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 모를 세계』... 멀어지는 중입니다.

이경란 『다정 모를 세계』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그들은 신혼 초 거실에서 TV와 소파를 일찌감치 치워버렸다 한다.

그 자리에는 직접 짠 심플하고 묵직한 책상과 편안해 보이는 의자, 오크 소재의 책장 두 개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놓여있었다. 연륜을 짐작게 하는 중후한 가죽소파와 대형 TV를 기대했던 나의 예상과는 참 많이 달랐다.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돋는 거실 의자에 앉아 책 한 권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간절해진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이런 편안함을 집에 들여오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내가 쉴 집조차 누군가에게 보일 것을 의식하거나 과시하려는 은연중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부부는 사람이 사물에게 노예처럼 끌려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단다. 가족들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지 않기를,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동시에 죽이지 않기를 원하였다. 바람대로 그들은 거실에서 함께 책을 읽었고 다정한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우리를 식탁으로 안내한 뒤, 그는 아내의 손을 붙잡고 들어와 의자를 빼주었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앉혔다. 그녀가 먹기 편하도록 수저와 국그릇을 단정히 앞에 놓아준다. 세심하고 능숙한 그 손길에 다정이 묻어난다. 옛날 남자의 꼰대 기질은 전혀 익히지 않은 듯 손님보다도 아내를 먼저 귀하게 챙기었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놓고 집밥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해했으나 아내가 좋아하는 출장요리사라며 맛은 괜찮을 거라 하였다. 손님들 입맛에 맞을 거라는 게 아니고, 아내가 좋아하는 출장뷔페라 맛있을 거라는 주장이 흥미로웠으나 설명대로 음식은 맛있었고 정성이 들어있었다. 그는 음식이 나오는 족족 기미 상궁인 양 간을 보았고, 맛있다 싶으면 개의치 않고 아내 입에 '그 맛있는걸' 직접 떠 넣어 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들은 이야기하였다.

"누가 알 알겠어. 회사에서 별반 말도 없으신 양반이 저리 잔망스러운 사랑꾼일줄 말이야. "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고 그저 생각에 잠겼다.

나의 부모들은 이렇듯 다정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다정한 세계가 낯설고 민망하였지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세계가 부럽고 좋아 보였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나는 노년기에 접어든 부장님의 싱싱한 사랑을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이 갔던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난 사실 조금 불편했어. 그래서 다정도 병인 양 하여라는 말이 생긴 건가 봐. ㅋㅋㅋ"

난 사실 불편했어라는 말은 그의 솔직한 심정이라 공감이 갔으나, 뒷말과 웃음소리에는 살짝 반감이 올라왔다. 나는 그저 부럽기만 하였다. 다정이 병이라면 나도 이병에 걸리고 싶다고 속으로만 생각하였다.




준우를 위한 김치찌개를 다정은 더 이상 끓이지 않는다. 이게 싫다면 직접 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정의 태도는 준우에게 전달되었고 준우는 돌냄비에 물과 매실청만을 넣어 끓인 김치찌개를 먹었다. 돌냄비의 가장자리에 붉은 물감의 농담이 만들어낸 실루엣처럼 찌개 국물이 말라붙어 있다. 보관에 실패하여 퇴색하고 우그러진 수묵화 같다. 먹고 남은 찌개에 김치를 보충하고, 물을 더 붓고 매실청을 더하고, 깨니 때마다 그런 식으로 다시 끓인 맛이다. 언젠가 다정은 준우의 찌개에 입을 댔다가 구역질을 했다. 세상의 맛 중에 불결한 맛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런 맛이 아닐까. 밥을 먹다 말고 화장실에 다녀온 다정이 말했다. 버리고 새로 끓이지. 준우가 말했다. 싫어. 장어 소스도 아니고……다정은 그렇게만 말하고 식탁에 다시 앉지 않았다.

(이경란, 『사막과 럭비』 다정 모를 세계, 강, 2024)



여자는 식탁에서 남자의 김치찌개를 타박함으로써 남자에 대한 감정을 중의적으로 표현한다.

"버리고 새로 끓이지."라는 말은 상대방의 건강이나 음식의 맛을 배려한 듯 보이지만, 굳이 첨부한 "장어 소스도 아니고."라는 말에는 '이런 불결한 음식을 먹는 너란 작자도 불결하지'라는 상대방을 향한 조롱과 적의가 들어있다. 가족여행을 간 일본에서 이들은 초등생 아들과 함께 맛있는 초밥을 먹었다. 장어초밥에 꽂힌 아들은 장어초밥만 잔뜩 먹었고, 요리사는 묵은 씨간장 소스로 만들었다고 자랑하였다. 매일 숟가락을 담갔던 남은 김치찌개를 씨간장 소스인 양 사용하고 여분의 물과 김치, 매실청을 첨가해 먹는 불결한 입맛을 은연중 타박한 것이다. 그것도 아들의 초등생 시절 함께 간 가족여행 시점을 재소환한 것은 그 진저리 쳐지는 음식보다 상대방을 참아온 세월이 얼마나 더 길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불결한 맛이란 남편의 김치찌개가 아닌 남편 그 자체인 것이다. 단순한 음식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남편의 전반적인 행동양식에 대한 불쾌감, 혐오로 읽힌다.


한때는 남편을 위한 찌개를 끓이면서 행복해하였다. 찌개가 식어버려 데우기를 수차례 번복하면서 남편을 기다렸으나 남자는 종종 냄비에 든 음식이 된장찌개인지 순두부인지 모른 채 수많은 날들을 허비했다. 다정의 마음도 그렇게 식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내버린 수많은 찌개는 그가 내버린 그녀와의 소중한 세월이었고, 관계였다. 김애란의 『다정 모를 세계』에서 남편은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로만 표현된다. 다정의 생각일 뿐이다. 그는 여자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원천 차단한다. 여자 역시 남자의 안부를 비롯해 불륜이나 어떤 일탈까지도 일체 궁금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식적인 안부를 묻는 척은 한다. 궁금하지도 않고 불쾌함까지 느끼면서도 참아내는 것은 이제는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는 체념 때문이다. 뭘 더 해볼 수도 없는데,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면 지옥이다. 미움에 더해진 절망감은 상상 이상 몸집을 불리게 된다.


삶에 큰 어려움이 없어도 무관심과 냉담함이 교차하는 분위기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람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그녀는 결국 사람과의 교류보다는 사물에 더 애착을 갖고 말이 없는 사물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이 집에서 그녀가 자신의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가사관리 하나가 전부인지라, 온 가구거리를 헤맨 끝에 가족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애착 소파를 들여놓는다. 애지중지하는 애착 소파에 어린 아들이 핫 초콜릿을 흘리자 아들보다 먼저 얼룩 자국이 더 크게 여자의 눈에 들어온다. 그녀와 남편의 반목과 불화는 아이에게도 같은 그녀의 무신경함을 애정 없음으로 해석한 아들은 이때부터 또 다른 남편이 되어 버린다. 무관심과 적대적인 관계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된 것이다. 가정이란 것이 1:1만의 관계가 아닌 것을 단조로운 삶에 묻힌 다정은 잊은 것 아닐까? 다정이 좀 바뀌어보면 어땠을까? 남편은 그래도 돌아오지 않았을까?


이 가정에서 두 사람이 부부이고,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은 오직 사물과 소리이다. 준우의 음악소리, 신문 부스럭대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소파 가죽에 맨살이 밀리는 소리, 쩝쩝 뭔가를 먹어대는 소리까지 다정이 지독하게 싫어하는 준우의 소음들. 다정은 그 소음들 속에서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가고, 영리하게 숨을 곳을 찾는다. 그 영리한 발견은 녹음기였다.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불쾌한 소음들이 녹음기라는 사물의 힘을 빌려 객관화되면서 다정에서 편안함을 주는 소리로 바뀌는 시점이다. 싫어하는 사람의 모든 소음을 미워하지만, 그 소음이 녹음 파일이 된 순간, 준우라는 존재는 다정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고, 위해를 가할 수 없는 대상이 된다. 남편이 직접 앞에서 숨 쉬는 존재가 아니어야만 견딜만하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다정은 준우를 미워함과 동시에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한다." 소설 난쏘공에서 경제적 가난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종종 회자되는 문구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빈곤은 물질적 빈곤만이 아니다. 감정적인 빈곤 역시 경제적 빈곤에 버금갈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다정이 이른 지점은 부부, 가족 간 대화의 단절과 소외,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불안 그리고 자멸하기 직전의 우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불행한 일들과 부딪치고 좌절하지만 미래가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다. 누군가와 하나의 가정을 만들었는데 일평생 불행하였다. 게다가 자신이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면 지옥보다 더한 곳을 본 셈이 된다. 이 정도면 일상의 평화롭고 안온한 지옥을 끝내는 마지막 용기를 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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