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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Jul 14. 2016

일천 구독 감사문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브런치 독자가 천 명이 넘었습니다. 글 쓰기를 잠시 쉬어야지 하며 생각했던 차에 천 명이 넘고, 맨 아래에 있던 글이 재조명받고 있네요. 기쁘기도 한데 심적 여유가 모자라 글 대신 아이디어만 쌓고 있는 중입니다. 일천 분의 독자분들께 참으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Gray tree, 1912, 피에트 몬드리안


예전에 제가 글 좀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긴가민가 했습니다. 아니요, 솔직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좋다고 말씀까지 해 주시는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검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제 펜 놀림이 대중성이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을 썼습니다. 그중 3개월은 매일같이 업데이트를 했고, 4개월 차부터는 조금 (많이) 게을러졌습니다.



Flowering apple tree, 1912, 피에트 몬드리안


이렇게 저의 게으른 태도에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어둠 3부작'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갓 시작한 소설을 즐겨주시는 분들도, 시사나 전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구성 no.10, 1915, 피에트 몬드리안


취향은 다양합니다. 저도 유행하는 취향이 무엇인진 잘 압니다. 스타트업, 데이터 사이언스, 감성 에세이, IT, 사진 위주의 여행기. 저도 할 말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제 글솜씨를 시험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인정받으시는 분들은 인기 트렌드 안에서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맛을 우려내는 분이었어요. 

어제 <황치와 넉치>에서 게스트 분께서 그러시더군요. 누가 불러도 인기 있을 유행할 음악, 비트 위에 랩 하는 거 말고. 아이덴티티 있는 음악. 아이덴티티 있는 트랩을 존중한다고요. 그분 말을 이쪽으로 끌어오는 게 어폐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마음도 그랬습니다. 인기 있을 콘텐츠 말고, 내 색깔부터 검증받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천 분의 구독자분들은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임과 동시에 저의 자부심입니다.


구성, 1916, 피에트 몬드리안

저는 몬드리안의 <구성 no.#> 연작을 좋아합니다. 어떤 미술가를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늘 (뻔하게) '피카소'와 '몬드리안'을 입에 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심미적으로 아름답고, 아름다움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걸작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실린 몬드리안의 작품은 (표지를 제외하고) 시간 순서대로 도열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1912년부터 1930년대 우리가 아는 '구성'이 되기까지 한 인간의 고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 속에서 만나는 '적당히 그린' 네모와 빨갛고 파란 사각형이 어떤 사고와 고민을 거쳐 드러나는지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제 글이 몬드리안과 같은 걸작임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가 걸작을 인정받고 걸작 중 걸작을 만들어낸 십팔 년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는 모두의 인정을 받은 한참 뒤에도 자신을 걸작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아는 <구성>을 완성합니다.



구성 no.10, 1939-1942, 피에트 몬드리안


유투버 백만 구독자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세상에서 천 명의 구독자가 무슨 대수야 싶을 수도 있겠죠. 저도 간간히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요. 그런데 그건 비교하고 줄 세우기 좋아하는 분들 이야기고. 이건 제 글을 좋아하는 천 명의 구독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글을 썼을 때, 푸시가 가도 불쾌하지 않을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젠 이런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생겼습니다. 천 명의 구독자가 나를 인정해줬다고. 터치 한 번일뿐이지만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다고요.


브런치 시작 200일이 되기 약 30일 전. 저는 일천 구독자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이제 저의 아이덴티티에 글쟁이라는 직함을 추가하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성 II, 1930, 피에트 몬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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