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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May 27. 2016

광신도, 01

소고단편선




내가 알던 파리는 한참 전에 사라졌다. 내가 나고 자란 곳 벨빌(velleville; 벨르빌르)은 언젠가부터 알람도 없이 중국인 창녀들과 노인네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창녀와 노인보다 돈이 없던 나는 자연스럽게 거리로 몰렸다. 나는 곧 생 마르틴 운하에서 올라오는 습하고 더러운 기운에 몸을 덥히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어릴 적 내가 알고 배웠던 파리는 모든 역사와 자유의 중심지였다. 예술은 찬란했고, 도심 전체가 불어로 이루어진 활기로 들썩였다. 저녁놀 지고 매 시간마다 번쩍이는 파리 시내를 바라보는 일은 마치 유년기에 굳게 믿던 나의 미래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 있는 내 편은 모조리 증발해버렸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나의 친구들은 깎아놓은 사과처럼 낯빛이 바뀌었고, 할머니는 차가운 바닥 위에서 마른기침을 숨 쉬듯 하시다 이 곳을 떠났다.


행복했던 시절, 그 시기 파리의 카페에는 얼굴을 아는 형, 누나들이 담배를 태우며 문학과 예술, 그리고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어쩌다 내가 그 앞을 지나갈 때면, 그들은 나를 불러 세우고는 “너는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니?”라며 초콜릿을 하나 까서 입에 넣어주곤 했다. 그때와 지금. 카페는 그대로인데 의자에는 그때의 형, 누나들 대신 아시아인들과 유대/아랍인들이 쉼 없이 싸구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이 경박한 말로.



언제부터 내 마음이, 몸이 이렇게 가난해졌는지 모르겠다. 밥을 먹는 세 끼 중 두 번은 돈을 생각하다가, 이제는 그 끼니가 두 번이 됐다. 지금은 육 개월에 한 번 시청에 가서 잘 기억나지 않는 언어로 보조금을 신청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마치 부싯돌로 딱딱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같다. 나의 무드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기분만은 더욱 쾌락을 좇았다. 최근엔 얼굴만 알고 지내던 부랑인이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나는 오랜만에 심장이 펑펑 뛰는 기분을 느꼈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그런 내게 몇 유로를 요구했다. 마침 보조금도 받았겠다, 나는 그에게 제대로 세어보지도 않고 지폐 한 장을 주었다. 그리고는 곧장 벨빌로 걸었다. 벨빌 거리는 내 기분에 맞춰 뱅뱅 돌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음악에 취해, 그곳에서 가장 풍만하고 만만한 중국인을 골랐다.


그녀는 내게 얼마라고 딱딱한 불어를 뱉었다. 정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내가 다른 말을 시도하려 하자, 그녀는 “농(no)”이라는 말과 손가락 제스처를 취하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는 파리에 살고 싶어 살기나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무언가의 품이 급하게 그리웠다. 나는 중국인 창녀에게 보조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잡고는, 교미의 장소로 나를 잡아끌었다.

그곳은 연녹색의 건물이었다. 과거의 내가 살던 곳에서 보이는 집이었다. 그녀와 함께 좁은 복도를 걸을 때, 바닥은 찐득해서 마루가 딸려 올라올 듯했고, 삐걱대는 나무문 뒤편에는 융털처럼 지저분한 겨울 이불과 낡은 스프링 침대가 있었다. 이제 교향곡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휘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발기했고, 이내 아무렇게나 욕망을 분출했다. 그녀의 둥근 몸은 어둠과 혼돈에 가리어져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랜만에 내 속을 따뜻한 무언가로 덥혀주었다.  배운 적도 없는 몸이 최적의 자세를 찾아 낮게 낮게 임하는 모습은 때가 낀 부싯돌이 오랜만에 딱딱거리며 제법 큰 빛을 쏟아내는 형상이었다.


배설을 마친 나는 마른 입술로 거친 숨을 쉬었다. 창녀는 아까 그 융털 모서리를 아무렇게나 잡고 아랫도리를 슥슥 닦은 뒤, 누런 속옷을 자연스럽게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많이 와요?”하며 내가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개구리처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나를 보는 와중에도 그녀는 능숙한 움직임으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기술 같다고. 나는 기억한다. 

다시 그녀를 따라 내려와 벨빌의 거리로 나섰을 때, 음악은 내 머릿속을 떠난 지 오래였다. 나의 마음 바닥에는 오케스트라 악보만 흔적처럼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정수리 오른쪽 부분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나는 축축한 나의 집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돌아갈 곳은 그 곳 뿐이었다. 그러나 발걸음은 돌길에 끼어 비틀거렸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부랑자들과 쓰레기가 축제가 끝났음을 환영하듯 나를 반기고 있었다. 새벽이슬 분자는 설탕과 곰팡이가 섞인 습기를 품고 있는 듯했고, 그것들은 내 코 끝에서 톡톡 터졌다. 건물과 사람, 흙바닥, 회색 빛깔의 모두를 검은 쓰레기봉투에 담아 싹 버리고 싶다. 벨빌의 쓰레기, 파리의 외부인 그리고 나의 빈곤들 같은 것들.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이 생각을 내내 반복했다. 그리고 습기의 농도가 더욱 짙어질 때쯤, 나는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이 도시는 책임지는 자가 없다’고. 나는 그렇게 크게 구멍 난 모포위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10 유로를 주고 파리를 보여달라 말을 하면, 나는 개선문과 에펠탑, 퐁피두 센터 입구까지 그들을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100유로를 주고, 내게 진짜 파리를 보여 달라 한다면. 나는 주저 않고 내가 사는 곳으로 그들을 안내할 것이다. 파리의 밝은 면, 소로본 대학, 샹젤리제 거리, 멀리 가야 라 데팡스 같은 곳을 보려는 사람들이 파리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건, 말 그대로 웃기는 일이다. 진짜 파리 시민들이 사는 곳, 그리고 그 사는 곳을 우리만큼 가난한 외지인들과 나누어 써야 하는 이 환경. 이 곳이 파리가 아니라면 무언가. 파리 사람들은 소득 분위로 우리를 나누어 혼혈의 프랑스, 또는 파남(Paname;혼혈의 프랑스, 매우 가난한 프랑스)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스스로 파남이길 선택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진짜 파리다. 그들이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이제 예술가 형, 누나들이 앉았던 카페를 지나는 중이다. 그 시절엔 갓 구운 빵처럼 문화가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있었다. 이 냄새를 따라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언제나 이곳이 진원지였다. 설긴 붓질로 새로운 모던을 지향하는 갈색 머리의 누나가 있었고, 덜덜 대는 필름으로 찍은 자기 영화를 대충대충 이야기하던 곱슬머리형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가던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입을 살짝 벌린 채, 철학이란 것을 온몸으로 호흡한다고 말을 했었다. 그런데 요새는 즐기려고 해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없다. 닳고 닳은 창녀의 허벅지 사이와 그 어두운 골을 염탐하는 아이/노인들의 편협한 시선 말고는.



그녀를 만난 건, 이런 내가 희미하게나마 문화의 향취를 상기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 18구 근처를 배회하던 중 이었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게 된. 아니, 내 이름을 물어봐 준 오랜만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게 “당신,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네요. 책임감 있어 보여요.”라고 했다. 책임감. 그렇다. 내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면서도 끝도 없이 나아가던 곳, 그 길의 이름이 책임감이었다. 나는 “무슨 소리냐”는 대꾸도 없이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녀는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내가 조금 더 다가오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곧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녀는 그제야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벨린(Aveline; 연약함, 희미함)라고 불러요.”


아벨린은 파리가 정화가 필요한 곳이라 했다. 그녀는 내게 파리는 더럽고, 주인이 없는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중간중간의 내용은 또렷하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만약 나의 생각을 조리 있게 이야기한다면 마치 그녀의 말 같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를 파남이라 부르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제 서민들도 우리를 파리 시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처럼 우리를 여기면서도, 쓰레기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질색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서 우리는 쓰레기도, 파남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그저 파리 시민이며, 시민을 배척하는 파리는 더 이상 파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나의 거울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음 날, 다음 날의 다음 날에도 만났다. 그녀는 우리가 파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양복 입은 자들은 책임이 있는 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동차와 비싼 와인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면서.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수많은 시위대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함이고, 그것은 충분히 옳은 일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파리라는 유리잔이 깨지지 않도록이 곳을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면받던 우리는 사실 파리의 내면이다. 그리고 내면은 늘 가장 필요할 때에 조용히 그 역할을 해낸다’고 하던 그녀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이 말을 할 때 그녀의 눈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나의 눈동자를 넘어, 나의 생각 저 뒤편까지 맞닿아 있었다.


그녀는 곧 사람들을 소개시켜줬다. 모두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그들과 나와의 교점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었다. 각자의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파리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다. 그들은 가끔 직접적인 정화 행위도 했다. 예를 들면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을 돌려보내는 일. 부랑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아벨린의 친구들은 보통 나와 비슷한 파리 빈민이었지만 대부분 문화 시민이었다. 그들은 문학을 썼고, 그림을 그렸으며, 시를 적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좁은 집에는 90년대 거장들의 음악이 끊임없이 흘렀다. 나는 그들의 집을 돌아가며 신세를 졌다.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2 유로짜리 바케트가 더욱 부드러워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생겼다. 나의 하루는 곧 한 가지에서 두 가지 일과로 채워졌다. 하나는 늘 그랬듯 벨빌을 기웃거리기. 새로 생긴 하나는 그들과 함께 파리를 책임지기. 나는 두 번째가 나를 따뜻하게 덥혀 옴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파리 시민의 순수성’이라고 불렀다.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우리의 숫자는 조금 더 늘었다. 늘어난 숫자만큼 가짜 정화자도 간간히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보고 하는 일이 아니기에, 나는 늘 파리를 정화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 일지를 고민했다. 아벨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에서도 몇 번 신세를 졌다.


그녀의 집에는 포스터가 많았다. 낡아빠진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 귀퉁이가 말아내려 진 포스터들이 그녀의 집 전부였다. “나는 메시지를 좋아해.”그녀가 말했다. 아벨린은 다녔던 곳, 지나치는 곳의 종이를 모은다고 했다. 메시지는 중구난방이었지만 모두 하나같이 호소하고 있었다. ‘카페 다이나모’, ‘마르쉐 프란프릭: 아주 싸고 신선한 식료품’, ‘평화’, ‘사크레쾨르 대성당 안내 책자: 스페인어’ 등. 메시지는 별자리처럼 연결과 분절을 반복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선 ‘평화’나, ‘사랑’과 같은 거창해 보이는 말이 다른 것들과 섞여서 그저 그런 메시지가 돼. 결국 글로 하는 호소는 입으로만 지껄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지.” 그녀는 화장실 쪽으로 몸을 가누며 말했다. 그녀의 소리는 이내 좁은 화장실 벽에 부딪쳐 일렁거렸다. 그녀는 문을 반쯤 열고 소변을 봤다. 모든 소리가 일렁거렸다.


나는 메시지의 세계에서 화장실, 화장실에서 다시 한 번 눈을 돌렸다. 시선을 돌려도 메시지는 어디나 있었지만. 개수대에 붙은 빽빽한 메시지 사이로 숟가락 하나. 바우하우스 그릇 하나, 힘없이 퍼져있는 그녀의 옷 몇 가지가 보였다. 옷은 몇 벌 없었다. 그저 옷가지 위에 걸려있는 브라가 내가 그녀의 집에 들어와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창문이 너무 뻑뻑해서 한 번 열면 잘 안 닫히거든. 냄새는 안 빠지고.” 그녀는 화장실 문을 열어두며 말했다.

“물?” 그녀는 한 잔의 컵에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신 뒤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마신 뒤 개수대 위에 올려두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어느새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조차도 자기의 방에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그녀는 요리조리 눈길을 돌려가며 메시지를 읽고, 미간을 찡그리고, 풀고를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별자리를 지어내는 목동 같아서, 나는 그녀의 눈. 눈썹, 미간 사이로 시선을 훑었다가 그녀의 콧잔등으로 그것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몇 살이야?”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메시지를 조합하고 있는 듯했다.

“스물.” 내가 말했다. 

“그렇구나.”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알아봤어?” 내가 물었다.


스윽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이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18구에서 말이야. 나한테 책임감 있어 보인다고 했던 말.”


그녀는 꼬인 머리가 살짝 흐트러지도록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다음,

“너는 그곳에서 유톡 튀어나와있었거든. 여기 이 모서리처럼.”이라며 내 광대에 검지를 갖다 댔다.


나는 머릿속이 백지와 같이 광활해졌다. 튀어나왔다는 말. 나의 광대가 튀어나와있던가? 나는 그녀가 손을 갖다 댔던 그곳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 말고는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의 눈썹, 광대. 그리고 인중까지. 오늘따라 평범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유독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무드가 달라지려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동안 중국인 창녀의 풍만한 곡선이 불똥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이 무드와는 확실하게 다른 질감이었다. 그녀의 굴곡은 파동처럼 서서히 옅어졌다.


“불은 그냥 켜 둘게. 밝은 게 좋거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오랜만에 두근대는 심장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내 심장이 이렇게 세차게 뛴 적이 있었던가.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녀를 따라 목동이 되었다가 잠이 들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아침이 됐다. 우리는 부스스한 머리로 현관을 나섰다. 그녀는 문을 나서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적당히 몽롱한 연기가 어지럽게 천정에 퇴적됐다.

“네가 조르지(Georges)를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아벨린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조르지가 누군데?”

그녀는 잠시 생각이 멈춘 듯, 잠에 취한 듯 눈을 서서히 감았다 뜨며 말했다.

“우리와 같은 사람. 어쩌면 우리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을지도.” 그녀의 입 끝에서 간 밤에 보았던 별 하나가 부스러지며 떨어졌다.


내가 조르지를 만난 건 해가 넘어 하늘이 주홍 빛으로 물들 무렵이었다. 그 사이 나와 그녀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파리의 책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녀의 말은 낮 시간의 담배 연기처럼 그 흔적이 남았다 사라지듯 했다. 나는 계속 조르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거라곤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아벨린의 단서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조르지에 대해 더는 묻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같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잠시 동안 뻐끔거리는 그녀의 입과 까딱거리는 기다란 손가락을 보며 조르지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벨린에게 얘기 들었어. 나는 조르지야.” 


그는 꽤 훤칠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분위기의 옷과 살짝 헤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목 위가 유달리 반짝이는 청년이었다. 조르지는 다른 정화자들 사이에서 툭 하니 튀어나온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벨라의 손가락만큼 길게 뻗은 눈썹과 그에 비례하여 깊게 파인 파란 눈은 붉은 석양마저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그의 턱과 입은 단단해 보였는데,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 제 편이 생긴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항상 옳았고, 또 정직했다. 그는 바르고, 바른 만큼 또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조르지가 쓰는 어휘나 단어들은 제법 고급졌는데, 그 사용처와 위치가 꽤 적확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어설픈 지식인이 아니라 정식으로 대학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고 추측하게 됐다.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 어떤 불행이 그를 덮쳤고, 그것이 그를 이 거리로 내몰았을 것이다.

한참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조르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마치 내 생각을 들킨 듯하여 턱을 당기며 눈을 살짝 피하는 것으로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이후부터 우리는 모였다 따로 다니길 반복하며 정화 작업을 계속했다. 작업에는 때론 댓 명이, 많게는 스무 명 가량이 모였는데, 그 무리에는 항상 나와 조르지, 그리고 아벨린이 있었다. 우리가 빠질 때는 (교대로) 보조금 문제 때문에 시청을 들락거릴 때뿐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조르지와 아벨린이 어떤 대화를 나눌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대화는 나와 아벨린이 조르지가 없을 때와 나눴던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벨린은 조르지와 있을 때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길을 찾는 것 같았다. 조르지는 파리의 정화작업에서 가장 학구적인 인물이었고, 아벨린은 그의 세계에서 드문드문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을 찾는듯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존중했지만, 그녀가 했던 말처럼 실천이 없을 거라면, ‘사랑’이나, ‘카페 다이나모’의 전단지와 같은 높이에 걸릴 것이었다.


우리는 여름 내내 파리를 정화하고 다녔다. 취객 관광객들과 씨름하는 날도 있었고, 부랑자들이 시민들을 위협하지 않도록 눈빛과 말로 타이르는 것도 일상이 됐다. 우리는 관광객들의 사진 세례에서 모습을 감추거나 피하지 않았으며, 밤에는 각자가 하는 예술의 진척 사항을 물으며 토론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하늘은 저 멀리 높아져 있었고, 바람은 열기에서 냉기를 머금어 날렸다. 길었던 여름은 정화작업과 함께 금세 지나고 있었다.



우리의 정화 작업은 때론 일반인들에게 광적이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버려진 유기견, 묘들 중 중성화가 되지 않은 것들을 잡아 죽였다. 이것을 유쾌해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부랑자들은 그들을 이용하고 먹이나 줄 줄 알았지 그들의 공격성이나 난잡한 번식에 대해선 속수무책이었다. 시에서는 공무원들이 나와 대대적인 검사와 수술을 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것은 관광지나 중심가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한 번에 녀석들을 죽이지 못해서 깨나 애를 먹었다. 사형 선고를 내리는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던 적에는 시체 처리도 난감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의식 또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한 곳에서만 녀석들을 죽였고, 여러 번 녀석들을 괴롭게 하지 않고 일 회의 칼질로 안식에 들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사형 선고를 내리는 장소에 베인 피 냄새는 사람이 맡을 순 없었지만, 개나 고양이들은 귀신같이 그 자리를 알아채고는 끙끙대거나 운반자의 등을 할퀴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동물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에 그들의 피를 뿌리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비릿한 냄새가 쓰레기의 그것과 섞여 역했지만 이후에는 어둡고 습한 곳으로 개나 고양이를 찾으러 들어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리 외곽에는 주인 없는 개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것이 결과로 드러났다.



우리의 이런 행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경찰 앞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우리가 경찰의 눈에 띄지 않는 진짜 이유는 파리 시민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시민들은 불법과 법치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를 지지했다. 정화자들 덕분에 외곽 거리는 더욱 깨끗해졌고, 밤에는 동물이 짖는 소리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가축들의 소리가 줄어드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밤에 순찰을 돌기 때문에 가축들이 숨을 죽였을 거라고만 추측하는 선에서 생각을 멈추었다.) 머지않아 지지자들은 빵이나 5에서 10 유로 사이의 지폐로 감사의 뜻을 전하게 됐다.

그러나 모임이 항상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파리 시민의 순수성’은 사람이 늘어 감에 따라 잡음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주인의식 없는 파리를 구원하겠다는 모임은 돈이 보이는 순간부터 노임을 말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무력으로 다른 이의 돈을 갈취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것은 몇 사람의 문제였기 때문에 금세 진압되었지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가라앉힐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침,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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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mbnail Info: 이카루스, Jeffery Barso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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