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세상』입가에 번지는 미소

황석영,『맛있는 세상』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나름 맛집 기행자이자 요리 블로거로 수많은 음식을 만들어보고 먹어 봤으나, 의외로 특정 음식 하나를 딱 집어서 이게 제일 맛있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졌으며, 귀하게 먹던 음식들을 구하기 쉬워진 것도 한 이유가 되리라.

맛 좀 알고 요리 좀 한다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한 끼 말하기가 왜 이리 구차할까? 고맙게도 황석영 작가의 '맛있는 세상'은 나의 이 어설픈 변명을 좀 더 그럴싸하게 설명해 준다. 맛에 대한 작가 나름의 정의와 철학은 다소 과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언어에 담긴 진실성을 숙고해 읽어 본다면 깊이 통감하게 된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잃어버렸다.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식가나 식도락자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한다.

마치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돈 후안처럼 말이다.

(황석영,『맛있는 세상』, 향연, 2007)



맛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뼈 때리는 진실을 앞에 두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시간을 떠올려본다. 결국 맛이라는 것은 실제의 맛 더하기 행복했던 추억과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은 요리 공방 지인들과 함께했던 산행의 비빔밥이다. 수안보며 양평을 마다않고 달려가 소풍놀이하듯 시작된 나물 캐기는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아떨어졌고, 나는 누구보다 나물 캐기에 몰두했다. 사실 산나물 하면 쑥, 두릅, 고사리, 명이나물이 아는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재빠르게 저 멀리부터 냄새가 진동하는 두릅과 귀한 산고사리를 곧잘 발견했고, 풀보다 지천이던 곰취는 뒤에 올 사람을 위해 어느 정도 남겨두어야 한다는 산사람의 매너도 배웠다. 그야말로 전문 산 나물러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산벼락을 기고 미끄러지며 땀 흘려 채취한 산나물들을 한바탕 분류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밥은 거들뿐인 산나물 비빔밥을 만들었다. 고추장과 들기름 외에는 아무 양념이나 고명도 안 들었건만 그 맛은 얼마나 쓰고 달고 맛있던지...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고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자 가장 맛있는 시간이었다.


황석영 선생의 '맛있는 세상'과 조금 더 뒤에 출간된 '밥도둑'은 잊혀진 입맛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맛있는 밥은 행복한 한 토막의 기억이고, 그 기억은 아름답게 쌓여 추억으로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등산하고 내려와 쉽게 한 그릇 사 먹을 수 있는 유명 맛집의 기억이 아니다. 직접 채취하고 더없이 허접하게 만들어 함께 먹었던 소박한 한 그릇의 비빔밥이 매년 봄이며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되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그리움의 첫 단추는 요리 공방에서 시작된다. 당시 대충과 적당히를 외치며 세상 호구를 자처하던 내게 첫 대면부터 깐깐하고 성정을 가늠할 수 없었던 공방 사람들은 쉽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하나같이 츤데레에, 기이하거나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이들이었다.

봄나물 캐러 가고, 새우젓 사러 소래포구 가는데 벤츠를 몰고 와 전원을 벙 찌게 했던 짠순이 A. 평상시 요리 재료를 칼 재듯이 나누다가도, 누군가 사소한 부당이득을 취하려 하면 구척장신 장군처럼 크게 호통치던 연약하고 작은 B. 사업하러 간다던 남편이 베트남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면서 비빔밥을 가열차게 비비던 P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만 같다. 나는 한동안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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