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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Dec 31. 2022

당신과 함께하는 문장

다나베 세이코,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


 인간은 결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삶을 살아가며 결여를 채우거나 바라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행해지는데, 그러한 행위의 극치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을 단순히 욕망의 소산으로 생각해 나의 ‘없음’을 상대방의 ‘있음’으로 채우려고 한다면, 그 사랑의 결과는 파괴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다. 상대방에게 ‘하나 됨’을 강요하며 모든 것을 일치시키려 하는 행위로부터 폭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에서의 거리두기는 절제되고 건전한 연민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 조제는 결핍으로 가득 차 있는 아이다. 그녀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으며 크나큰 상처를 얻었다. 그런 그녀를 츠네오가 가만히 바라보며 품어준다. 그 역시도 사랑의 결핍을 느끼지만, 조제에게 마냥 다가가기보다 거리를 두고 옆에서 지켜본다. 마침내 조제와 츠네오는 자신들의 ‘없음’을 서로 알아보고, ‘함께 함’으로써 결여를 견뎌내기 시작한다. 조제는 자신이 무서워하던 호랑이를 츠네오와 함께라면 볼 수 있다. 둘이 함께 있을 때 그들은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중략) 깊은 밤에 조제는 눈을 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고, 마치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았다.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어떠한 사랑을 해야 할까.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해야겠다. 압박하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대와 더불어 괴로워해야겠다. 사랑에 빠지지 않은 채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주 다정하면서도 절제된, 애정이 넘쳐흐르면서도 건전한 이 ‘함께 함’에 신중함 혹은 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그렇게 나는 당신이라는 이름의 문장을 쓰려한다.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리려 한다. 우리가 하나의 문장이었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다. 당신이 있고 쉼표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는 문장, 나와 당신 말고는 누구도 쓴 적 없는 문장을 나는 쓰려한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동문선(2004).

** 유진목. 「연애의 책」 中 <당신, 이라는 문장>. 삼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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