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고 Aug 03. 2016

'기다림' 친구와 손 잡기

이불 킥 SNS 시리즈 01

누군가를 마음속에 들이는 일은 어렵다.
때론 들어가는 것이 더 쉬워 보이는 착각마저 든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다. 그리고 내 삶도 수습하기 버거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타인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들인다는 것, 그리고 혼자 해왔던 것들을 하나 둘 의지하는 것. 모두 자신 있게 '간단하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지난날엔 머릿속으로, 계산으로, 노력으로 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무모해도 괜찮았다. 잘 안되면 노력 탓이요, 시간이 촉박하면 머리 탓으로 돌리면 충분히 변명거리가 됐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시간이 필요할 때가 더 많은 듯싶다. 당장 내 감정만큼이나 상대의 감정도 소중하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기다림이라는 녀석과 친구가 되어야만 한다. 한 손은 그 녀석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아파트 난간을 붙잡고 "아이고, 아이고" 해 가며 돌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나는 천천히 내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본다.


Georgia O'Keeffe, Ram's Head, Blue Morning Glory 1938


예전엔 참 기다리는 거 못했다, 나는. 나는 사우나에서 단 십 초를 못 버티고 뛰쳐나가는 아이였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며 모서리를 채색할라치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간질거리는 마음에 슥슥 하고 대충 경계 부분을 덮어버리는 아이였다.

심지어 지금도 잘 못한다. 기다리는 것. 천천히 해야만 하는 것. 섬세하게 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기다리는 그 찰나에 효율을 올리겠다고 기꺼이 무언가 하날 더 찾아 끼워 넣는 성미다. 그래야만 고약한 이 직성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을 살다 보니 오롯이 기다려야 할 때가 더러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나는 뛰쳐나가 버기 거나, 경계를 대충 슥슥 그어버리기를 수 차례 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필요했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을 위해서이기도 하면서 내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의 필요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만약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간질거리는 순간이 다시 오면, 다른 자잘한 일 끼워 넣는 것 없이, 효율성 없이. 그냥 그렇게 '기다림' 친구 녀석과 함께 앉아 귀뚜라미 소리 들어가며 찬찬히 기다리며 내 마음을 정리해야만 한다.

툭툭, 탁탁. 설레는 마음에 흐트러져 삐져나온 마음도 잘 정리하고, 빈 공간도 만들어 놓고, 또 어떤 부분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여미어 놓으면서. 그렇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존중하듯 그 사람을 존중하고 싶기 때문에-라는 간단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너지거나, 대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 허술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나는 무너뜨리는 사람이었음을 고백할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소중해지려는 사람에게 더 이상 대책 없이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변하세요"라는 겁 없는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에도 철렁한다.

이렇게 살겠다 기도하고, 다잡고, 심호흡한 근래. 근래에야 상대의 말이 작게나마 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내 할 말이 귓바퀴에 텁텁이 쌓여 들어도 들리지 않았던 그 소리가. 이제는 이입도 되고, 울림도 되어 잔잔하게 가슴을 두드리곤 한다.


이제야 가는귀 들리기 시작하니 갈길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음의 소리를 정직하게 전하고, 들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면, 또 한편으론 참 다행이다-하는 마음 든다. 그러면서도 지난날 모난 마음에 함께 정 맞아준 징글징글한 얼굴들이 스치기도 하니, 부족하고 낮은 이에게 계속 좋은 사람 허락하시는 그 마음이 참 감사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기다림 친구의 손을 리듬감 있게 한번 꾹 잡았다 풀고는,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을 때 싱긋 웃고는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천 구독 감사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