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게 내민 하얀 도자기 컵에 익숙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TV 만화로 유명해져 장난감뿐만 아니라 물병이나 식판, 음료수, 옷, 물티슈 등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안경 쓴 펭귄 캐릭터라고 하면 그 이름이 바로 따라 나올 만큼 인기가 있다. 동그란 얼굴에 꼭 맞는 노란 모자를 쓰고 주황색 안경과 주둥이가 얼굴 전체를 차지한 모습이 매력적인 뽀로로이다. 파란색 비행복을 입고 목에 작은 머플러를 두르고 손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이 평소랑 똑같으면서도 훨씬 귀여워 보인 것은 아마도 뽀로로 형체를 따라 그려진 테두리 선 때문인 것 같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진 이 귀여운 녀석의 등장에 모두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살면서 엄마의 그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내 기억 속에서 뽀로로가 엄마의 첫 그림으로 각인된 날이었다.
“이게 뭐야?”
엄마도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소운이 선물.”
“엄마가 뽀로로 그렸어?”
“그래, 이름이 그거 맞다.”
도자기 페인팅 수업에 참여하셨다가 손녀에게 주고 싶어서 뽀로로 도안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아이들에게 뽀통령이 인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할머니의 감으로 봐도 아이들이 좋아할 이미지였는지, 아니면 익숙할 만큼 친근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컵 속에 그려진 뽀로로는 최고의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선물은 올케가 대신 받았다.
“고맙습니다. 소운이한테 할머니가 그렸다고 전해줄게요.”
“내가 그림을 잘 못 그린다.”
선물로 주면서도 연신 못 그린다는 말과 민망해하는 모습에서 설렘과 흥분이 동시에 느껴진다. 직접 보지 못했지만 뽀로로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선을 그으며 노력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엄마 진짜 잘 그렸다는 말이 절로 나와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자 엄마는 한 마디 남기고 자리를 뜨셨다.
“잘하기는 무슨......”
그림을 잘 그린다의 ‘잘’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능숙하게 그렸다, 아름답게 그렸다, 정확하게 그렸다, 적절하게 그렸다, 만족스럽게 그렸다, 멋지게 그렸다, 옳게 그렸다, 기발하게 그렸다, 창의력 있게 그렸다, 돋보이게 그렸다,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재미있게 그렸다, 신기하게 그렸다 등 떠오르는 게 참 많다. 엄마의 그림을 사랑스럽게 그렸다고 표현했다면 적절한 느낌이다. 그림 그리는 스킬에만 초점을 두면 ‘못’이라는 말이 자주 붙어 버린다. 단어 사이에 ‘못’을 넣으니 그림이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림에서 잘 그린다 못 그린다는 말이 사용되는 것은 ‘잘’에 대한 의미를 폭넓게 해석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우리말에는 잘함과 잘못함을 이르는 잘잘못이라는 말이 있다. 경우에 따라 잘잘못을 철저히 따지기도 하고, 눈감아 주기도 한다. 그림 그리기에선 후자가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뽀로로 이후 엄마의 그림을 다시 본 적이 없다. 그날 서슴없이 나왔던 엄마 진짜 잘 그렸다는 감탄은 다른 그림으로 도전하는 것엔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만약 잘 그렸다는 말 대신 엄마 진짜 웃기게 그렸다거나 엄마 진짜 사랑스럽게 그렸다는 표현을 썼다면 어땠을까. 가족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도 다시 그리지 않았을까? 엄마의 그림은 뭐라도 더 챙겨 먹이려고 정성껏 준비하는 음식처럼 사랑을 담았으니까 말이다. 아마 잘 그려야 한다는 것이 스킬이 아니라 웃음으로 행복을 주는 것으로 여겼다면, 몇 번이라도 그렸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