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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Oct 01. 2022

세 나라... 시대와 국가 속 나약한 개인

김영하 《빛의 제국》  feat. 최인훈 《광장》


 한반도에 세 나라가 있다. 북한, 1980~90년대 남한, 21세기 남한. 앞선 두 나라는 상당히 흡사하다. 북한은 노동당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내세워 인민을 통제한다. 8090년대 남한에서는 북한의 당과 수령을 단지 민족과 국가로 바꿔 강조한다. 군사독재정권이든 그에 맞서는 운동권 세력이든. 그러나 21세기 남한은 사뭇 다르다. 그곳은 자본주의 질서가 점령한 곳이고, 사람들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불안과 권태에 빠져있다.


 주인공 기영은 북한과 21세기 남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는 남파공작원으로 80년대 대학 운동권에 대학생으로 위장 잠입하는 임무를 받았다. 이후 별다른 임무수행 없이 여느 가장처럼 일상에 찌들어가다 10여 년 만에 당으로부터 소환 명령을 받는다. 《광장》의 명준이 50년대  남북한 사이에서 고뇌를 겪은 시점으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선택의 기로가 펼쳐진 셈이다.


 기영은 결국 21세기 남한을 선택한다. 결정의 과정에서 이념허무함과 한 인간의 나약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옳고 그름을 하나의 선으로 나눠버리는 이즘(ism)은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집단적인 사고체계 속에 개인을 옭아맨다. 북한과 8090년대 남한이 동일시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00년대 남한사회가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광장》에서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서도 사회체제의 우열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나약하지만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이 아등바등하게나마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 사회에 존재할 뿐이다.


 그가 고민하는 지점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대와 국가의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중립국을 택한 《광장》 명준을 떠올리게 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영과 명준의 고뇌는 한국 현대사 80여 년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특히 8090년대 현대사는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든 변곡점의 시대였다. 경제는 발전되었고 국가의 위상은 드높아졌지만, 양극화가 시작됐고 사람들의 우울과 절망은 깊어졌다. 하늘은 눈이 부시지만 지상은 어두컴컴한 빛의 제국이다. 이 아이러니한 제국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더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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