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삶

나는 파란색을 왜 좋아할까?

by 롱러너


눈이 펑펑 오는 어느 날. 문득 환기 미술관에 가면 이쁜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은 눈이 쌓이듯 떠올랐다. 언제 마지막으로 왔나? 사진첩을 둘러보니 약 5년 전이었다. 꽤 긴 시간이었음에도 마음 한 켠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그만큼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리뉴얼했다고 해서 더욱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예전에 왔을 때 모습이 기억나지 않아서인가, 건물은 그대로였고 내부 동선도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미술관을 바라보는 나 스스로의 모습이다. 파란색 작품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내 키보다 두 배 이상 큰 파란색 작품 앞에 서있으니, 작품은 큰 파도처럼 변신해 나를 덮쳐 삼킬듯하다. 순간 위압감이 들어 무서웠지만 왠지 모를 포근함이 느껴졌고 덮쳐 삼킬듯한 느낌은 감싸는 느낌으로 변화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그 미묘함에 한참을 서있었다.


왜 그랬을까? 아까 잠시 머물렀던 노란색 작품 앞에 다시 서봤다. 이상하다.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파란색 작품 앞에서 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내가 입고 온 옷을 보니 대부분 파란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옷장을 상상해 보니 파란색이 가장 많다. 그중에서도 어둡고 진한 계열인 네이비, 코발트블루 계열이 많다. 운동복, 외출복, 잠옷 심지어 실내 슬리퍼까지 파란색은 내 집에서 나만큼 영향력이 커지고 말았다.


문득 누군가 나에게 '무슨 색깔을 좋아하세요?'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할까. '글쎄... 그냥 좋아요.'라고 한다면 너무 심심하다. 멋이 없다. 말하는 입장에서도, 듣는 입장에서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듯한 대답이다.


그래서 김환기 선생의 #317 작품 앞 벤치에 앉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작품을 관리하는 직원과 단 둘이 그 공간에 있어서 괜히 부담스러웠지만)


파란색을 보면 심해 빠진 듯 고독해지고 외로워진다. 차분해진다. 하지만 힘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빨간색처럼 활활 타오르며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다. 곧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 듯하다. 미묘하다 미묘해.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한 나의 취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누구인지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그냥'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이유를 찾아가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즐겁게 사유한 탓인지 아트샵에서 홀린 듯이 파란색 굿즈를 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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