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향기로 먹는 봄나물 어수리입니다. 임금님도 사랑하시던 산채나물이죠. 나물무침이나 전, 비빔밥등에 넣어 먹습니다. 양평이나 수안보등에 가장 지천으로 자라는 산채나물입니다.
며칠 전만 해도 쌀쌀맞은 겨울 날씨가 늑장을 부리며 때늦은 눈보라를 흩뿌리더니만,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좋을 만큼 따뜻해졌다. 습관대로 눈이 얼어붙어 미끈거리는 건물 계단을 조심히 오르는데 말개진 시멘 바닥이 오랜만에 내 발길을 가볍게 밀어준다.
지난겨울 바로 이 계단에서 검은 나비 한 마리가 연약한 날개를 퍼뜩 대며 마지막 생명줄을 부여잡고 버둥대던 쓸쓸한 기억이 있어 봄날 같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물쇠를 잠그면서 오늘 아침 엄마에게 미안했구나 생각한다. 나는 외출할 때 엄마의 간단한 식사로 샌드위치나 김밥을 만들어두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안될 때는 주말에 만들어둔 약식이나 머핀 등 요기가 될만한 간식거리를 식탁 위에 올려두곤 한다.
며칠 새 간식들을 안 드시고 냉장고에 모으시기에 왜 안 드시냐 물었더니, 또 어디 갖다 준단다. 늘 시간이 부족했으나 없는 시간을 쪼개어 간식거리를 만들기에 번거롭고 서운했다. 히지만, 엄마는 잘 익은 연시를 까치 먹이로 남기는 감나무 주인처럼 혜자롭게 퍼 나르기 바쁘시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맘이 살짝 꼬였는지, 먹을 걸로 정치하냐고 한마디 보탰다.
엄마는 자신은 절대 정치 같은 걸 하는 게 아니며, 자신이 젤 연장자이니 잘 봐달라는 처세일 뿐이라 항변한다. 언제나처럼 다음에 새로 더 잘 만들어줄 터이니 그냥 드시라 하면 될 것을, 건물을 다 올라가 교실문을 열 때까지 내내 생각이 났다. 엄마, 그게 정치야! 하고 그렇게 배배 꼬아서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오늘은 주중 두 번 하는 영어 모임의 마지막 시간이다.
교실 밖을 나가면 아는 체도 말라던 콜드 한 선생은 하루하루 시간을 갖고 보니 정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츤데레였다. 낯가리느라 냉랭해진 교실 기운을 참지 못했고, 소소한 개인사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코앞이 휴전선이라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대남방송 소리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야기며, 찐 계란 두 개를 먹고 아내에게 핀잔 들어 억울하다는 말을 족히 세 번쯤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짠한 중년 아저씨. 그의 오늘의 화두는 Persimmon tree, 바로 감나무다. 감나무가 영어로 Persimmon tree인 것도 처음 알았던 터라 초반의 영문들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한번 한 이야기를 절대 한 번으로 끝내지 못하는 그의 습성에 따라 감나무는 수차례 반복 학습되었다.
감나무가 있는 가정에서는 잘 익은 감을 다 수확하고 난 뒤에 몇 개는 까치 먹이로 남겨둬야 한다고, 어린 시절 장대로 감을 딸 때부터 어머니가 알려주셨다고 한다. 까치를 반겼던 선조들 덕분에 농익은 감은 까치만이 아니라 각종 나그네 새들을 유혹했으니, 조상님들의 따뜻한 오지랖이 매번 귀하고 흐뭇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 많은 선생 역시나 감나무에서 이번 겨울에도 잘 익은 홍시를 따고 난 뒤 까치밥으로 몇 개 남겨 두었다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어서였을까? 까치밥 이야기를 끝낸 뒤 그는 작정한 듯 그의 가정사 중 가장 아픈 구석을 이야기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삶에 든든한 대들보였는데, 새아버지를 만나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새아버지는 가족이 모이는 밥상머리에서 매번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품을 물었고 조심스럽게 나온 반대 의사에는 무지하다며 하나하나 저격하듯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말다툼이 잦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가족들은 더 이상 밥상머리에 함께 모여 앉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을 하는 동안 그에게선 프랑스어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된 아멜 선생 같은 크고 깊은 슬픔이, 아니 속으로 재우고 삭히기를 반복한, 소리 없는 고통의 세월이 켜켜이 느껴졌다. 그는 이번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나가 반대편에 마주한 양부를 마주칠까 두려워했고, 어린 시절 감나무를 함께 따주던 다정한 어머니와의 밥상도 잃어버렸다.
가족공동체의 밥상은 구성원 스스로가 눈치껏 혹은 나보다 상대를 존중하여 즐겁게 먹도록 배려하는 자리이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어 관심과 사랑을 느끼게 해 주고, 기운을 복 돋워 줄 수만 있다면 주제는 중요치 않다. 오늘 혹은 그동안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연배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돌아가며 말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밥 한 끼지만, 나보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배려가 불문율처럼 확고하게 존재하는 장소이다.
한국인의 상당수가 정치 성향이 다르면 밥도 먹기 싫다고 한지 오래되었다. 더 나아가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 취향이 다른 타인과는 밥은커녕, 차 한잔하기도 싫으며 연애나 결혼 역시도 아예 배척해 버리는 중요한 척도가 되어 버렸다. 안 그래도 결혼 배우자의 조건이 차고 넘치는데 이제는 더 다양한 조건들이 보태어지는 중이다. 하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도 추수감사절에는 정치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하니, 이런 추세는 작금에 핫하게 유행하는 전 세계적 유행병이자 불치병이었던가?
정희는 남편, 딸과 함께 이스탄불의 디저트 가게에서 1백까지 디저트 중에서 색깔과 모양이 특이한 것 스무 가지를 골라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가장 덜 단것부터 점점 달달한 것으로, 부드러운 것부터 점점 딱딱한 것으로 하나씩 먹어치우는 상상을 해보았다.
엘리샤와의 미팅은 좋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친근해져서 헤어졌고 어색한 만큼 흥미로웠다.
정희는 엘리사가 'You'라고 부를 때 어떤 해방감이 찾아왔다.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돋고 몸이 가뿐해지는 기분이었다.
(조선희, 그리고 봄, 초판, 한겨레출판, 2023)
정희는 딸과 결혼할 엘리샤를 만날 때 예의와 배려를 온몸으로 표현했고, 그 결과 그녀와 소통할 수 있었고, 그녀가 꽤 근사한 사람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녀가 말한 대로 쉽지 않은 문제지만, 상대를 바꾸고 고쳐야겠다고 하는 생각을 출발선부터 내려놓은 결과였다. 우리는 종종 가깝다는 이유로, 혹은 그래도 만만한 게 가족이라, 남들에게 감히 하지 못할 말을 즉흥적으로 내뱉을 때가 있다. 남보다 더 소중한 사람한테는 도대체 왜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깊이 생각해 주지 못하는 걸까?
남편은 사실상 늘 앙시앵레짐의 절대군주 같은 영향력을 아이들에게 행사해 왔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혹은 컨디션이 나빴다고 치자. 머리 다 큰 아들이 내비친 몇 마디 말에 열이 치밀어 휴대폰을 내던지는 폭력을 행사하고 만다. 교회에 가자는 친구가 만나기 부담스러워 점점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딸의 말에, 정희는 단호하게 말해왔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상대를 바꾸고 고쳐야겠다고 하는 관계는 출발부터 잘못된 거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과 남편은 정치적 성향이, 종교가, 진로에 대한 생각이,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모든 이유로 아들과 딸을 맘속에서 재단해 왔다. 결국 아슬아슬한 선에서 밀당하듯 멀어지던 이들 가족은 급기야 밥 한번 먹기 힘들어졌다. 이로써 아이들 못지않게 그들 자신도 방황했고, 상처 입었으며 후회하였으나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인 것이다. 우리는 생각이 달라서 가족 간에도 다투고 심지어 서로 멀어질 때도 있지만, 마지막에 있는 선들을 지켰어야 하는데 어른답지 못했고 예의도 없었다.
아들이나 딸에게 벌어진 일들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 알리샤를 만날 때는 왜 가능했을까? 상대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알리샤를 만나보니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었고, 어색하지만 흥미롭고 친근해졌으며, 겨드랑이 사이로 날개가 돋은 해방감을 정희는 맛본 것이다.
우리는 좀 홀가분하게 가족에게도 그래줘야 하지 않을까? 이번 봄에는 부디, 상대를 고쳐보려는 못된 생각을 버리고 타인과 내가 다르듯이, 가족 구성원도 나와 다르고 고칠 수도 고치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자각이 실천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함께 날개를 달아보시겠어요?
(2025년 3월 4일 문학뉴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