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보』 세상 다정한 순댓국

차인표 『오늘 예보』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IMF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한강 둔치에 않아 울기도 했고, 실제로 세상을 등진 이들도 있었다.

차인표 소설 『오늘 예보』처럼 당시 대한민국에는 죽고 싶겠다 싶은 절망의 요건을 충족하는 사연들이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아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할 이가 없다고 생각한 나 고단 씨는 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낯선 이로부터 죽지 말라는 반가운 메시지와 단돈 5천 원을 받아 들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맛있는 순대 국밥을 사 먹게 된다.


그는 순대 국밥을 먹는 내내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허기지기도 했지만, 너무 달고 맛있으니까. 그는 내일 이 맛있는 순대 국밥을 또 사 먹기 위해 살기로 작정한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단순하기도 하다. 배고픈 이에게는 맛있는 순대 국밥 한 그릇이 위로가 되고 슬픈 사람에게는 그 말을 경청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때로는 진심을 다한 행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엄마와 동행한 병원에서 가끔씩 뵙는 어르신이 계셨다. 작은 탈의실에 주저앉아 옷을 입으시는데 팔이 불편해 보이셨다. 옷 입는 걸 도와드리니 가만히 웃으시며 벌써 정오인데, 피 뽑느라 아무것도 못 드셨단다. 그분은 어느새 엄마와 막연하지만 막강한 병원 친구(?)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시는 사이가 되어계셨다.


아주 가끔씩 아드님 내외랑 오시는 걸 보았는데, 아드님은 큰 키에 중후한 모습이 든든해 보였고, 며느님 역시도 서구적인 이목구비에 하이톤으로 생글거리는 추임새가 보기에 좋았다.


아들은 서울 중심 용산에 소재한 디지텍고등학교중 한곳의 교장이고 손녀가 둘이나 있으시단다. 이분은 참 든든하고 화목하시구나 싶었고, 언니 먼저 보내고, 자식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엄마가 잠시 애처로운 생각도 들었다.


병원 복도와 가까운 탈의실은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도 꽤 선명하게 잘 들린다.


(여자) 여보,여보 카드 어쨌어? 오늘 어머니 병원비 지불한 카드 말이야?

(남자) 아. 미영씨. 그거 어머님이 결제하신다길래 드렸는데... ...

(여자) 미쳤어. 요즘 노인네 형편 안 좋은 거 몰라? 결제하고 바로 받았어야지.


누군지 모르겠으나 입방정이 좀 심하다 싶었지만, 그들 내외에게도 사연이 있겠지 싶었고 남의 일에 콩 나라 팥 나라 하는 성격도 아니라 무신경하게 들었다. 그러나 옷매무새를 고르던 나는 반사된 거울을 통해 어르신이 하얗게 질려 계신 걸 보았다.

아뿔싸...... 안 들은귀를 다시 살 수도 없고, 이분의 아들 내외였다는 걸 직감했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세상은 무서울 만큼 다를 때가 많다는 걸 잠시 잊었다.

일어설 힘이 없으니 나 좀 일으켜 달라 신다. 이분이 우시면 어떻게 할까? 난처해서 어쩌지? 이기적으로 내 생각만 했으나, 만일에 엄마가 이런 일을 겪었으면 어떻게 해 드렸을까 싶었다. 내 맘이 이리 불편하고 안 좋은데, 이분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는 것 아닌가?


결국 나는 그분과 함께 병원에서 나가자마자 보이는 첫 번째 식당에 들어갔다. 어차피 밥도 먹어야 하고, 엄마의 검사시간이 오래 걸리니 함께 식사나 하시자 권유한 것이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순댓국 한 그릇을 놓고 마주했다. 나로서는 엄청난 용기였다.

이분이 이런 감당하기 힘든 모욕을 당하고, 쉽사리 뭘 드시기는 힘들 거라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속이 비셨으니 밥으로 위로를 해드린 것이다. 사람은 속이 비면 더욱 신세 한탄이 나오고 비극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아까 들었던 이야기는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 후로 어르신은 늘 혼자 병원에 오셨고 오실 때마다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거 안 먹고 집에 갔으면 어지러워서 가지도 못했을 거라고, 참 맛있는 순댓국을 드셨다고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다. 이것이 그분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잘 위로할 줄 모른다. 나 역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말재간도 없기에 나는 슬플 때 밥 한 끼 사주는 게 위로라고 생각한다. 불편 같은 거 좀 감수하고, 작은 선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재거나 인색하지 말고 위로의 말 한번 건네면 어떨까?

한 사람 한 사람 그냥 툭툭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세상 좀 살맛 나지 않을까? 요즘 위로니 온정이니 하는 말들을 중언부언하는 거 보니 내 삶도 쫌 퍽퍽하긴 한가 부다.

누가 순대 국밥 한 그릇 사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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