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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May 27. 2016

광신도, 02 [完]

소고단편선

[1편 보러 가기]




파리 시내와 외곽 사이에서 한 관광객과 시민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시민이 머리에 맥주병을 맞아 사망했다. 관광객은 그의 뒷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민은 얼큰하게 취해있었고, 몸을 가누지 못해 관광객의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시비가 붙었다. 머지 않아 말도 안 통하고 화를 참지 못한 관광객이 파리 시민의 머리에 병을 세게 휘둘렀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파리는 크게 술렁였고, 관광객들은 이때다 싶어 파리의 바가지와 시민의식 부재를 언론에 크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어느 장관이나 부처에서도 파리 시민을 옹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관광객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연봉을 받고 있었고, 기업에서는 정치인들의 침묵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기름을 붓듯, 이번 사태는 국제 언어에 무관심한 파리의 시민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얼빠진 의원도 등장했다.


시민들은 의원들의 이런 태도에 분노했지만 누구 하나 크게 나서는 이 없었다. 관광 자원이 파리의 주된 수입원이 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되려 관광객들이 독일이나 스위스, 영국 등 주변 국가로 빠져버릴까 봐 장사하는 내내 손에서 리모컨을 놓지 못했다.


오늘 모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사태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드디어 일이 터졌어. 이게 아니잖아. 파리에 주인이 없어. 파리 시민이 죽었는데, 아무도 말이 없어. 이게 말이 된다 생각해?”한 쪽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아벨린이 응답했다. “그래, 맞아. 우리가 언제부터 예술과 문화를 생각하면서 돈 있는 자들과 외부인의 눈치를 봐야 했어? 이건 우리 고유의 모습이 아니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렸다.

“관광객들은 누릴 줄은 알면서 책임은 지려 하지 않아. 고흐 엽서 몇 장과 가방을 구매하는 것으로 바닥에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줄 알지.”

“이번 사태는 우리 파리가 주관이 없는 곳이라는 걸 전 세계에 알린 꼴이야. 우리가 나고 자란 도시가 더럽혀진 거야.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야 해. 기본도 없는 아시아인들과 누런 개같은 외지인들 같으니.”


회원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분노에서 시작한 감정이 혐오로 번지기까지는 열 마디가 채 필요하지 않았다. 회원들은 당장이라도 거리로 뛰쳐나갈 듯했다.


이때 조르지가 나섰다. “여러분의 말도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파리를 수호하는 검은 주체입니다. 우리가 드러나는 순간, 시민들은 다시 한 번 우리를 배척하고 구분 지으려 할 겁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우리는 파리를 수호하면서도 주인 의식이라는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집주인이 스스로 “제가 이 집주인이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물질로서 과시하려 드는 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면, 사람들은 우리의 고결한 ‘파리 수호 의지’보다 우리 존재를 두려워하고, 비웃을 것입니다. 마치 제 집을 자랑하는 졸부처럼 그렇게 우릴 쳐다볼 거예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어.”이름을 알리지 않은 누군가가 말했다.

“조르지, 너 지금 우리가 겁장이 문화인들과 같아지라는 거야?” 한 여성이 손가락을 사선으로 치켜세우며 물었다.

“대책은 만들고 말을 꺼내는 거겠지?”

성난 회원들 사이에서 한 마디씩이 더 튀어나왔다. 조르지는 유난히 침착했다. 그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네, 방법이 있습니다. 파리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면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방법이요.” 조르지는 이제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사람들은 몹시 격양되어 있었다. 우리는 파리 시민의 죽음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하여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실천에 대해서 기대를,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조르지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들 두 시간 후에 ‘도살장’에서 보자고 했다.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르지가 보여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조르지를 깨나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그의 말투와 외모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전투병이 아니라 장교 같다는 말도 나왔다. 그가 군중 사이에서 툭 떨어진 것 같다는 감각이 말끔한 군청색 제복을 입은 리더의 형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말과 군중들의 보챔에 나의 심장이 세차게 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삶을 느끼고 있었다.



두 시간 뒤, 도살장은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자주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고, 한 두 번 봤던 사람들의 형상도 있었다. 무리 중에는 희생된 시민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동심원 바깥에 있는 소수는 호기심 어린 마음과 의심이 반반씩 섞여 있는 듯했다. 조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 두 개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 둘 숨을 죽였다. 조르지였다. 그리고 옆에는 한 아랍계 소년이 아직 채 벌어지지도 않는 발걸음으로 그의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사람들을 가르며 들어갔다. 군중들은 침묵했다. 발길에 흙이 끌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소년이 조르지와 함께 군중들의 중심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할 모든 행동에 복종하겠다는 듯 결의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조르지가 입을 열었다.


“이 소년은 한 이민자의 아이이자, 저희 부모님이 거둔 집안의 아이였습니다. 평소에 사랑을 실천하길 주저 않던 저희 부모님께서는 생존을 위해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그리고 파리에서 교회로 달려든 세 영혼을 거두길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의 부모가 집 안에 있던 보석 상자를 훔쳐 달아나려 들었습니다. 이를 저지하려던 저희 부모님은 우발적으로 그들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조르지의 말 토씨 하나, 침 삼키는 소리에도 집중하고 있었다. 조르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들으시는 이야기는 지금처럼 이민자에 대한 법이 생기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라가 우리에게 해 준 일은 보조금 몇 푼과 아이의 부모들을 감옥에 보낸 것뿐입니다. 그 마저도 파리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나 보상이 불분명하다는 말과 함께요. 저는 이 소년의 부모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지금보다 더욱 무책임한 정부가 죽였습니다. 그들에게 이 아이의 부모는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숲에서 맹수에게 사냥당한 것과 대등한 취급과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욱 악랄한 진실은 저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의 존재를 유기견처럼 방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소년을 보호소에 수감시키려 했습니다. 보호자가 없으니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자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보호소에 들어갔다 나오면, 지금처럼 순수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죄를 저지른 건 저들의 부모님이지, 이 소년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호소는 소년을 기다립니다. 이것은 누구의 처사입니까? 파리의 배부른 대변인들은 우리뿐 아니라 인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습니다.”


조르지는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할 때 살짝 목소리가 쉬었다. 나는 드럼통 속 모닥불을 모조리 끼얹은 듯 한 조르지의 눈빛에서 가슴이 지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는 이 아이를 차마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저희 부모님이 살해된 그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의지와는 달리, 왜곡된 복수의 마음이 하루에 몇 번이고 울컥울컥 올라왔습니다. 동그랗고 새하얀 그의 영혼을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십 번 올라왔습니다. 저는 자신의 이중성에 절규했고, 그럴 때마다 신을 찾아 울부짖습니다. 그렇지만 신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들은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로 저와 이 아이의 영혼을 몰아붙였습니다.


어느 날. 이 순결한 쿠르드족 아이가 어설프게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곤 어눌한 프랑스어로 말했습니다. “자신을 죽여달라”고요. 이 작은 영혼을 향한 저의 분노가 어찌나 큰지, 저의 가식적인 친절이 그것을 미처 가리지 못한 것입니다.”


회원들은 이제 조르지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군중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쿠르드족 아이의 잿빛 얼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두 발을 땅바닥에 굳게 지지한 채 고개를 들어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소년의 한 쪽손은 조르지의 바지춤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조르지가 그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시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제 삶은 검습니다.”

크루드 아이가 입을 떼었다. 그리고 그때, 드럼통 안에 있는 각목이 힘을 잃고 부서지면서 불씨들이 나선으로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이제 조르지에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삶의 이유 없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은 없습니다. 형은 저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의 미래는 검은색입니다. 목이 꺾여 죽어버린 암사슴. 길거리 위에. 그것이 저입니다.” 아이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차분했다. 그의 목소리는 동글동글한 외모와 달라 상당히 이질적이었는데, 톤은 높았지만 담담한 선언 때문인지 이도를 거치지 않고 뇌리에 수직하게 꽂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군중들의 눈빛을 모두 응수했다. 그의 시선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옮았다. 그의 눈망울은 붉게 타오르는 불꽃 같아서, 그림자 진 우리의 눈알에 생기를 전해 주고 있었다.


소년은 우리의 눈에 하나씩 불씨를 심어주었다. 조르지가 뜨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의 육신은 우리의 썩었던 정신이며, 그의 죽음, 피는 순결함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들짐승 취급한 이 아이의 부모 대신, 우리는 이 아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할 것입니다. 아이의 죽음은 한 외부인의 죽음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는 자들이 의식 없이 저질러 왔던 죄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행위로 남을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자들에게 책임 의식을, 파리 시민들에겐 우리의 고유성을! 외부인들에겐 우리의 의식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줍시다!”


조르지의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빠르게 흘렀다. 아이는 표정의 변화 없이 단죄의 제단으로 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의 모가지에 칼을 꽂아 넣던 그곳으로.


조르지는 제단 아래에서 빈 페인트 통 네 개와 칼을 꺼냈다. 칼은 팔뚝만큼 길었고, 불꽃을 머금고 있어서 우리가 가진 그 어떤 물건보다 짙은 주홍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 조르지와 소년을 두르던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광기의 중심에 있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광기의 바람에 춤을 추기 시작할 때,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머릿속에 자리한다. 다만 그것은 너무나도 또렷한 나머지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진정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 광기는 그것의 본성에 몸을 맡기라고 끊임없이 귓속을 파고든다. 커다란 나선형의 속삭임이 지름을 점점 좁혀가며 우리의 마음속 정화 본능을 증폭시킨다. 나는 이것이 광기임을. 그리고 내 머릿속 이성이 분명히 존재함을 인지하면서, 주홍 불꽃이 하얗게 타오르는 그 칼끝이 정의를 구현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가장 뜨거운 그곳, 속불꽃. 나는 그것을 내 손으로 휘두르고 싶어졌다.


조르지는 왼팔로 소년의 어깨를 두르고, 오른손에 들린 그것을 힘껏 그의 가슴에 꽂았다. 


“아앗!”

소년은 조르지가 꽂아 넣은 칼자루 위로 온 힘을 다해 손을 모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너무나도 작았다. 조르지의 한 손을 채 가리지도 못하는 소년의 양 손가락이 경련하며 부들거렸다.


소년은 이제 막 눈이 뒤집어졌다. 소년은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마구 떨었다. 소년의 떨림에 맞추어 칼은 움찔거리며 그의 몸을 삼켰다. 소년의 몸에 생긴 틈 사이에서 불꽃보다 더 붉은 피가 말미도 없이 쏟아졌다. 그는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진동했다. “디야 문… 바브…”와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쇼크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절규는 진동이 잦아들며 점점 그 소리가 줄어들었다. 그의 발아래로 페인트 네 통이 검은 입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소년의 두 팔이 조르주의 오른손을 힘 없이 놓아주었을 때, 네 개의 페인트 통은 “텅텅”하는 점성 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르주는 꼭 쥐었던 칼자루에 힘을 풀고 그대로 소년을 안았다. 그는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울고 있었다. 소년이 죽어서야 우리의 눈에 불씨가 붙을 정도로 우리는 나약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말이 없이 네 개의 통을 꺼내 공평하게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동물들의 것으로 그랬듯 그 피를 파리 곳곳에 뿌리기로 했다. 나는 생 샤펠 성당을 향해 그것을 들었다. 통조림의 얇은 알루미늄 막 사이로 소년의 불꽃이 잔잔하게 고동하고 있었다.


큰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은 어느새 푸른빛으로 색을 찾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나의 옷깃과 팔뚝을 훑고 올라왔다. 나는 소년의 온기를 더욱 가슴 깊이 품었다. 그것은 철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통조림 벽 속에서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안개 속 저 멀리 생 샤펠 성당이 막 보이기 시작할 때는 형광복을 입은 파리의 경찰들과 청소부들이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삐 삐”하는 소리와 함께 청소차의 후진음이 들리고 있었다. 나의 손은 캔을 단단히 옭아 쥔 있던 나머지 차갑게, 또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의 뒤쪽으로 청소 인부들이 뛰어내렸다. 나는 그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요, 선생님.”

소리가 들린 곳은 나의 앞쪽이었다. 노란색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관 두 명이 한 블록 앞에서 나를 크게 불렀다. 나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그것을 떨어뜨릴 뻔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려 캔을 움켜쥐고는 경찰들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갔다. 걸음은 제어할 수 없이 빨랐고 나는 뒤쪽을 숨 쉬듯 돌아보며 골목골목을 돌았다. 그때였다. 나의 발이 보도와 도로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균형을 잃고 자갈 도로 위로 거꾸러졌다.


“댕그렁”


골목 안에서 나와 소년이 나뒹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통조림 뚜껑은 도로를 타고 굴러가 이, 삼 미터 앞에서 턱에 부딪혔다. 땡그르르 하는 뚜껑의 잔향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가슴팍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소년의 피가 나의 몸통과 도로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캔은 허리 부분이 깊게 꺾여 있었다. 고개를 살살 가누어 일어났을 때, 나의 옷은 검은 타르 진흙에 더럽혀져 있었다. 나의 손은 소년의 피와 흙 웅덩이의 먼지들로 뒤엉겨 있었다. 나는 절룩거리며 검게 물든 캔과 그 뚜껑을 집어 들었다. 가슴팍 한쪽이 단단한 무언가에 찍혔다는 것을 주기적으로 상기시키고 있었다. 나의 손은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소년의 경련 같았다. 날카로운 쇳소리에 잠을 깬 개들이 나를 향해 컹컹대며 짖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와 그의 피가 만나 나의 체온을 훅 빼앗아갔다. 나는 몸을 덜덜 떨었다. 시선은 안정적인 곳을 찾아 분주했지만 너무나도 멀리 와 버린 터였다. 나는 이제 양쪽니를 딱딱거리며 떨었다. 개들의 짖는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나는 너무나 겁이 나서 벨빌을 향해 다리를 절며 뛰었다.



벨빌의 초입이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눈 앞이 흐려질 만큼 지쳐 있었다. 해는 모든 것의 형채를 드러낼 만큼 밝아져 있었다. 청색의 암막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떨구고 내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말라붙은 검은흙과 피가 나의 손가락 위에 덩어리를 진 채 굳어 있었다. 이것은 마치 판의 경계처럼 걸을 때마다 손등 위에서 서로 부딪치며 이질감을 주었다. 구름이 걷힌 것일까. 뜨거운 햇살이 훅 하며 나의 목덜미를 덮었다. 나는 이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흙과 땀, 그리고 피가 엉겨 붙은 나의 몸뚱이는 움직일 때마다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이 골목만 돌아가면 벨빌이다.


골목을 막 돌았을 때, 나는 살짝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벨빌은 여전히 중국인 창녀들과 아랍인들의 음란하고 정중한 시선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정화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의 몸은 그들이 입은 것들 중 어느 것보다 더러웠다. 나는 그들의 시선, 그 어떤 것보다도 혼탁했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더럽혀진 몸을 움츠르고는 그들 사이에 작게 비집어 숨어들어갔다.


광신도

Fin.




이 소설을 쓰게 된 내적 동기는 한 친구와 커피를 마시던 중 '성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였습니다. 소위 '뽕'이라고 하죠. 저는 무언가 하나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그것만 미친 듯이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나의 세계와 대상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신격화하며, 오로지 목표만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그 친구는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합니다. 자신은 언제나 반 걸음 뒤에 서 있으며 그것과 자신과의 거리를 재며 끊임없이 자신의 방향에 타성을 맞추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 서로를 신기해하는 동시에 서로가 '될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사랑하면서 반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제 친구는 타성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이요. 이 소설은 이러한 두 가지 대화가 사건-인물을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한 교수님께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는 "문제작이군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세상의 골칫거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향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시각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요.


Thumbnail Info: 이카루스, Jeffery Barso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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