또 누구는 나를 부러워하고, 이거 이거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진짜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사는지, 우리 혜원이가 어떻게 사는지는 알아요? ……그런 말들을, 불판 위에 삼겹살을 꾹꾹 눌러지지며 참았다. 말해보았자 이해받을 리 없었고 돌아올 대답 역시 이미 들은 것처럼 뻔했으니까. 네가 좋아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 좋을 대로 하고 살면서 왜 책임은 멀쩡히 사는 타인에게 돌리느냐고 하겠지. 그렇다면 이제 내 삶이 얼마나 멀쩡한지에 대해, 내 삶과 너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해 요구하지도 않은 증명을 열심히 해 보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그러나 증명한다고 알아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끄덕끄덕, 그래그래, 희주 씨도 힘들었겠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 나를 보는 팀원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겠지. 저 사람 레즈비언인가 그거래. 여자 애인이랑 산대. 웬일이냐. 다 늙어서 징그럽게.

그래서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공짜 삼겹살과 소주를 꾸역꾸역 배속에 채워 넣는 데 집중했다.

(이유리 『나의 레즈비언 친구에게』 「보험과 야쿠르트」, 큐큐, 2022년)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만났을 때 그의 성적 취향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주지는 않는다. 요즘 공부는 잘돼? 하는 일은 괜찮아? 여자친구와는 잘 지내? 따위의 평범한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단순하다. 가령 어떤 사람이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딱 한 번 시선이 꽂히고는 막연히 사회적 관심 자체를 차단해버린다. 그가,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과 삶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는지는 절대 관심 금지다.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생각 자체를 닫아버리고, 그냥 성소수자라는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도 우리 이웃으로 먹고살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생활인이라는 생각은 건너뛴다. 일반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열악하면 쉽게 고립되지만, 우리가 존재 인식의 문을 아예 닫아버린 이들은 더욱 쉽게, 자주 고립된다. 여기에는 무관심을 넘어서는, 대놓고 말할 수 없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편견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언론과 종교 등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조직들이 성소수자들을 이질화, 특정화 더 나아가 악마화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논리 속에 평범한 성소수자는 없다. 거기다 종종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영합한 진영논리 싸움에 성소수자를 담론 거리로 소모한다. 여기서 한 번 더 프레이밍이 씌워진다. 그리고 이 프레이밍은 대중화된다. 대중적 일반화는 이들의 삶의 질을 더욱 형편없게 낮춰 버린다. 한 국가의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누구나 갖는 권리 중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살아가게 된다. 이들도 생활인으로 일을 하고 세금도 내야 하지만, 취업과 주거, 의료, 복지의 사각지대로 몰리면서 이중삼중의 고통이 가중된다. 어차피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데 자기 정체성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커밍아웃을 한 결과는 생각보다 더 가혹하다. 취업에는 불이익이 생기고, 소속한 집단에서는 조롱과 무시, 괴롭힘이 이어진다. 동성의 커플은 법적 부부로 인정되지 않아 주거정책과 금융 지원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2024년 대법원은 동성 부부가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사례가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많은 동성 커플들이 더 많은 사회적 불이익과 차별 때문에 커밍아웃을 꺼린다. 결국 적절한 의료 치료를 못 받기도 하고 치료가 너무 늦어지기도 한다. 안타깝고 인간적으로도 가여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동성 커플의 커밍아웃은 가시밭길을 자초하는 일이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살기 힘든데 왜 성소수자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할까? 물론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시대라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은 역차별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생활권 등 복지정책이 시급한 것은 이들의 삶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법적, 정책적 선진화와 사회적 수용, 폭력과 혐오 범죄에 대한 안정성 확보는 그 나라 국민의 높은 의식수준을 입증하는 것이고 살기 좋은 나라의 지표가 된다. 실제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나라들의 전체적 복지수준이나 인권의식은 꽤 높은 편이다.


소설의 말미. 주인공은 야쿠르트 송을 부르다가 덜컥 불안해한다. 야쿠르트 없으면 요구르트를 달라는데, 그런데, 요구르트도 없으면 그땐 어떡하나? 야쿠르트도 요구르트도 그 비슷한 것도 없다면, 그땐 뭘 줘야 할지. 사회가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 이런 걱정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한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결국 그 사회구성원 전체를 대하는 수준을 보여준다. 약자에게 너그러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삶의 질도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keyword
이전 06화『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